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의미
필자의 나이가 60대로 넘어가면서 생각과 느낌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언제까지 현업을 계속할 수 있을는지, 또 비록 지금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건강은 얼마나 버텨줄지 하는 것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이다.
얼마 전부터 주위의 알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어려움에 부닥치거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듣는 빈도가 높아졌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한 번씩 자신을 점검해본다. 혹시 내게 주어지는 어떤 메시지는 아닌지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생명보험 하나를 추가로 신청했다. 아마도 그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작년부터 갑자기 혈압이 생겨 약을 먹기 시작했고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처방도 받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최근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항목들은 너무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라서 설사 60대 이전이라도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처방만 잘 따르고 운동만 잘해주면 보험회사에서도 이런 것들은 그리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추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건강은 나와 그다지 상관없는 것으로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보험회사로부터 정작 통보된 심사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심사 내용 전부가 건강만 고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제는 나의 건강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정기 건강 점검받던 일이 있었다.
검진을 받던 날, 의사 선생님은 그날따라 평상시와 다르게 나의 목 언저리를 세심히 만졌다. 목 아래쪽 림프샘 어딘가에 뭔가 만져진다고 중얼거리면서 계속 이곳저곳을 확인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초음파 검사를 권했다. 폐 쪽으로도 X-ray도 같이 찍어 보는 게 좋겠다면서 처방전을 써주었다.
갑자기 나의 머릿속이 정말 바빠졌다.
모든 경우의 수가 다 돌아다녔다. 우선 진작 보험이라도 더 많이 못 들어놓은 게 제일 마음에 걸렸다. 물론 집에는 이 내용을 알릴 수가 없었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온 집안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후의 정밀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는 걸로 판정이 났다. 그제야 사람 사는 일이 한순간에 지옥같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 ‘가장 소중한 것’을 ‘지금’ 하라고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 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소에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과 한순간에 어이없이 이별을 고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더욱 소중하다.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다시 살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소중한 것’들 행하기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나의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었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겪어 봤지만 내 꿈이 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중간중간 바라는 것의 형태가 변한 적은 있었을 것이다. 살고 싶은 곳이라든가, 갖고 싶은 집, 차 또는 직업, 가족의 모습들 등등….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도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하면 우리 식구들이 정말 좋아하겠다는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번이나 직장을 옮기는 일도 있었고 더 나아가 나라도 몇 번씩이나 옮겨 다니는, 흔하지 않은 이민의 길도 걸었다.
결국 내가 시도했던 일들은 모두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 물론 같은 값이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중요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만큼 내 개인의 성취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를 더 많이 가진 일이나 환경을 선택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에너지는 나의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떤 일을 정할 때,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팀의 구성원들 살펴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부분이 겪는 직장의 어려움은 일 자체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많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가? 물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보다는 몸과 마음이 일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함께 조화롭게 되기를 기대한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한 가지 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살면서 정말 큰 벽에 부딪힌 적이 있았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시도를 해야 했었다. 그런 시도 중에는 많은 책들을 읽는 일이 있었다. 거기서 이미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많은 사람들의 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했던 가장 중요한 해결책의 하나는 바로 감사를 깨닫는 일이었다.
비로소 감사라는 말의 체험적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관념적인 감사만 있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를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행복에는 반드시 감사가 수반되어야 함을 그때 배웠다. 단순히 일이 잘되어가는 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님도 알게 되었다.
감사 없는 행복이란 그냥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순간의 기분이었을 뿐 바닥 깊은 곳에서 저미도록 느껴져 오는 행복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다.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
우리에게 값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이 넘치게 많지만 그들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별로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의 코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호흡,
아침 샤워할 때 얼마든지 쏟아지는 깨끗한 물줄기,
귓가의 시원한 바람,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시원한 소나기의 빗줄기,
눈부신 가을 햇살,
그리고 화려한 가을 단풍,
눈이 덮인 나무들과 들판의 아름다움,
차디 차게 시린 아침 공기,
숲길에 넘치는 숲의 향기들,
아침마다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들의 웃음,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던 우연한 인연들,
나의 책을 사랑해주는 독자들의 우정….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그냥 마구 주어지는 이런 행복들을 미처 다 읽어내지 못하고 살았다. 감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겐 앞으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수많은 버킷리스트가 있다. 그런 도전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사람으로서 남들이 시도해 보지 못한 일들을 해내는 것은 자존적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그 목록을 다 해낸다 해도 다시 갈증이 있게 될 것이다. 그 갈증은 바로 진정한 행복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온다.
이런 갈증을 없애고 그 성취의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하는 비밀은 바로 감사에 있다. 그 감사가 오늘을 사는 즐거움을 끊이지 않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