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기피를 극복하려면
미국에 와 살면서 지인들하고 레스토랑에 가 메뉴를 선정할 때는 뭔가 늘 쉽지가 않다. 평소에 익숙하지도 않은 음식을 일일이 골라서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고 또 음식의 종류가 너무 많은 것도 이유다. 그렇지만 더 큰 이유는 함께 자리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다르게 생뚱맞게 고르지 않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그래서 대체적으로 속편 하게 다른 사람들이 고른 메뉴에 그냥 따라가는 편이 많다.
혹시 또 누군가에게 초대되어 대접을 받는 자리라면 대접하는 사람에게 폐가 안되도록 가격의 범위도 신경을 쓰게 된다. 초대하는 사람의 주머니 상태도 알아서 배려하는 것이다.
예전에 비즈니스 관계로 사람 하나를 식사자리로 초대를 했더니 그는 그 자리에 자기 아는 사람 몇을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불러내 주류까지 잔뜩 시켜 먹는 바람에 아주 난장을 친 일이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정작 중요한 비즈니스 이야기는 하나도 못 나누고 이들이 자리를 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큰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습은 종종 내 결정력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다. 사실 이런 기질은 어느 누구에게도 있지 않을까. 어떤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도 내 단독의 의견을 개진해 고집을 부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우리 회사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고가의 명품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업무에 필요한 직원 교육을 많이 했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그 회사의 세일즈 트레이너가 각 나라의 민족성에 대해 놀라울 만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 중국, 한국의 기질을 아주 제대로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일본 사람이 명품을 살 경우라면 제대로 흠 없고 가장 좋은 제품을 권하되 종류가 귀한 것일수록 팔기가 쉽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에게 가격은 큰 문제가 아니다. 반면에 중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가장 좋은 브랜드를 권하되 표가 잘 안 나는 작은 흠으로 인해 큰 폭의 할인할 수 있는 제품이 인기가 있을 거라고 가르쳤다.
한국 사람의 경우에 그 포인트는 조금 달랐다. 한국 사람들은 주로 혼자가 아닌 소그룹으로 많이 올 텐데 무리 중에 누가 리더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파악이 되면 그에게 집중해서 판매하라고 알려줬다. 일단 리더가 마음을 정해 사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개 그를 따라 살 경향이 많다고 했다.
이 점은 필자도 그 자리에 앉아 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정말 기가 막힌 관찰이었다. 만약 직장의 동료가 함께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라면 한국 사람의 경우 자기만 혼자 튀려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의 상사나 혹은 남들과 유독 다르게 보이는 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자기 일에 대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주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결정 장애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기피하고 만다.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햄릿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이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모습에서 생긴 말이다.
사람들이 결정을 지나치게 주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은 아이들을 적게 낳아 잘 기르자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처럼 한 집에 형제가 3~10명씩 있어 함께 자랄 때는 모든 게 경쟁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일일이 챙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커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각 가구당 잘해야 한두 아이만 낳고 부모는 그들에게 그야말로 집중하여 키우고 있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아이들은 굳이 스스로 결정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결정을 부모가 다 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군에 입대할 때도 부모가 따라간다. 직장에 취직하려고 인터뷰할 때도 부모가 쫓아다니는 형편이고, 막상 취직해 직장에서 일할 때도 부모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결혼조차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마보이로 키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어떤 리스크도 스스로 안으려 하지 않는다. 결정권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자신이 모처럼 결정한 것에 남들이 반대 의견을 내면 그야말로 전전긍긍하게 된다. 자신의 결정을 자기 아이디어로 방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어떻게 보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회피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모두 미루고 타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린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쏟아지게 될 비난으로부터 미리 달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남들이 결정한 것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앞에 나서지를 못한다.
그다음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의 하나는 어떻게 보면 완벽주의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결정을 계속 미루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본인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비난을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항상 모든 것은 조금씩 지금보다 조금씩 더 낫게 개선함으로써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필자도 두 명의 극단적인 상사 사이에서 서로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기안을 몇 번이나 고쳐 쓴 적이 있었다. 자신들에게 책임이 닥칠지 몰라 어떻게든 그런 내용을 기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해야 하는 리더들이 이런 상태에 있으면 그 조직은 정말 어려워진다. 직장에서 직급이 올라가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면 리더로서 갖는 영향력에 대해 잘 인지하고 그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게 마땅하다.
어쨌든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실패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정 자체를 미루거나 회피만 할 수만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이렇게 실패를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당연히 겪게 될 실패로 인해 더 큰 인생에 대한 도전을 준비하는 과정임을 깨달아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게 필요하다. 자신의 자존감은 본인이 키워야 할 몫이다. 실수가 있더라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진보하도록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꼭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당연히 결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경험과 직관이 있으면 얼마든지 일은 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했듯이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이다.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정의 끝에 그런 신비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인생의 비밀을 만날 자격이 충분히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그 모험의 첫발이다.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말고 인생의 모든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