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차이

나의 밥벌이이야기

by 미쓰한

수능이 끝난 겨울방학 때 나는 앨범 공장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친한 친구가 나와 또 다른 친구 한 명에게 단기 알바를 소개해서 셋이 함께 공장으로 일을 다녔다.

IMF 직전에 지어진 도미노 같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버스로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공장이 있었다.

고골. 그 시골마을의 이름이었다. 그 당시에는 니콜라이 고골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골의 소설 ‘죽은 혼’의 배경이 딱 그런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마을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고 사회생활에 막 발을 들인 내 마음이 그랬다.

앨범 공장은 성수기를 맞아 기계를 가열차게 돌리고 있었다. 공장에 도착해보니 내 예상과는 달리 사진을 꽂는 앨범이 아니라 학교 졸업앨범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겨울은 바쁘고 그래서 수익이 좋은 계절이었을 것이다.

사장님은 인상이 좋은 아저씨였고, 직원으로는 깐깐한 파마머리 아주머니 한분과 중국인 두 명이 있었다. 우리가 했던 일은 당연히 고도의 기술이 전혀 필요 없는 단순 작업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해야 한다는 피곤함을 빼면 힘들었던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달 정도 일을 했고 받아야 할 돈은 30만 원 정도였다.

알바비를 받으면 무얼 하려고 했었을까?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30만 원은 나에게 대단한 거금이었다. 받을 돈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배짱이 두둑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그 앨범 공장은 부도가 났다. 사장님은 우리 셋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조금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불안함이었고 그다음으로는 분노와 억울함이 몰려왔다. 우리가 아직 19살이라서 만만해 보이는구나. 나는 아직 불리하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였다.

나는 아빠에게 내 억울함을 얘기했다. 나의 노동에 대해,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아빠는 어른이니까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아빠는 앨범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딸아이의 월급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것보다는 부도나 먼저 잘 해결해서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당시 아빠는 세네 번이나 부도를 경험한 사업가였다.

아빠는 그 알바비를 본인이 대신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빠에게 몹시 화를 내며 울었다. 지금도 아빠의 방침이 옳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인간이 측은지심이 있더라도 사회초년생에게 사회가 합리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내가 했고 권리도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저 아빠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과 경험에 빗대어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앨범 공장 사장님은 아빠와 통화한 며칠 후 알바비를 입금해주셨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 후에 나는 언니와 함께 편의점을 운영했다. 우리가 월급을 지불해야 할 아르바이트생이 5명이었다. 가게 수익은 점점 줄었고 본사에 송금해야 할 돈은 그대로였고 시급은 점점 늘고 있었다. 주휴수당을 지불하면 수익은 마이너스를 찍을 것이다.

어느 날 주휴수당에 대해 내가 불만을 얘기할 때 내 친구가 내게 말했다.

“당연히 줘야 하는 거지만 역시 사업자 입장에서는 주휴수당 주는 게 엄청 아까울 것 같다.”

그때 나는 많이 울컥했다. 아까운 것이 아니다. 내가 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나도 법을 어기지 않고 장사를 하고 싶었다. 업종을 잘못 선택한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워 마땅한 일이라면 내 잘못이 맞긴 한데 그래도 악덕으로 몰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친구도 나중에는 내 입장을 이해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입장과 경험에 빗대어 판단하니까 그럴수는 있다.

실제로 많은 편의점 점주들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고 있었다. 점주는 알바를 고용할 때 그것을 명시하고 시작했고 본사는 점주의 재량이라며 손을 뗐다.

우리는 알바하신 분들과 주로 모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일을 마무리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그 사람도 주휴수당이 없는 것을 알고 시작했으나 일을 그만둘 때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법을 어긴 건 우리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주휴수당이 합쳐진 금액을 보내며 ‘주휴수당도 퇴직금도 넉넉히 줄 수 있는 좋은 곳에 꼭 취업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진심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내가 화난 것은 그 사람의 야비함보다는 점주가 죽어나는 시스템 자체였으니까.

고용인과 고용주는 입장 차이가 있다. 둘 중 누가 먼저랄 것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직종과 직업을 변경하기 쉬운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날 고용주는 고용인이 되고 고용인은 고용주가 된다. 누구든 입장은 바뀔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본인의 위치를 한정시키지 않을 때 우리는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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