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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Apr 12. 2021

네일아트가 미용실 가는 것보다 기분전환이 되는 이유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고 싶다

"네일아트가 미용실보다 기분전환이 더 되는 것 같더라"

며칠 전 친구들과의 단톡 방에서 봄맞이 네일아트에 대한 수다를 떨던 중 친구 한 명이 했던 말이다.

"야, 당연하지. 네일아트는 사진처럼 되거든, 미용실에서는 사진처럼 안되는데^^"

친구는 내 말을 듣더니 이런 팩트 폭행이 어딨냐며 웃었다.  


누구나 연예인 사진을 들고 미용실에 찾아가 본 기억이 있지 않을까? 미용실 언니에게는 웃으며 계산을 했지만, 사진과는 확연히 다른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 고등학교 때는 심지어 집에 오자마자 오열하며 갓 파마한 머리를 벅벅 감았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나름 수년간 미용실을 바꿔가며 나에게 맡는 머리스타일을 찾고, 사진 속의 그 여자와 나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내가 가장 외모에 스트레스받았던 시기는 앞서 언급한 것과 반대로 네일아트를 매달 열심히 받을 때였는데,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네일숍을 차려서 단골로 다닐 때였다. 미용에 관심이 많고 미용에 종사하고 있어서 그런지 온갖 시술과 성형에 대한 최신 정보를 알고 있는 그녀는 나에게 자주 시술을 추천했다.


그 사려 깊은 추천은 왠지 내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말이 좋아 추천이지, 그것은 외모 지적과 다름없었으니까. 가까이 마주 앉아 손톱의 큐티클을 제거하다 말고 나를 찬찬히 뜯어보는 그녀의 눈빛. 그녀가 내 턱이나 눈에 이런저런 시술을 추천하면 나는 갑자기 없던 컴플랙스도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눈코턱 수술에 입꼬리 수술까지 완료한 그녀는 예쁜 얼굴이었으니 나에게 충분히 조언을 해줄 자격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단단하고 야무지지 못해서 그녀의 말을 그대로 귀에 담고 마음에도 담았다. 남은 인생을 더 예쁜 얼굴로 살고자 하는 노력은 아주 합리적인 투자인 것처럼 들렸다. 그 뒤로 신사역과 강남역 사이에 있는 성형외과를 다섯 군데나 방문하며 쌍꺼풀 수술 상담을 받았다. (고백하건대 내 눈은 19살에 수능 끝나고 이미 동네에서 쌍꺼풀을 만든 눈이었다.)


그때 나는 왜 다시 쌍수에 꽂혔던 걸까. 아마 예쁜 눈이 생김새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뼈를 깎거나 보형물을 집어넣는(그녀가 추천했던) 수술을 할 용기는 없고 그저 외모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로비의 화려한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어느 유명 성형외과에서는 내 눈을 자세히 들여본다는 느낌도 없이 수술 날짜와 가격에 대해 얘기했다. 쌍꺼풀 수술은 공장에서 인형 눈알 붙이듯이 세상 간단한 것이라는 듯.


마지막에 갔던 신사동8층짜리 건물에는 성형외과가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유명 성형외과는 아니었지만 예약하지 않아도 상담해주는 병원  군데를  찾아가 수술 상담을 받았다. 금액적인 부분과 대략적인 수술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상담실장은 앞서 방문했던 병원들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실장이 나가고 의사가 상담을 위해 상담실에 들어왔다.


"지금 눈 예쁜데 왜 다시 수술하게요?"

의사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예?"라고 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나는 왜 다시 수술하려고 하는가? 진짜 원하는 눈매가 확실히 있는 건가? 왜 하는지 이유가 있어야만 수술을 하고 났을 때 정말 만족할 텐데 말이다.


의사는 몇 번이나 더 지금 내 눈이 자연스럽고 예쁘다고 칭찬을 하고서는 굳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며 수술방법에 대해 얘기를 하고 나갔다. 그리고 실장이 다시 들어와서 만족스러운 수술이 될 수 있을 거라며 꼭 병원을 다시 찾아오라고 명함을 쥐어줬다.


결국 나는 수술을 하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내가 원했던 것은 수술이 아니라 내 눈이 예쁘다는 평가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의 주력이 외모가 아니며, 오히려 수려한 외모가 아니라서 내면이 더 돋보이지 않냐는 궤변을 가끔 하며 산다. 상담을 위해 성형외과를 전전하던 그때보다는 훨씬 더 내 얼굴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일숍도 바꿨다.)


하지만 남의 지적과 평가에 휘둘렸던 경험이 부끄러우면서도 그것이 정말 과거에 국한된 일인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아직도 누군가 나에게 예쁘다고 평가해주기를 바라고 예쁘지 않다고 말하면 크게 마음이 동요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에 너무 젖어있나? 역시 깊숙이 박힌 생각은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며칠 전에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산뜻하게 커트를 쳐내고 미용실을 나서는데 무척이나 마음에 들고 기분전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 거울이 이렇게 친절했던 적이 별로 없는데 어쩐 일이지? 했더니 그럼 그렇지, 그 이유는 바로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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