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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Mar 23. 2021

일주일 동안 글은 안 쓰고 술만 마셨다.

다짐과 과음과 숙취의 회전목마

일주일 넘게 글을 발행하지 않았다. 카톡 프로필에 브런치 작가가 된 날부터 디데이 표시를 해두었는데 오늘이 203일 되는 날이었다. 200일쯤이면 권태로울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으니 자책하지 말기로 한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9시가 지나있었다. 어제 10시에 잤으니 11시간을 넘게 잠을 잤다. 사람이 우울하면 잠이 많아진다는데, 요즘 나도 모르게 우울한 일이 있는가 보다. 어떤 감정이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때로는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유가 있긴 있을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그것은 내 우울의 원인이 될 수도, 결과가 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술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며 종종 책을 읽지만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풋은 가능하지만 아웃풋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가능은 하겠지만, 운이 좋으면 쓰나마나한 글을 쓰거나 나쁠 경우에는 아주 엉망인 글을 쓰고 다음날 다시 읽으며 스스로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래도 물론 술 마시며 들었던 생각들을 글감으로 짧게 적어두는 것은 좋아한다.


술은 내가 경험해본 것들 중에 (아직 마약은 해보지 않아서) 가장 극단적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시면 짧은 순간만에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기분을 들뜨게 한다. 하지만 간이 장시간 알코올을 해독하면서 정신은 급격히 우울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을 '스프링 효과'라고 부른다고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즐거운 쪽으로 많이 기울수록 우울한 쪽으로 더 많이 튕겨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체감상 나이가 들수록 즐거운 방향보다 반대급부로 우울하고 괴로운 방향으로 더 멀리 더 깊게 튕겨나가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서촌에서 와인을 마셨다. 둘이서 프랑스산 쇼비뇽 블랑과 스페인산 뗌쁘라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까바를 마셨다. 돈도 많이 쓰고 간도 많이 써서 다음날 속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의 술상대는 나에게 '저는 기본적으로 술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네 번 정도 했다. 직장상사가 부인과 저녁마다 술을 즐기는 것을 취미로 하는데, 며칠 전 그 상사의 부인이 간경화 진단을 받고 의사에게 부부가 쌍으로 혼이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도 다섯 번 정도 한 것 같다. 숙취가 없다며 숙취해소제도 마다했던 그는 다음날 머리가 띵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스프링 효과에 대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스프링 위에 올라서는 유혹을 쉽게 떨쳐내기란 힘들다, 암 그렇고말고.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빠를 닮았기 때문 일 것이다. 왜냐면 엄마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거니와 그렇지 않더라도 아빠가 술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술을 아주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온 다음날이면 나뿐만 아니라 아빠까지 힐난의 대상이 된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눈치도 없이 껄껄 웃으며 '삶의 윤활유'라고 술을 옹호해서 욕을 두배로 더 잡수신다. 불교신자인 엄마는 종종 '술을 마시는 것은 지혜의 종자를 끊어버리는 행위'라며 혀를 찬다. 아빠 말도 엄마 말도 틀린 게 하나 없는 말이다. 극단적인 양측의 의견을 한집에서 들을 수 있어서 어쩌면 나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적당히 중간이 좋으니까.


이번 주는 금주를 해볼까? , 아니 지키지 못할 약속은 자기혐오만 키울 뿐이다. 적당히 마셔야지. 너무 우울함으로 튕겨나가지 않을 정도로 즐거워하고, 삶의 윤활유가  정도만 마셔야지. 지혜의 종자를 끊어버릴 만큼 마시지 말고, 글쓰기와 너무 멀어질 만큼 마시지는 야지.


언제나 다짐과 과음과 숙취는 알코올의 회전목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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