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이는 9살 말티즈
우리 집 설이는 5개월에 데려와서 벌써 9살이 되었다. 개 나이 9살이면 사람 나이 60살이라고 한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설이는 내 나이를 훌쩍 뛰어넘고 이제 노견으로 향해가고 있다.
이런 숫자 계산은 무척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유한한 우리의 시간을 사랑으로 더 채우겠다는 애틋함 같은 것도 생기고 설이의 건강에 더 유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개들은 늙는 것에 기분 나빠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쉽게 개들의 나이를 묻는다. 며칠 전에는 개를 키우지 않는 지인이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설이의 나이를 물었다.
내가 이제 곧 열 살이라고 했더니 "와 그럼 이제 할머니네요?"라고 말해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반려견이 없으니 내 심정 모르겠지 생각하며 '할머니'라고 하든 말든 넘겼는데, 어느 날은 "설이할머니는 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우리 설이에게 당장 사과하세요!"하고 화를 내고 싶었다.
물론 화를 낸다면 어리둥절해할 테니, "할머니라고 하지 마세요ㅠㅠㅠㅠ 저 너무 슬퍼요."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그 사람을 생각하면 '설이 할머니'라는 단어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그 사람을 비난하기에는 나도 예전에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설이가 1살이었을 때 15살이 된 친구네 개를 만나게 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네 개에게 할머니라고 부른 것이다. 친구 역시 할머니라는 말에 속이 상해했다. 그때 그 마음을 이제야 내가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미안하다 친구야. 미안하다 슈미야.
우리 설이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쉽게 설이의 살 날을 계산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내가 예민한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설이한테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것 일수도 있다.
나 혼자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우리 언니는 종종 설이를 안고 "설이 오늘도 사기당했잖아"하고 말한다. 산책시켜준다고 사기를 치고 바쁘면 나 몰라라 하는 개사기꾼. 나는 사죄와 사기의 반복인데도 설이는 언제나 사랑뿐이다.
설이에게 잘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늙어버렸다는 생각을 하면 함께 산책을 하다가도 코끝이 시큰시큰하다. (사기꾼은 반성합니다..)
하지만 설이는 동안이기도 하고 요즘 9살이면 노견 축에도 끼지 못한다. 사람 수명이 늘어서 개 수명도 스무 살까지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빼도 박도 못하는 노견이 되더라고 설이는 우리 집에서 언제나 귀여운 막내일 뿐이다.
우리 강아지 할머니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