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인용한 책 홍보 문구를 보고 눈길이 멈췄다. '기획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니.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빠른 속도로 훑었다. '일본 전국에 1400여 곳 이상의 츠타야(TSUTAYA)' 매장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CCC)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 이어지는 책 소개가 호기심을 더욱 자아낸다.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 즉 기획자가 되는 미래, 지금은 지적자본 시대다! 라이프 스타일 산업의 최전선, 츠타야서점의 브랜드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가?'
이 책은 기획에 관한 책인데, 기획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나열한 것은 아니다. 대신, 기획할 때 알아야 할 추상(抽象)과 철학(哲學)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놀랐던 이유는, 그 철학이 저자의 경험을 통해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이론을 적용한 것이 아닌 현장 경험을 통해 정립한 자신만의 철학. 제목도 마치 하나의 이론을 저술한 논문인 듯, <지적자본론>이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일본이 무서워졌다. 책을 읽며 다가온 강렬한 느낌과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적는다.
#01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의 출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난 철학은 바로 저자의 '꿈'이다. 사업 목표가 아니라 저자의 꿈. 저자의 꿈은 '새로운 생활 스타일을 제안하여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 꿈 역시 가히 추상적이다. 혹자는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저자 역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꿈만이 실현된다. 어느 누구의 꿈에도 나타난 적이 없는 것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는 좌절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꿈은 히라카타 시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생활 스타일,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제안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1983년 츠타야서점 히라카타점을 오픈한다.
#02 디자인 = 기획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상품에 미적 요소를 더하는 부차적 요소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디자인이 곧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즉, 디자인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각에 형태를 가시화하여 고객에게 제안하는 기획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수한 디자인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제안을 내포하고, 표현하여 고객이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라는 것.
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구현해내는 과정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지적 활동'이라는 마스다 무네아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디자인과 기획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이런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적 자본'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름하여 <지적자본론>이다.
그렇다면 지적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즉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고객 가치의 관점에서 본 '세 단계의 소비 사회'로 설명한다. 소비 사회의 첫 단계, '퍼스트 스테이지(First stage)'는 물건이 부족한 시대로, 상품의 제 기능만 다 하면 고객이 구매하는 시대다. '세컨드 드테이지(Second stage)'는 인프라와 생산력 증대로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본격적으로 고객이 선택하는 시대다. 이제는 물건의 쓰임새와 더불어, 고객이 효과적으로 물건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마지막 '서드 스테이지(Third stage)'는 물건도, 플랫폼도 넘쳐나는 시대다. 현재 우리가 속해있는 곳으로,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주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03 문화를 만드는 방법: 피부 감각에서 출발
어떻게 하면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나의 스승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사유의 높이를 알려주신 나의 스승님께서는 '문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피부로 느끼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문화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 어떻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마스다 무네아키 역시 기획은 반드시 '피부 감각'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고객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살펴보고,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주 서점에 가서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고 한다. 서점을 찾는 고객들이 이 공간의 어디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이는가를 관찰하는데, 관찰을 통해 무엇을 제안해야 하는지 중대한 힌트를 얻는다고 한다.
츠타야서점은 고객에게 제안한 가치는 '편안함'이다. 그는 '편하다'라는 단순한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존의 서점은 판매자의 입장에서 유통 과정에 따라 정해진 분류를 도입하고 있다. 문학, 비문학, 외국어, 예술, 과학 등. 그러나 츠타야서점은 책의 종류나 형태에 따른 분류법이 아닌 주제와 제안 내용에 따라 책을 분류한다. 예를 들면, "유럽을 여행한다면 이런 문화를 접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에 따라, 여행 가이드북, 여행 잡지,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등을 한 서가에 놓고 진열한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도 내용이 가까운 것들끼리 단행본이든 문고본이든 틀을 넘어 횡단적으로 진열하여 고객에게 제안 덩어리들을 안겨주는 것이다.
04 이게 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야?
저자는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특히, 고객과 자신(기획자)의 입장에서 '자유'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모습을 설명한다.
먼저, 고객에게는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제안하여 '자유'의 영역을 확대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어떤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 츠타야서점은 새로운 선택의 여지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즉, 츠타야서점을 열어 고객들은 여가 시간에 책을 읽을 자유, 서점에 갈 자유, 도서관에 갈 자유 등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서점에서 책, 건물, 가구, 빛, 바람 등 모든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받는다.
