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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Mar 13. 2021

그냥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면

미움이 주는 고통

아주 오래전,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던 친구가 있다. 17살에 만났던 그 아이를 나는 왜 21살이 될 때까지 미워했을까. 심지어 만날 일이 전혀 없던 때에도 가끔씩 나는 그 아이를 떠올리며 열렬히 미워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중학교 시절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설레면서도 무척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지금은 더 심하다고 하지만 그때도 남녀 학생 비율이 불균형해서 여학생은 12명, 남학생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그리고 나는 반에서 유일한 한 씨라서 마지막 번호, 12번이었다. 그리고 1번이었던 그 아이. 중성의 느낌인 내 이름과는 달리 그 아이는 어여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여학생 12명 중에 2명은 육상부 학생들이라서 오후 수업에는 여학생이 열 명뿐이었다. 난 늘 인싸가 되고 싶은 관종이라서 반 전체, 특히 소수의 여학생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 아이는 아담한 키에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포동포동한 볼살은 뽀얬고, 웃을 때는 두 볼을 발그레 붉히며 한쪽에 보조개를 만들었다. 나는 창문에 기대어 운동장을 바라보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먼저 말을 붙였다. '친하게 지내자, 너는 얼굴이 참 귀엽다'라고 칭찬을 해가며. 나는 누구에게 다가가는 것에 적극적인 아이였고, 그때까지 내가 만난 친구들은 모두 마음이 말랑말랑한 아이들뿐이었다.


 학기가  끝나갈 때에도 나는 결국  아이와 친해지지 못했다.  아이는    친해진 아이와 둘이서만 붙어 다녔다. 분명 왕따라고 하기엔  아이가 나머지 우리와 친해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 속마음을 공유해야만  편이라생각하는 철없는 나이였고, 그래서  숨기는  많아 보이는  아이는 나뿐만 아니라 여럿에게 미움을 샀다. ‘이유 없이 싫은 ', 나는  아이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지나고 우리가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아이를 미워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더 늘어났다. 그 아이가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과 사귀는 사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말이 많고 그것에 반비례해서 비밀이 적은 나는 그 아이가 무척 얄미웠다. 조용히 존재하며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그 아이를 나는 마음 깊숙이 미워했다.


나의 미움에 대해 그 아이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그 아이를 미워하다가, 졸업하고 그 아이와 마주 칠일이 없을 때에도 나는 2년을 더 미워했다.


나의 미움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왜 나는 계속 보이지도 않는 그 아이를 떠올리며 미워하고 고통받았을까. 미움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사람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유 없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하면서 ‘이유가 없다’는 이유를 붙인 것은 그 이유가 스스로 생각해도 타당하지 않기에 그랬던 것이다. 나와 달라서, 나의 열린 마음이 거절당한 기분이 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사귀어서 (그마저 다 오래 전의 일인데도) 나는 그 아이를 미워했다. 미움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미워할 때는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며 더 이상 미워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 나는 미움을 멈췄다. 그리고 미워하지 않는 일은 그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미움을 멈추는 일은 미움의 대상과의 화해나 외부와의 소통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소통으로 풀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나만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나를 설득하고 이해하는 일.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나서부터는 실용적이지 않은 미움은 마음에 품지 않으려 한다.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은 때도 많지만, 쓸모가 있는 감정인지를 검토하는 일은 늘 내 정신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오래전 내 인생에서 가장 미워했던 그 아이. 아주 가끔은 그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포동포동한 볼살에 귀여운 보조개를 가진 그 아이가 나름대로 잘 살고 있기를, (나보다는 아니지만) 행복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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