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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Feb 22. 2021

자유로는 자유롭지 않지만

자유로 예찬

자유로는 자유롭지 않다. 제한속도 90km라니 자유로라는 이름이 가당키나한가 싶다. 제2자유로는 한술 더 떠서 제한속도 80km인데 운정 부근에 70km 제한인 과속 카메라가 최근에 설치되어서 자유를 더 억압하고 있다. 퇴근이라고 신나게 액셀을 밟다가는 월급의 큰 몫을 벌금으로 내야 할 테니 시원하게 뚫린 도로에서도 마음을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


차를 사고 7년간 가장 많이 달렸던 도로가 자유로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차를 사러 가는 길에도 자유로를 타고 일산에 갔던 것 같다. 차를 사고 몇 개월 후에 공부방을 파주에 열었고 자연스럽게 출퇴근길은 자유로가 되었다.


사실 자유로가 자유롭지 않다고 썼지만, 따지고 보면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보다는 확실히 자유로가 자유롭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사고나 도로정비 같은 일이 있는 게 아니면 막히는 법이 거의 없는 곳이니까.


나처럼 출근하는 차들도 자유로를 달리겠지만, 주말에는 임진각으로, 아울렛으로, 출판단지로, 정말 그것도 아니면 모텔촌으로 나들이를 가는 차량이 자유로를 달린다. 파주에 생각보다 (기대하지 않으면) 볼거리가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주의 핫플레이스는 출판단지이다. '지혜의 숲'이라는 도서관도 있고, 건축상을 받은 출판사 건물들이 출판단지를 채우고 있어서 눈이 즐겁다. 건축상 받은 건물이 워낙 많아서 심지어 상업적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출판단지가 있어서 그런지 가끔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사방에 출판물을 쏟아놓고 곤란을 겪는 트럭을 만나기도 한다. 자유로 단골 이용자로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래저래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파주 지혜의 숲 도서관

홍콩에서 친구가 한국 여행을 왔을 때 임진각을 보여주겠다며 함께 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던 적이 있다. '우리 지금 북한에 넘어온 거야'라고 장난쳤더니 홍콩 친구는 작은 눈을 크게 뜨며, "Really?"를 연신 외쳤다. 파주와 북한은 really 가깝다. 가끔 틴더를 켜보면 송파나 분당 사는 남자들이 하도 멀어서 (틴더에는 서로의 거리를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북한에서도 틴더가 가능하다면 개성 사는 남자와 매칭 되는 게 더 쉽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데이트 코스도 자유로가 되겠지.


리얼로 북한을 넘나드는 것은 아니지만, 파주에서 일할 때 북한의 도발과 관련된 뉴스가 터지면 이 아파트 단지가 총알받이가 되는 건가 하고 으스스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라면을 사재기해놔도 전쟁은 쉽게 터지지 않는다는 걸 보았는데도, 분단국가의 분단선 가까이, 물리적 거리가 주는 오싹함이 있다.


물론 자유로에는 아름다움이 더 많다. 특히 4월. 벚꽃축제를 드라이브스루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유로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그곳을 달리면 정확히 자유로 JC부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늘 1차선에서 바쁘게 출근하던 나도 그때만큼은 벚꽃을 보기 위해 가로수가 늘어선 4차선에 붙어서 천천히 달리게 된다.

자유로의 벚꽃 풍경

자유로의 저녁과 밤은 계절과 상관없이 자주 아름답기도 하다. 서쪽 김포방향으로 넘어가는 햇무리는 그 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그것을 목격할 때마다 '하늘에는 저런 색도 있구나!' 하고 세상의 다채로운 색감이 모두 자연에서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제도 자유로를 타고 퇴근을 했다. 사방이 뚫린 고속화도로 위에서는 유난히 달이 잘 보였다. 달은 언제나 두 눈으로 봐야만 어여쁘다. 핸들을 꺾을 때마다 달을 찾는 퇴근길에는 늘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다정하게, '오늘 달 봤어요?'


그대들도 자유로 위에 뜬 어여쁜 달 한 번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글을 남긴다. 자유로는 자유롭지 않아도 아름답다. 자유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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