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로부터 자유로와 지기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어느 날 제자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자 다시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대답했다.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쉽게 못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 가지 기대가 있다.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물론 좋은 기대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기대이고 목표다. 자식을 사랑해주는 부모에게도 자녀들이 부모를 몰라주는 일이 허다한데 남한테 변함없는 관계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기대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동료 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워크숍을 가진 적이 있었다. 교육 내용 중에는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 간의 상호 선호도를 무기명으로 확인해 보는 게임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게임의 결과가 상당히 놀라웠다.
필자도 나름대로는 직장 내 사람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잘 유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결과가 표시된 용지에는 나를 아주 좋아하는 층과 싫어하는 층도 함께 극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세상에 나를 이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충격이었다.
그뿐 아니라 동료 중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전체적인 지지나 미움을 집중적으로 받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 할 거 없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모두에게 꽤나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런 조사 결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점은 살아온 인생 경험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항상 좋은 관계로 지내기를 바란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허황된 것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한 예를 들어볼까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뒷담화를 듣는 일로 종종 불편해할 때가 많다. 나에 대한 오해나 아주 이상하게 부풀려진 이야기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다닌 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모른다.
누구라도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아마도 밤잠을 설치게 되지 않을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잘해주려 최선을 다 했는데 그 결과가 고작 뒷소리리라면 정말 불편하고 속상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편을 들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그런 뒷담화에 편승해있는 걸 알게 되면 정말 살 맛이 안 날만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남들에게서 좋은 평판만을 기대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를 외부의 평가 기준에 놔둔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보다는 남들의 시선을 더 중요시하게 보겠다는 뜻이다. 나 자신보다는 세상의 눈에 우리 자신을 맞추려 최선을 다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칭찬이란 것은 남이 내리는 평가다. 사람마다 생각과 보는 기준이 모두 다 다르다. 어느 심사위원도 두 명이 똑같게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모든 사람으로부터 동일하게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심지어 우리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호감이 안 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그냥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세상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전적으로 외부에 맡겨놓는 건 위험하다. 그로 인한 당연한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불필요하게 자신에 대한 확신만 떨어뜨릴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존감만 떨어지고 말 것이다.
결국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만 얻게 된다. 따라서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좋은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도 전에는 남들이 내 뒤에서 하는 뒷담화가 많이 힘들었다. 나름대로 잘 대해주려고 배려와 함께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그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서운했었다.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챙김을 공부하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나와는 정말 아무 상관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모두 다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도 알게 되었다. 자격 없는 이에게 무조건 베푸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알게 되었다.
남의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을 조종하려 든다. 계속 긴장 상태를 만들어 상대가 자기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뒤에서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내어 괴롭히는 것도 불사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고 나의 평안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게 있다. 남들을 험담하거나 헐뜯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로 인한 결과는 결국 본인들의 몫이 된다는 사실이다.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를 못한다. 그런 옳지 않은 행위로 인해 발생하게 될 게 좋지 않은 결과만 결국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이 될 뿐이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연구소 전문의 이승민 작가도 자신의 저서 『상처받을 용기』에서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에게 더 집중하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
그는 상처를 주는 관계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법을 세세히 가르쳐주고 있다. 그는 우리가 남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고 우리가 특별히 못난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상처를 주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는 게 오히려 간단하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점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혹시 어떤 경우에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나를 싫어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상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비하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항상 같은 의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우리도 이해해야 한다. 그것만 이해해도 많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어떤 경우에서도 나 자신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말은 참이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우리 자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들이다. 굳이 누구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빛이 나는 존재이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감정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만약 그렇지 못해 사람들이 날 비난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내가 있는 모든 곳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근거 없이 나를 비판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으로 여겨버리면 된다. 그러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다. 상대가 우리를 비난한다고 해서 그들의 의도대로 분노와 짜증에 내 감정이 휘말릴 필요는 없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세상과 마주할 때 사랑은 스스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사람의 낮은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면 충분하다.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족하고 보잘것없어서 상처받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