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지 Nov 09. 2018

자신의 고유함을 찾는 사람들에게,
윤동주,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2018년 11월. 나는 죽는 날까지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도 좋을 그 무엇을 찾는 중이다. 내 안에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생겨난 순간부터 그래 왔고, 지금도 여전히 찾는 중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고 싶다는 시인 윤동주처럼,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럼이 없이 살고 싶다. 나에게는, 나의 고유함을 발휘하는 것이 내 인생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일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 찾는 중이다. 


부끄럼이 단 한 점도 없이 사는 일은 얼마나 세심한 삶일까. 그는 이 시에서도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를 쓰기 위해 수천번, 수만 번 고민했을 것이다. 나 역시 선택의 갈림길을 마주했을 때마다 수천번, 수만 번 고민했고, 최선을 다해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인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는 것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 나만의 고유함이 발휘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신호라고 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할 때 좋은지 한참 몰라서, 어떡하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렇듯,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즉,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자각'을 너무 늦게 했다. 잎새에 이는 그 작은 바람처럼, 내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도 작은 바람이 불어 나를 뚫고 지나갔다. 그 바람은 나를 흔드는 생각들이다. 일을 하다가도, 걷다가도, 친구들을 만나도, 음악을 듣는 순간에도, 이런 생각이 '훅'하고 덮쳐왔다.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괜찮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그럼 뭘 해야 하지?'라고 질문했을 때, 명쾌하게 대답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이런 생각은 마치 얇은 종이에 손을 베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주 작은 일인데, 베인 부분에 물이 닿으면 온 몸을 거쳐 뇌까지 찌릿해지는 것처럼 서늘해진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별은 내가 가진 고유함이 발휘되는 일 아닐까? 그렇다면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나의 고유함이 발휘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그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고, 몰입하게 될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이 구절은,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주변의 모든 것들을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은 지금은 살아있지만, 동시에 죽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 내 갈길 찾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남을 왜 사랑하라는 것일까. 그것도 심지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니!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다시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헙!'하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나'를 빼고 읽었다.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는 나도 포함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파하는 나도, 부족한 나도, 아직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나도, 죽어가고 있는 나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이런 나를 보듬어 끌고 갈 사람 역시 '나'이니까. 그렇다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 고유함을 발휘하는 일을 찾지 못한 부끄러운 '나'를, 생각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이끌어 그것을 찾게 하고, 결국엔 '나' 자신이 '고유함을 발휘하는 별' 그 자체가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 깨달음은 서시를 다시 읽고 가장 크게 얻은 수확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렇다. 새롭게 깨달았으니, 이제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시인의 다짐처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일지라도 듬뿍 사랑해야겠다. 괴로워하며 길을 찾고자 하는 나를 사랑하고, 내 안에 숨겨진 고유함을 사랑해야지. 나의 길을 찾는 이 울퉁불퉁한 여정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기쁘게 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야겠다. 


이를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부지런히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곳'에 닿을 수 있도록 수천번, 수만 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식견은 왜 이렇게 좁은지, 길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식견을 넓히고, 체력을 기르고, 시간을 견디어 나에게 주어진 길을 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에 '최선'을 다할 때, 나 자신에게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고유함을 찾는 일, 고유함을 발휘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오늘 밤에도 그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은, 오늘 밤에도 답답해하는 내 마음도 베어낸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묵묵히 견디어 낼 뿐이다. 이것이 별이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울시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리지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어느 가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