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내가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은 디즈니 그림 명작의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었다.
남극에 사는 펭귄 파블로는 추위를 너무너무 싫어해서 따뜻한 나라로 떠나려는 시도를 수차례 한다. 난로를 짊어지고 스키를 타거나 얼음조각을 배로 이용해서 남극을 벗어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해서 친구들에게 구조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파블로는 따뜻한 나라에 도착하게 되고 야자수 아래 해먹에 누워서 행복해하며 동화는 끝이 난다.
타고난 모험심 때문에 이 책이 그렇게 좋았는지, 아니면 이 책 덕분에 모험심이 자랐는지 인과관계는 뚜렷하지 않지만, 나는 정말 파블로처럼 살았다.
소속감 없이 무리를 벗어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내 밥벌이가 그렇고, 수족냉증의 고통으로 겨울을 몹시 싫어하는 것도 그렇다.
몇 년 전 언니와 내가 편의점을 운영하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시기에도 나는 파블로 같았다.
나는 돌연 가족들에게 동남아에 가서 살겠다며 베트남 취업을 알아봤다. 베트남 경제성장률이 7%를 바라보고 있고 중국 투자자들이 베트남을 향해 대거로 몰려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곳에 내 일자리도 분명 하나쯤은 있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 당시 호찌민과 다낭, 두 도시에 한 번씩 가본 것이 내 경험의 전부였다.
한국은 추운 겨울이었고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편의점에서 나는 작은 난로에 의지하며 드물게 오는 손님들에게 담배를 팔았다. 그리고 매일 해외취업 사이트를 구경했다. 난로를 등에 이고 남극을 벗어나려는 파블로처럼.
한국에 눈이 많이 오던 2월에 나는 호찌민으로 날아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고 덥고 습한 동남아의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나라의 기운이었다.
나는 벤탄시장 근처 호텔에서 묵었고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푸미흥으로 갔다. 그곳에 내 고등학교 동창 희정이가 살고 있었다. 희정이가 부모님과 살고 있는 아파트 일층에는 리조트 같은 조경과 함께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아이 엄마들이 벤치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한국인들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방을 했던 경력으로 주재원 부모를 둔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푸미흥에는 이미 여러 개의 한국식 학원들이 있었다.
잔잔한 일상에 파도를 만난 듯이 희정이는 기뻐하며 나의 베트남 취업을 응원했다. 그래도 역시 쉽게 짐을 싸들고 베트남으로 넘어오리라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희정이와 아보카도 커피를 마시며 구체적인 호찌민 생활을 그려보았다. 내가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모르고서.
나는 방콕에서 며칠의 휴가를 더 보내고 내 업보가 남아있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호찌민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편의점은 베트남보다도 더 덥다는 한국의 여름이 되어서야 계약 파기 끝에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이제야 나의 겨울이 끝났구나, 나는 생각했다.
단순히 현실도피로 따뜻한 나라에 도착할 수는 없어. 넌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잖아.
내 안의 작은 펭귄이 말했다.
나의 겨울이 이것으로 내생에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에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작은 펭귄 파블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원하는 바를 뚜렷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향해 멋지게 도전하는 파블로.
나는 곧 따뜻한 나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