이런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기획자 역시 '자유'로워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유는 냉엄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자유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자유다. 본능이나 욕구에 현혹되지 않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자신의 '의무'인지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자유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자신의 꿈을 찾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름 끼치는 문장을 덧붙인다. "나는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05 시대를 이끄는 사람
나의 스승님께서는 높은 시선의 철학적 사유가 우리 시대가 아파하는 문제를 포착하고, 사유의 결과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셨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마스다 무네아키는 일본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그의 회사가 다케오 시립 도서관의 지정 관리자가 되면서, 도서관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포착한 문제는 일본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일본십진분류법'이 최초로 발표된 때는 1928년이라 현대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도서관에 소장된 18만 권의 책에 츠타야서점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22종 분류법'을 적용한다. 책을 전부 시내 체육관에 옮겨 분류하고 바코드를 일일이 붙였다니. 이 도서관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구 5만 명 규모의 지방 시립 도서관 재개관 이후 13개월 만에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일본의 지방에 지역성을 살려 그곳만의 '츠타야서점'과 시립 도서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 그의 회사 CCC의 목표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서적은 제안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런 서적을 집적한 서점이나 도서관의 이노베이션이 일본 곳곳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결국 각지에 지적자본을 고양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단순히 자신의 사업 확장이 아니라 '일본에 지적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너무 확대하여 해석한 것일까? 나는 그런 의도가 담겨있다고 본다. 결국, 이 사람은 시대의 문제를 캐치하고 해결해가는 사람이 아닐까? 낡은 도서 분류법을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새롭게 개발하여 적용하고, 일본에 지적자본이 많아지는 것을 꿈꾸는 사람.
05 겸손한(?) 자랑
마스다 무네아키는 책을 쓸 당시 '부산물'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지적자본론>에 다룬 내용의 대부분의 그의 입장에서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치'를 주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어서, 츠타야 서점을 완성했는데, 그러다 보니 '지적 자본'이 중요하게 될 거라는 인식도, 등등등 이런 발상이 츠타야서점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부산물이라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나' 떠올려 기획하기도 어려운데, 부산물이라니! 더욱 질투가 나는 것은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 그의 진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덧붙인다. "이 책이 모든 독자 여러분에게, 특히 장차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각자 자기만의 '1'을 만들어 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 저자로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듯싶다." 일본에 지적자본을 양성하고 싶다는 것과 더불어 예비 창업자들을 독려하는 이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06 대놓고 하는 자랑, 도쿄 올림픽
이 책에는 저자가 말하는 일본과 도쿄 올림픽도 나온다. 그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려고 한다. "도쿄는 2020년을 전환점으로 삼아 거대한 디자인 센터가 될 것이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주장에 따르면 디자인은 '라이프 스타일 제안을 가시화한 것'이다. 그런데, 새롭게 짓고 있는 올림픽 주경기장 건설 계획을 둘러싸고 '디자인'에 관해 논쟁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의 철학이 담길 국립 경기장 디자인 논쟁의 발단은 디자인에 따른 막대한 건설 비용이 원인이지만, 논쟁이 일어난다는 자체가 디자인이 철학을 담는다는 인식 또는 예감이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만들어지는 것들은 모두 디자인이 주제라는 마스다 무네아키.
그 챕터의 마지막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도쿄의 두 번째 올림픽은 이미 그 지성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이르러 있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러한 2020년이 될 거라는 자신감이 놀랍다.
츠타야서점과 그의 회사 CCC에 대해 어떤 마케팅 기법이나 경영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저자의 시선은 철학의 높이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판매했어요.'가 아니라, 나는 이런 가치를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나는 여가 시간에 서점에 간다.'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일은 그가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낸 마스다 무네아키만이 사명감이며, 앞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지적자본으로 가득한 일본을 꿈꾸겠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체감했던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다. "사람들은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는 동안 '실현하고 싶은 가치'를 어린 나이에 찾은 것, 그리고 저자가 그것을 실제로 실현해온 과정이 부러웠다. 지금은 2019년이다. 이 책은 4년 전인 2015년에 쓰였다. 정말 놀랍고, 질투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