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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지 Jul 18. 2018

'나'로 성장하는 아픔,
영화 빅식(Big Sick)


미국 일리노이주 북동부 시카고(Chicago). 파키스탄 남자 쿠마일과 미국 여자 에밀리는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에 빠진다. 쿠마일 난지아니의 실제 러브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빅 식(Big Sick)은, 그가 사랑하는 여자 에밀리가 코마 상태에 빠지면서 겪어내는 사건과 감정을 그리고 있다. 


인생에서 힘든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쿠마일과 에밀리가 만난 후부터, 쿠마일에게 사랑, 가족, 꿈, 파키스탄 전통, 이민자의 삶 등과 관련된 인생의 중대한 일들이 한 번에 몰려든다. 결국, 쿠마일은 본인 가족과 에밀리 가족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이른다. 영화는 한 개인의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힘겹지만 우울하지 않게 견뎌내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제목인 빅 식(Big Sick)은 사랑하는 여자의 병을 의미하는 것과 더불어, 한 개인이 진정한 '나'로 성장하며 겪는 성장통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공감 포인트를 불러일으킬 듯하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외국인에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꼭 물어오는 질문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제 막 내 이름과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북한 아래 있는 남한에서 온 여자는 북핵을 옹호하는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사실이 더 중요한가 보다. 나의 국적을 알게 된 순간, '나와 이야기해도 안전한지'를 파악해야 그다음 대화를 할 모양이다.


쿠마일을 쳐다보는 에밀리의 부모님 ⓒDaum영화


이민자 2세대인 주인공 쿠마일에게도 이런 질문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가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듣는 것은 다반사이다. 911 테러와 IS(이슬람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여자 친구 에밀리 아버지의 질문에 "그들이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농담했다가 순식간에 분위기를 얼어붙게 한 쿠마일.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다 언성이 높아진 쿠마일과 그의 형은, 사람들이 쳐다보자 반사적으로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싫어해요."라고 동시에 외친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외국에 살다 보면 자국과 자국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아들의 결혼을 위해 초대한 여성을 집으로 안내하는 쿠마일 어머니 ⓒDaum영화


"너 기도하고 오면 디저트 먹자." 식사를 마친 쿠마일은 어머니의 말에 지하실로 향한다. 기도 매트를 펼치더니 이내 타이머로 5분을 맞추고 유튜브를 열어 영상을 본다. 쿠마일은 왜 매일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파키스탄 전통문화를 고수하는 가족들 사이에 쿠마일은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가족들의 바람은 파키스탄의 전통대로 쿠마일이 파키스탄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 가족 식사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어김없이 초인종을 누른다. "오늘은 또 누가 왔을까?" 쿠마일의 어머니는 설레는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파키스탄 여성을 집 안으로 데려온다. 쿠마일의 어머니는 그의 결혼을 서두르기 위해 가족 식사 때마다 주선한 여자를 초대한다. 쿠마일은 그녀들의 사진을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둔다. 


어느날,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고 가족 식사도 오지 않은 쿠마일에게 화가 난 부모님은 그의 집을 찾아온다. "로스쿨에 가지 않아도 좋다. 내가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네가 좋은 무슬림이 되어 파키스탄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거야." 그러나, 앞으로 본인 인생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쿠마일. 어머니는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단어 하나 하나를 뾰족한 모양으로 내뱉으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가 있긴 하니?

쿠마일의 사진 상자를 발견한 에밀리 ⓒDaum 영화


한편, 상자에 모아두었던 소개받은 여자들의 사진을 여자 친구 에밀리가 발견한다. "그래. 그동안 너는 정해진 사람과 결혼해야 해서 나한테 이랬던 거야." 에밀리는 그동안 내심 섭섭했던 쿠마일의 행동과 말들을 '우리는 결국 헤어진다.'는 하나의 퍼즐로 맞춘다. 이슬람과 파키스탄 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쿠마일 역시, 사진 상자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지만, 에밀리는 자신에게 이 모든 사실을 숨긴 것에 너무 화가 난다.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가 있냐고 묻는 에밀리에게 쿠마일은 "나도 모르겠어."라고 말해버린다. 결국, 쿠마일은 울면서 뛰쳐나가는 에밀리를 잡지 못한다. 이렇게, 그들은 헤어진다.



당신이 에밀리의 남편입니까?


응급실에서 쿠마일에게 에밀리의 남편인지를 묻는 의사 ⓒDaum 영화


그렇게 헤어진 쿠마일은 얼마 후 에밀리의 친구에게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에밀리를 다시 만난 곳은 병원. 의사가 다급하게 쿠마일을 병실 밖을 불러내어 에밀리의 남편인지를 묻는다. "에밀리를 지금 당장 코마 상태로 만들어야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묻을게요, 당신이 에밀리의 남편입니까?" 쿠마일은 에밀리의 보호자로 서명하고 에밀리는 코마 상태가 된 채 수술실로 들어간다. 


쿠마일은 무거운 마음으로 에밀리의 부모님에게 전화한다. 곧바로 병원을 찾아온 에밀리의 부모님은 병원에 남겠다는 쿠마일을 밀어낸다. "우리 딸과 헤어졌다면서요.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그만 돌아가도 좋아요." 그러나 쿠마일은 에밀리가 입원한 14일 동안 에밀리의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에밀리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음을 느끼고, 미국 문화와 파키스탄 문화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본인의 정체성을 하나씩 정리해가기 시작한다.



오롯이 '나'로 성장하는 성장통, 빅 식(Big Sick)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선 쿠마일 ⓒDaum영화


'사랑에 빠지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쿠마일은 에밀리와의 추억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찾는 일은 다른 누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14일은, 휘몰아치는 강렬한 사건들을 겪은 쿠마일에게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아니었을까.


결국, 영화의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듯하다. 사랑하는 여자가 코마 상태에 빠진 것 자체가 빅 식(Big Sick)을 의미하기도 하며, 쿠마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겪는 성장통 역시 빅 식(Big Sick)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단 2주만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누구인지에 관한 단서를 모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 쿠마일. 앞으로 어떤 색깔로 자신의 인생을 그려낼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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