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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Mar 05. 2021

경칩을 기념하는 노르웨이 친구

나의 첫 번째 외국인 독자를 소개합니다.

"Hi, Thorn. How are you.
Today is the day I told you before,
the day when forgs wake up"
"Oh yes! I remember the name.
Happy Gyeong-chip!"


가끔 쏜(Thorn)은 인스타 메시지로 내게 안부를 묻는다. 내가 페이스북을 할 때는 종종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나와 쏜이 작별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 지 14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한 번도 노르웨이 여행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쏜은 제주도에 있는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아마도 다음 포털이었던 것 같다).


도통 만나기 어려운 노르웨이 친구지만 잊을만하면 내게 안부를 물어온다. 노르웨이 피오르드 해안이나 오로라를 배경으로 트레킹 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티브이로 접하면, 그 별세계에서 내 안부를 물어온다는 것에 특별한 감정이 든다.


Thorn이 나에게 보내준 노르웨이 사진들


14년 전에 쏜과 나는 시드니에서 함께 살았던 셰어 메이트였다. 우리는 이민자 시대에 지어진 100년도 넘은 허름한 2층 집에서 살았다. 방이 4개인 그 집에 6개의 침대가 있었고 6명+a가 그 집에서 생활했다. 한 달을 살다가 떠난 일본 친구가 있었고 세 달을 살았던 스웨덴 커플도 있었다.


그중에 쏜과 크리스 그리고 나는 9개월이나 함께 살았으니 제일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쏜은 노르웨이에서 시드니로 와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크리스는 시드니에서 취업을 하고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시드니의 흔한 한국 워홀러였다. 우리 셋과 쏜의 여자 친구, 크리스의 여자 친구 그리고 내 남자 친구까지 여섯 이서 자주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해변에 가고 수영을 했다.  


쏜은 주로 친절하고 매너가 있었으나 이름처럼(thorn) 가시같이 뾰족한 면이 있었다. 가끔 기분이 나쁘면 그것을 숨기지 않고 표현해서 사람을 무안하게 했는데, 다행히 나는 능숙하지 않은 영어 덕분에(?) 쏜과 별문제 없이 잘 지냈다. 하지만 내가 청소 규칙을 어기거나 공동구역을 어지르면 어김없이 쫓아와서 짙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한숨을 쉬고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쏜의 방은 아비규환이었다.


한 번은 쏜의 방에 들어가서 쌓여있는 옷더미를 보며 '여기서 입을 옷을 찾는 게 가능한 거야?'라고 물으니 '물론이지. 정확히 오른쪽은 깨끗한 옷들이고 왼쪽은 한번 입었던 옷들이야, 정확해'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쏜은 공대생이었지만 독서와 언어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다. 일본어 공부를 취미로 하며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어느 날에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아직 하루키 소설에 푹 빠지기 전이라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게 좀 아쉽다.


쏜은 물론 영어를 유창하게 했고 일본어뿐만 아니라 스웨덴어도 가능했으며 나와 대화할 때는 한국어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쏜은 가시 같은 본인 성격과 잘 맞게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라는 한국어 문장을 외워서 가끔 저녁 식탁에서 써먹었다. 불쑥 나타나서 '나는 크로케 생각아내'라고 말하면 얄미운 생각이 들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나는 아마 쏜에게 많이 정이 들었던 것 같다. 작별할 때 울지는 않았지만.


14년 동안 쏜은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으며 이혼도 했다. 쏜은 나를 생각하며 14년 간 걔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최근에는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고 글쓰기 모임을 나가고 있으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더니, 쏜은 무척 내 글을 읽고 싶어 했다. 몇 편의 내 글을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메시지 창에 열심히 붙여 넣었다. 그중에 호주에서 있던 일을 글로 적은 것도 있었다. 쏜은 그것들을 열심히 읽었고 번역까지 해준 것에 고마워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흥미로워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누구든 내 글을 읽어주면 황송한 마음이 드는데, 쏜이 나의 첫 번째 외국인 독자라는 생각을 하니 직접 찾아가서 성의표시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끔은 영작을 해가며 대화하는 것이 귀찮아서 메시지를 보고도 대답을 한참 동안 미루기도 한다. 그래도 오늘은 경칩이라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경칩을 소개할 때, 한국에는 귀여운 기념일이 많다며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던 그 초록색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경칩을 축하하는 한국 친구들은 하나도 없다. 경칩을 축하하는 노르웨이 친구 한 명만 있을 뿐이다. 오늘은 개구리가 깨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화창한 한국 날씨까지 사진으로 함께 전해 본다.


Happy Gyeong-chip!


내가 그린 Thorn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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