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서도
그녀의 얼굴은 앳돼 보였다. 순전히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도 그 당시 내 나이보다는 한 네다섯 살 정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 스물다섯이나 여섯 정도. 내가 그녀의 특징 없이 평범한 얼굴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쪽 일을 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땡큐라고 말하는 그녀의 억양은 한국인의 것이었고, 그녀가 쓰는 화장대에 있던 간식은 초코파이나 뽀또,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청소 전문가라고 할 만큼 시드니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호주에 중국인이 없어지면 경제가 휘청이고 일본인이 없어지면 식당이 사라지고 한국인이 없어지면 도시가 더러워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한국인 워홀러들은 청소를 했다.
4개월의 어학연수가 끝날 때쯤 나는 나폴레옹 스트리트에 있는 3성급 비즈니스호텔에서 청소를 했고, 몇 달 뒤에는 하이드파크 앞에 있는 4성급 관광호텔에서 청소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필리핀 영사관에 가서 청소를 했고 가끔씩 일이 들어오면 일당을 받고 새벽에 오피스 청소를 했다. 6개월 동안 나는 생활비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와 호주를 2개월간 여행할 경비를 마련해야 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여행경비를 빨리 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고소득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아마 그녀만큼 고소득은 아니었을 테지만 말이다.
내가 청소할 곳은 시드니 센트럴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밖에는 까맣고 큰 자동차 안에 까맣고 큰 남자들이 늘 무서운 얼굴로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1층에는 남자 고객들이 대기를 하는 곳이었고 2층에는 여러 개의 방들이 테마별로 꾸며져 있으며 3층에는 스파가 있는 큰 평수의 방들이 있었다. 1층에서 남자 고객이 여자를 고르면 그 여자와 함께 정해진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객이 돈을 지불한 시간이 지나서 방에서 나오면 이제 나와 내 동료들이 그 방에 들어갈 차례가 되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그런 일들이 합법이라고 했다. 합법이건 불법이건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나는 어리고 어리석어서 가치판단이 뚜렷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와 함께 청소했던 한국 언니들은 간호학과 학생들이었고 모두 영주권 취득을 준비 중이었다. 내 눈에는 다들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제일 나이가 많은 언니도 고작 이십 대 후반이었다. 다들 타국에서 저마다 살길을 찾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고객들이 다녀간 방을 치우는 것이 주 업무였지만 우리는 가끔씩 여자들의 대기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웠다. 호주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곳이었고 그 대기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왔건 그 여자들의 복장은 모두 비슷했다. 남자들은 얼굴을 보고 여자를 고르는 걸까? 디테일한 절차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처음 그곳에 들어왔을 때 대기실에서 그녀를 보고서 우리는 우리끼리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녀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고객들이 더 많았다. 청소 매니저 아주머니는 비가 오면 남자들이 더 발정이 난다면서 한심한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런 이유로 아주머니도 나도 돈을 벌었다.
그날도 비가 왔고 이른 시간인데도 찾아오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입실과 퇴실이 표시되는 컴퓨터 뒤편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항상 금발머리를 틀어 올려 묶은 직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2층 상황을 1층에 전달했다. 다른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그녀는 싱글맘인 것 같았다. 말끝마다 ‘유노 왓 아민~?’, ‘유노 왓 암쎄잉~?’을 너무 자주 써서 그녀의 말은 언제나 더 정신이 없게 들렸다.
비가 오는지 그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 작은 공간에서 고객의 퇴실을 기다리는 그때, 갑자기 그녀, 우리와 같은 나라에서 온 그녀가 남자와 함께 들어갔던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기도,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금발의 싱글맘 직원은 1층에 이 상황을 전달했다. 남자 고객이 콘돔을 쓰지 않겠다고 하며 그녀를 위협했다고 했다. 나는 건물밖에 항상 대기하고 있는 흑인 직원들을 생각했다. 그 덩치 큰 사람들이 이제 콘돔을 거부하고 위협을 가하는 그 남자를 혼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사람은 흑인 직원이 아니라 고객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던 다른 여자였다. 조용히 여자만 교체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계획해두었던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시드니 시내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그녀를 봤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그녀는 역시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평범한 한국인.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아 국적과 나이를 가늠해볼 수 있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어느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평범한 얼굴이었다.
벌어먹고사는 것이 힘에 부칠 때마다 나는 그 어린날의 충격적인 경험들과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원래 세상은 녹록지 않은 것이라고, 이따금씩 평범한 얼굴을 하고서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 세상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