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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ny Lee Nov 29. 2022

자신있게 글쓰기

읽혀야 글이다

내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일까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는 어릴 때 잃었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따라 애굽에 내려간 아버지 야곱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의 앞으로 인도된 야곱에게 바로가 묻는다.


’네 나이가 얼마냐?‘


이 질문에 야곱의 대답이 이어진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 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 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험한 광야 같았을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야곱처럼 누구나 그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온갖 풍상의 백삼십 년을 살아온 야곱의 흉중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회한과 스토리가 담겨 있었을까.


내가 가졌던 나의 꿈 중의 하나는 책 한 권 내 손으로 써서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일이었다. 나도 정들었던 조국을 떠나 지난 이십여 년간 몇 개국에서 살아온 일이 있는 터라 털어놓지 못한 삶이 없을 수 없었다. 혹 삶의 기록이라도 남겨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지금은 그 후에 몇 권의 책을 써 출판까지 한 출간 작가가 되었지만 지난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쓰고 싶다는 소원과 함께 내가 기록해 보고 싶었던 내용들은 지난 삶에 대한 나눔이었다. 어떤 것을 꿈꾸었으며 어떤 것들을 이루어 왔고 그리고 이어진 실패들, 그 여정 중에 가졌던 생각들, 소감들 그리고 경험 등을 풀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혹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앞서 걸으며 경험하거나 얻을 수 있었던 정보들을 나누고 싶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책 쓰기를 막상 시도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가진 선입관 한 가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출판되는 모든 책이 세상에 소개되려면 적어도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같은 정도의 문학성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준의 문학성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쓰기 의도나 주제가 있더라도 책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담아낼만한 멋진 필력이 함께 있어야만 엄두를 내 볼 수 있을 거라고 내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묘사의 디테일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이과 출신으로서는 이런 수준의 글을 쓴다는 건 언감생심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나에게 책을 쓸 용기를 준 나의 멘토는 이 생각에 큰 전환점을 던져 주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내가 쓰는 책들의 독자층의 독해 수준을 초등학교 5, 6 학년 수준으로 보라는 점이었다. 그 정도의 수준으로써도 손쉽게 이해될 수 없는 글이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보관용의 책이 아닐진대 읽히지 않고 팔릴 수 없는 글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앞으로 내가 쓸 책들의 독자는 문학성보다는 누군가의 살아온 삶으로부터 무언가 정보를 얻고 힌트를 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글이 가진 수려함은 별로 관심거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만약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길이 막혀 도움을 얻으려고 해답집을 샀는데 만약 그 안에 해답 대신 구구절절 온갖 멋진 문학적인 묘사만 기술되어 있다면 그건 바른 책이 아닌 것과 같다. 아마도 읽는 사람은 속이 터지지 않을까? 읽다가 집어던지고 말 것이다.


인생에서 답을 구하는 사람들은 간단명료하게 제시된 길을 만나고 싶어 한다. 불필요한 수식은 그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바로 그런 독자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중에 책을 출간하고서도 많이 헷갈렸다. 막상 책은 세상에 나왔는데 괜히 수치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값싸게 보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쓴 책들을 다시 하나하나 읽어보니 기술 내용이 너무 가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책을 보내드린 분들 중에는 정말 문학적 깊이가 있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과연 내 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런 착각은 작가로서 자신의 책을 대하는 독자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오는 혼돈 때문이다. 사람들 모두가 모든 책에서 문학성을 찾는 건 절대 아니다. 독자들이 서점의 진열대에서 책을 집어 드는 이유는 문학성 하나만이 이유가 아닌 것과 같다. 이 점만 명심하면 누구나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쓴 책들은 내 돈으로 출간된 것들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 쓴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게 보내 그들 중 자신들의 출판 의도와 맞아 내 글을 원하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출간한 것들이다. 그 점은 기꺼이 돈을 주고 사서 읽을 독자층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출판사들이 기꺼이 내 원고에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작가라면 자신의 독자층을 확실히 구분하는 일이 제일 우선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외로 보다 쉽게 재미있는 글을 즐기면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가 있다.


사람들 모두는 각각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흉중에 가득 남아있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정보가 될 수 있고 인생의 격려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일은 누구라도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이는 초등학교 5,6 학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글의 독자가 기대하는 감성은 어떤 것일까


한국에서 살던 시절, 나의 두 번째 직장은 듀폰 코리아였다. 회사 사무실이 종로 1번지 교보 빌딩의 13층에 있었다. 나는 그때 아직 대전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내가 일하게 된 부서는 엔지니어링 폴리머 부문으로 머지않아 울산에 플랜트를 세우고 조만간 그쪽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나는 서울 사무실로 매일 출퇴근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루에 기차로 왕복 네 시간 이상을 다니는 형편이었다. 지루해하는 나를 위해 아내는 한국 단편 전집을 구매해 출퇴근 시간에 읽으라고 배려해줬다. 그 생각은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리고 한동안 기차 안에서 난 때늦은 문학소년이 되어 독서 삼매경에 빠지게 되었다. 한 달 여를 그렇게 단편집을 읽었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가던 어느 날, 난 책들을 집어던져버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매번 단편집을 바꿔 읽으며 느끼게 된 점 하나는 책들이 주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두 비장하고 폐쇄적이었다. 너무 우울했다. 단편 작가라는 사람들은 매일 그런 ‘우울’을 파면서 사는 사람들만 같았다. 그런 감성이 마치 무슨 멋이라도 된 듯 매번 그랬다. 그런 책들을 읽다 보면 나까지 감정 이입되어 너무 우울했다. 새 직장에 다니면서 밝은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읽은 책들에 나타난 어두운 묘사와 전개들이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다. 밤의 잠자리까지 뒤숭숭할 때도 있었다.


내가 알던 어떤 시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밝지를 못했다. 삶의 매사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보다는 어두운 면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칼처럼 예리한 비평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난 그 친구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언젠가 신문의 어느 글에서  ‘요즘 같은 때 어떻게 웃을 수가 있느냐’는 자조적인 글을 본 일이 있는데 얼핏 보면 감성 있고 멋진 듯 보이지만 이는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는 일인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밝게 지어진 곳이다. 나는 글들이 밝았으면 좋겠다. 밝은 글들이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신문이나 SNS 등의 인터넷 매체에도 그런 글들이 많이 쓰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밝음을 지닌 작가들이 많이 나타나 세상을 향해 얼마든지 살만하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따뜻한 격려를 던져주는 일이 주위에서 많아지면 좋겠다.


물론 글이 가진 고발자로서의 사명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미 힘써 어두운 면을 부각하면서 고발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널려있기 때문에 세상을 밝힐만한 글들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얼마든지 부족한 형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들은 굳이 고발성이 없어도 세상을 향해 얼마든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밝은 작가가 쓴 긍정의 글 한 편으로 인해 혹시 아는가? 오늘만 살고 죽기로 결심했던 사람이 그 글을 읽고 결심을 바꿀는지. 그리고 후에 그 글을 떠올리며 세상에 또 다른 메신저가 될는지…



#긍정 #글쓰기 #독자 #광야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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