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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Nov 16. 2021

볼거리 별로 없다던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볼거리 별별 리스트

왜 샌프란시스코였냐면, J가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구글맵을 열고 검지와 중지로 지도를 살살 확대해보면 수많은 스트리트가 반듯한 격자무늬로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워싱턴 스트리트라는 엄근진한 이름의 거리에 J가 살고 있었다. J는 한국을 떠날 때도, 그곳에 가서도 샌프란에 한번 놀러 오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멀리사는 지인들에게 으레 하는 인사치레인지 어쩐지 상관없이 나는 그것을 덥석 물고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하여튼 행동력이 100인 사람에게 함부로 아무 얘기나 하지 말란 말이다.)


구글맵에는 나를 일주일간 품어줄 J의 아늑한 아파트뿐만 아니라 여러 장소들이 노란 별로 표시되어있었다. 내가 며칠에 걸쳐서 이차원의 공간을 탐험하며 방문할 가치가 있는 장소들에 별을 박아두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과 같은 곳들 몇몇과 평점이 높은 식당들 몇몇이 지도에 별자리를 만들어 냈다. 내가 별표 친 샌프란시스코의 볼거리들 중 가장 유명한 것들을 몇 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골든게이트 브리지 :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이 다리는 4200피트 높이의 현수교이다. 금문교라고도 불리며 남쪽의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북쪽의 마린 카운티를 연결한다. 아름다운 주홍빛 금문교는 금색이 아니라, 골드러시 시대에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골든게이트라고 부른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기 때문에 금문교로 가는 길목에 자전거 렌탈 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앨커트레즈 섬 :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고 불길한 감옥 중 하나로 불린다. 처음엔 군사 요새였다가 1934년부터 미국 법무부가 섬을 사들여 연방 감옥을 짓고 강력 범죄자들을 수감했다. 기록상 열네 차례 탈주가 시도되었고 그중에 세 명이 끝내 잡히지 않았지만 익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셔맨스 와프 :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해안에 위치한 선착장이다. 해산물 레스토랑과 기념품 샵이 해안을 따라 자리해있고 동쪽 끝에는 피셔맨스 와프에서 가장 유명한 피어 39가 있다. 피어 39는 바다사자를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관광객이 모여있어서 늘 북적이고 활기찬 피어 39를 가로지르면 젖은 수건처럼 축 처져있는 바다사자들을 구경하는 뷰포인트가 나온다. 바다사자들은 꾸욱 꾸욱 시끄럽게 울다가 가끔 아저씨처럼 쿨럭거리며 바다로 굴러 떨어지는 꼴이 엄청 우습다.

롬바드 스트리트 :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가파른 경사로이다. 약 27도로 기울어져있으며 안전을 위해 S자 모양으로 도로가 나있다. 길 사이사이에는 수국을 비롯한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고 가파른 경사만큼이나 도심이 잘 내려다보여서 관광객들에게 포토스폿으로 큰 인기가 있다.

더 페인티드 레이디스 : 샌프란시스코의 특징으로 꼽는 컬러풀하고 아기자기한 주택들과 가파른 언덕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언덕을 따라 '세븐 시스터즈'라고도 불리는 7개의 파스텔톤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밖에도 골든게이트 파크, 트윈픽스, 유니온 스퀘어 등이 있는데, 볼거리를 나열해보면 수십 개인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작게 별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작고 볼거리가 별로 없어서 3일이면 다 구경할 수 있어." 가능하면 일주일 안에 나파밸리나 타호 호수 같은 다른 지역도 구경하는 게 어떻겠냐고 샌프란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가 내게 조언을 했다.


거대하고 화려할 줄 알았던 (미국 무경험자라서 더욱더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대도시가 사실은 작고 별 볼 일 없다는 평가는 꽤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에? 정말이야? 하고 실망하게 되는 일이라기보다는 아, 역시 그렇다면 다행이군, 하고 안도하는 일이었다.


3일을 봐도 다 못 본다는 거대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하는 미술작품'을 연결해둔 루트를 바삐 돌고 나서도, '꼭 먹어봐야 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꼭 찍어야 하는 야경사진'을 위해 에펠탑으로 경보하듯 걸어 다녔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주관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누군가 꼭 봐야 한다고 적어놓은 리스트를 보면 어찌나 마음이 급해지는지... 관광객이 꼭 봐야 할 볼거리 리스트가 짧을수록 사실은 그 도시의 진가를 잘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실제로 3차원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나서 내가 찍어둔 별 표시의 절반도 방문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았던 곳은 그 수많은 별 표시들 중에 있지 않았다.

포크스트리트는 나를 일주일간 품어준 워싱턴 스트리트와 놉힐이라는 동네에서 수직으로 만나는 거리였다. 이름처럼 도처가 언덕인 그 동네는 점점 내리막이었다가 포크스트리트를 지나서 반네스애버뉴부터 라파예트 공원까지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아침에 언덕의 도시를 만만하게 보고 라파예트 공원까지 러닝을 한 적이 있다. 길 건너편에 금발 언니도 달리고 있길래 은근 경쟁심이 붙어서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공원을 두세 바퀴 돌고 나니 숨이 너무 가빠서 목에서 피맛이 나는 듯했다. 공원을 도로 내려오는 길에는 방향을 잘못 잡아서 워싱턴 스트리트랑 아주 멀어졌는데, 노숙자가 자기 짐들을 잔뜩 늘어놓고 (노숙자들은 왜 이렇게 짐보따리가 많은가) 보도를 다 차지하고 대짜로 누워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이 침대 매트리스 가게 앞이어서 어찌나 웃기던지. 포크스트리트로 한참을 다시 돌아와서 모카커피라는 카페에 갔다. 전화를 잡고 떠들어대느라 내가 온지도 몰랐던 카페 사장님은 다른 손님이 하는 눈짓을 보고 나서야 내 주문을 받았다. 따뜻한 모카커피를 들고 햇살을 받으며 워싱턴 스트리트의 파스텔톤 주택들을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그날이 가장 생각난다. 남들이 꼭 가봐야 한다던 관광지들을 다 재쳐두고, 작은 공원에서 러닝을 하고 유명한 블루보틀이 아니라 작은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던 그날. 그날은 내가 그곳이 퍽 익숙해졌다고 느낀 날이었다.


어쩌면 내 친구의 말은 틀렸다. 3일이라니. 나는 일주일 동안 매일 포크스트리트를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못 가본 카페가 눈에 선하다. 그새 주관이 뚜렷해졌나? 남들이 꼭 봐야 한다는 리스트 말고 이제 다시 가면 내가 가보고 싶은 볼거리들로 구글맵에 별을 채울 수도 있겠다. 물론 어차피 꼭 가봐야 할 별들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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