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서른은 처음이지?
설레기도 두렵기도 했던 나이. 서른.
나에게만큼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이, 서른은 나에게도 덜컥 찾아오고야 말았다.
나는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유난을 유난을 그렇게 떨었더랬다. 이것도 해야 해, 저것도 해야 해, 20대의 마지막을 특별하게 보내야 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마냥.
돌이켜보면 이십 대의 나는 아직 이십대니까 괜찮아. 이십 대 때 해봐야지 언제 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재정적으로 완전히 독립을 한 후부터는 내가 버니까, 내 돈으로 그동안 못 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려 애썼고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이십 대가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나 보다.
매 연말마다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벌써 20이라니, 26이라니 28이라니!... 풉.
또 매 해마다 뭐가 그리도 특별했는지 항상 올해는 유난히 특별했단다. ... 풉.
올 연말은 특별하기보다 조금 담담하게 나의 서른을 정리를 하면서 (좋아진 점 위주로다가) 한 해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첫째, 나라는 사람과 많이 친해지다.
나에 대해서 집요하게 탐구해 왔고 이제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예전에는 나조차도 나를 모르니, 내가 어떨 때 불행하고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 몰랐다. 행복한 시간에도 그 행복을 오롯이 누리지 못하고 불행할 때는 그 안에 잠식되어 있던 시간이 길었다.
이제는 내가 행복할 때 감사히 행복을 누릴 줄 알고, 불행에서 헤어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불행이라는 건 내가 어찌할 수가 없어서 예고 없이 들이닥치곤 하는데, 과거의 나였으면 완전히 무너졌을 법한 상황에서 잠깐 동안은 슬픔이나 우울에 빠져 있을지언정, 며칠 후면 아무렇지 않게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어 내고 일어날 수 있는 의연함이 생겼다.
둘째, 취향과 취미라는 것이 생기다.
나는 20대 중반까지도 이렇다 할 나만의 취향이나 취미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무언가를 오롯이 좋아서 즐기는 행위를 할 줄 몰랐던 거다. 혼자 있는 시간에 도대체 무얼 해야 될지를 몰랐다.
첫 독립을 하고 타지에서 홀로 지내게 되면서 마주친 그 시간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릴 적부터 만들어진 아주 확고한 취향과 취미를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덜기 위해 교과서 질문인 What's your hobby? 가 빠질 수 없는데, 나는 그 질문에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절실히 느꼈다.
아. 내가 정말 취미라는 게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구나.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취미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관심사를 깊게 파고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취향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취미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취미 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번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훅 가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 시간에 몰두해 있는 내가 정말 좋다.
취미라는 건 단순히 뭔가를 한다는 행위를 넘어서 나의 인생에 있어 든든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때로는 진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이 시간이 더 좋을 만큼 말이다.
셋째, 인생 경험치로 인한 내공이 쌓이다.
이십 대의 나는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뭘 해본 경험이 없으니 막연할 수밖에.
동경만 해오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그런 막연함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고향을 떠나 독립을 한일, 혼자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일, 직장을 퇴사하고 아일랜드로 떠난 일, 까미노 순례길을 걸은 일 ... 등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깨달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또한 밖에서 볼 때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막상 동경의 대상 앞에 내가 실존해 있을 때, 그것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고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지 여행, 워홀.. 등 단편적인 경험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 경험들이 내 인생 모든 부분에 있어 끼친 영향은 실제로 지대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고 나는 용감해지기 시작했다.
넷째, 막연하기만 했던 인생의 방향성이 그려지기 시작하다.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왔다. 그 결과, 희미하게나마 방향성이 그려지고 있다.
설령, 이 방향이 틀렸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담담하게 다시 돌아서서 플랜비를 향해 걸어가면 된다.
나에게 더 이상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방향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걸어 나아갈 수 있다.
이십 대의 끊임없는 방황 속에서 한 수많은 선택들의 연속. 그것들의 결과가 마침내 하나의 방향으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느낌이다.
다섯째, 사회생활에 있어서 나의 위치.
나는 퇴사를 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기에,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또래 친구들만큼 자리를 잡아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의 '짬'이 내게도 생기는 것을 체감한다.
일도 잘해야 하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관계와 처세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초년생 때 겪었던 어른 공포증을 극복하고, 아버지뻘 되는 어르신들을 대할 줄 아는 요령도 생겼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때로는 냉철하게.
일적으로도 마찬가지. 이제는 스스로 일처리도 하고 자신감도 붙어서 내가 하는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는데, 말에 힘이 실리면 자연스럽게 먹히더라는 것이다. 현재는 프로젝트의 주가 되어 대표 담당자로서 일을 맡아 부모님 뻘 되는 분들과 협업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나이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를 받고 일을 성사시켜 나간다. 이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이 아주 짜릿하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다. 적고 보니까 거의 모든 것들이 경험 이후 깨달음에서 묻어나는 연륜인데, (물론 나는 아직 젊고 어리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게 구태여 나이에 국한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경험치가 쌓이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데, 서른이라는 나이 때가 합법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로 딱 10년이 지난 시기이다. 그러니까 나이 그 자체보다 10년이라는 경험치에 대한 결과인 것이다.
뭐든지 10년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듯, 이십 대의 10년 동안 치열하게 탐구한 결과, '나'라는 인간에 대한 전문가가 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해서 뭐든 다 알고 여유가 넘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다.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지만 불안함 마저도 이제는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인간이란 본래 다 불안한 존재임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서른 즈음에 되돌아보는 나의 서른. 그리고 나의 이십 대.
어색하기만 했던 서른이라는 나이에 겨우 적응할 만하니까 서른에 하나가 더 얹혀버렸네요. 허허.
그동안 이십대니까 괜찮아라고 해왔다면 이번에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서른이니까 괜찮아. 이제 시작이야!!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