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
7년 전 아빠가 일 때문에 단양에 몇 개월간 계신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빠 회사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나와 언니의 직업에 대해 들으시고 단양에서 공부방을 차리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시골이지만 학구열이 있다고, 자기 아들도 과외를 시키려고 하는데 선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시내에 고등학교, 중학교가 몇 개고 그에 비해 시내에 학원은 몇 개고, 이런저런 얘기를 아빠에게 했고 아빠는 그걸 언니와 나에게 전달했다. 그때 우리는 일산에서 전문과외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단양은 가능성 높은 틈새시장이었다. 일산과 목동에서의 경력과 이런저런 이력들을 가지고 마케팅을 잘할 수 있을 거야, 언니와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수익구조를 갖게 될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면에 있어서 우리는 사업가였다. 하지만 둘 다 꼼꼼하기보단 무모한 편이었고 사전 준비에 허술했다.
우리는 아빠가 계신 곳에서 십오 분 정도 떨어진 단양시내의 낮은 아파트 단지에 월세를 얻었다. 나는 계약이 되기 전까지는 그 집에 가보지도 못했다. 우리는 블루오션을 만났고 더 높은 파도에 올라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마치 단양이 기회의 땅이라도 되듯이 우리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고 그것은 우리의 의욕을 부추겼다.
언니와 나는 일산에서 하던 일을 다 접고 갈 만큼 무모하지는 않았다. 주말을 모르고 일하다가 나는 하루 날을 잡고 혼자 단양으로 내려갔다. 그것은 말하자면 선발대였던 것이다. 내가 언니보다 먼저 가서 공부방 홍보를 하기로 했다.
나는 첫차를 사고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했다. 외부순환도로를 타고 구리를 지나서 고속도로를 탈 줄 알았는데 어쩐지 네비는 자꾸 국도를 알려줬다. 나는 네비에 무료도로안내가 설정된 줄 모르고 3시간이면 도착할 길을 장장 4시간 반이 걸려서 겨우 도착했다. 아빠는 내가 안 와서 걱정을 하셨고 나는 네비를 봐야 해서 자꾸 아빠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초보에게는 갓길에 세우고 전화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쉽게 들지 않았다.
이주에 한 번은 집에서 만나는데도 아빠는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 나는 아빠가 혼자 지내는 곳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슬플 것만 같아서. 아빠는 편하게 자고 가라고 단양에 있는 대명리조트를 예약해줬다. 나는 철도 없이 어쩐지 놀러 온 거 같은 기분으로 캔맥주를 홀짝이다가 잠을 잤다.
다음날 나에게는 커다란 임무가 있었다. 공부방 전단지를 돌리는 것. 한껏 우리 피알을 자랑스럽게 적어놓은 전단지 아랫부분에 언니와 내 번호가 세로로 적혀있었다. 전날 리조트 방안에서도, 겨우 문연 곳을 찾아 들어간 롯데리아에서도 나는 열심히 가위질을 해서 그것을 오징어 다리처럼 만들었다. 우리의 학생들과 학부모들, 우리의 고객들이 하나씩 뜯어가면 금세 우리에게 전화가 올 것이다.
나는 단양시내에 일자로 뻗는 길을 건너편까지 왕복으로 걸으며 버스정류장과 전봇대에 전단지를 열심히 붙였다. 처음 얼마간은 서투르게 붙였고 버스정류장을 다섯 개 정도 지나자 요령이 생겨서 수월하게 붙였다.
주차해놓은 곳으로 돌아가며 미처 전단지를 붙이지 않은 곳이 있어서 하나를 꺼내 붙이는데 식당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누가 이걸 확 떼어버리고 가더라고~ 다음에 내가 보면 떼지 말라고 할게!”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아주머니의 말은 따뜻했지만 누군가 우리를 몹시 못마땅해하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좀 무서웠다. 학생 몇몇이면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는지 숫자 계산만 열심히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으로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적금을 들었을 때와 같은 감정이었다. 적금 가입 완료와 함께 은행 직원은 예상만기금액을 알려주었다. 거기에는 나에게 아직 없는 오백만 원이 적혀있었고 나는 이미 그 돈을 가진 거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매달 꾸준히 납입하는 과정 없이 그 만기금액에 도달하는 법은 절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만기가 다가왔을 때 ‘쉽게 큰 금액이 내 것이 된다’는 기분 같은 것은 없었다. 꾸준함이 결실을 맺을 때의 기쁨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만기금액만 바라보고 신이 나서 일단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기금액을 모을 것인지에 대한 준비도 없이. 결국 꾸준한 노력의 납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우리의 단양 드림은 에피소드로 끝이 났다. 월세는 두 달치를 날렸고 과외 문의는 두 달간 한번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몇 개월 뒤에 적당한 손해와 꾸준한 노력으로 파주에 공부방을 오픈했다. 시험기간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대를 분산시키느라 애를 먹을 정도로 공부방은 잘됐다. 금방 쉽게 모은 학생들이 아니라 꾸준히 한 명씩 찾아온 아이들이었다.
아직도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만기금액을 생각하며 의욕을 불태울 때가 있다. 그것의 후유증은 빠른 의욕상실과 흥미 상실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나는 ‘유명한 작가’라는 만기금액만을 생각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이제 고작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은 지 한 달이 되었는데 ‘유명한 작가는 대체 언제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그래도 변하고자 다짐한다. 매일 쌓아 올리는 노력으로 대기만성에 오르자. 세상은 노력에 복리이자까지 붙여줄지도 모른다. 아차 그것도 기대하지 말자. 그냥 하자. 꾸준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