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Feb 19. 2021

신경질적이었던 신경과 그 간호사

그녀가 불친절한 이유

일산에 위치한 13층 높이의 종합병원은 온종일 아픈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때 우리 엄마도 이 병원 10층에 누워있어서 우리가족 모두의 마음을 졸였다. 그날 우리가 찾아간 곳은 2층 신경과였다. 그곳 데스크 안쪽에서는 예민한 눈빛을 가진 간호사가 권태로운 말투로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 반문하는 환자에게는 짜증을 부렸다.


엄마와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엄마의 진단 확인서 때문이었다. 엄마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로 일을 그만두셨다. 꾸준한 치료와 운동으로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기회를 얻었을 때, 엄마는 실업급여의 기회도 잃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그리고 당시 내 예상보다 오랜 기간 동안 엄마는 고용노동센터와 병원을 반복하여 방문했다. 아무래도 뭔가가 계속 잘못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 일정을 바꿔가며 엄마와 고용노동센터에 찾아갔다. 나 역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신청 과정이었다. 센터 직원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신청이 완료되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필요한 문장을 알려주는 것이 법적으로 옳지 않아서 은근히 방법을 에둘러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그것을 파악하고 재빨리 행동하기에는 이제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렸다. 센터 직원은 여러 번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며 곤란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입만 웃었다. 엄마는 그저 몇 주 동안을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두 손을 모아 연신 합장을 하며 센터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성심을 다해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고 될 일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신청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병원을 찾아갔을 때에는 상황이 더 나빴다. 엄마는 역시 병원에서도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모르면서 몇 주간 찾아오는 진상 환자였다. 의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간호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엄마는 무엇인지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을 자꾸만 부탁했다. 고용노동센터에서 진단 확인서를 다시 떼어오라고 했다는 말만을 반복하면서. 나는 엄마를 가로막고 최대한 상황을 정리해서 원하는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새로운 진단 확인서를 받았다. 사실 센터에서는 그리 불쾌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는 순간적으로 간호사에게 욱하고 화가 났다.


너무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인 신경과 간호사였다. 한숨을 내쉬며 냉정하게 말하는 간호사에게도 엄마는 계속 웃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부탁을 했다. 나는 엄마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무시당하는 모습이 속이 상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가? 아주 싸가지가 없었다. 나에게도 신경질적으로 말하면 싸워야겠다고 생각하며 간호사와 대화를 했는데 다행히 나에게는 크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병원 의자에 앉아서 진단 확인서를 기다렸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간호사에게 다가갔고 별안간 아주 큰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마구 소리를 질렀고 간호사에게 받은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간호사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선 그 간호사에 대한 감정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신경과. 주로 노인에게 찾아오는 치매, 뇌졸중, 뇌경색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곳. 그곳을 둘러보니 온통 말귀가 어두워 보이는 노인들뿐이었다.


하루에 몇 명의 환자들과 실랑이를 벌일까. 말이 도통 통하지 않고 떼를 부리는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물론 모든 노인들이 말이 안 통하고 고집이 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간호사의 신경질적이고 짜증 섞인 말투는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나만해도 잘 못 알아듣는 엄마에게 가끔 쉽게 짜증을 내버리곤 하니까. 내가 그 간호사였다면 모든 환자들에게 친절할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호사가 금새 측은해졌다. 환자들에게 냉담해지는 것이 그녀가 아주 많이 지쳐가고 있다는 표시 같아서. 어떤 일이든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그런 감정적 노동은 극한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신경질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 간호사의 상황과 나이가 들면 기민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상황을 나는 동시에 생각했다. 엄마가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연신 합장을 하고 부탁하는 모습을 답답해하면서, 나도 늙으면 어쩔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누군가의 울화통이 터질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질문은 너무 훌륭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