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경험은 없다.
나폴레옹 호텔은 윈야드 역에 있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로마네스크 장식의 퀸 빅토리아 빌딩과 화려한 상점들이 늘어선 시청 역이 나왔다. 반대로 위쪽으로는 호주의 상징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서큘러키 역이 위치해 있었다. 그에 비해 중심 업무지구인 윈야드는 왠지 좀 따분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일터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유로운 관광객들보다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비즈니스맨들이 분주하게 길을 걷고 건물에 들어가거나 나왔다. 나는 따분한 비즈니스호텔에서 청소를 하는 하우스키퍼였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한국인들은 주로 농장이나 육류공장에서 일했지만, 시드니 시티에 온 한국인들은 대부분 청소를 했다. 청소업체의 사장들이 거의 한국인들이었고 그들은 자연히 한국 청년들을 고용했다. 그중에 작은 나폴레옹 호텔에 파견된 하우스키퍼는 매니저님과 제이 언니 그리고 나, 세명이었다. 매니저님은 꽤 오랫동안 시드니에 거주하며 청소일을 하고 있던 이민자였고, 제이 언니와 나는 어린 티를 벗지 못한 20대 초반의 워홀러였다.
이른 아침에 베이스먼트로 출근을 하면 늘 뜨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 시트가 배달되어있었다. 각자의 트롤리에 물품을 채우고 투숙객이 떠난 빈 방에 들어가서 말없이 매뉴얼대로 청소를 했다. 호텔 프런트에서는 크루엘라 같은 인상의 브라질 여자 직원과 멍청해 보이는 호주 남자 직원이 돌아가며 투숙객들을 맞았고, 백오피스에는 늘 배 나온 남자 사장이 등받이 의자에 기대앉아있었다. 그들과 업무에 관해 대화하는 건 오직 매니저님뿐이었다. 나는 대충 청소하는 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혼신의 힘을 다하지도 않았다. 청소일은 호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에 하나였고, 그저 돈을 버는 일이었다.
내가 청소일을 한 지 3개월쯤 되던 어느 날, 매니저님이 이례적으로 평소보다 늦게 출근을 하셨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지 업무지시를 하면서도 손수건으로 이따금씩 입을 막았다. 매니저님에게서 희미한 구토 냄새가 났다. 매니저님은 임신 초기라고 했다. 어린 나는 그것이 매니저님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 수 없었으나, 우리가 이제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아마 새로운 매니저가 나폴레옹으로 출근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매니저는 없었다. 제이 언니와 나의 트롤리는 더 무거워졌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도 무거울 것 같아서 나는 좀 무서웠다. 사장님 내외는 제이 언니와 나를 불러 한인타운에 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주셨다. 아마 누군가가 봤다면 우리 넷이 다정한 가족처럼 보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제이 언니는 화가 나있었다. 사장님이 이깟 저녁식사로 퉁치려고 하는 거라며 화를 냈다. 나는 별 생각이 없다가 제이 언니 말을 듣고 같이 화를 냈다. 그 순간 그것은 분명 부당한 일인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한 것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베드 벅스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한 이후로 너무 걱정을 하기에 말을 가려해야지 생각했는데, 그날은 왠지 엄마한테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사장님이 우리가 매니저 몫까지 하기를 바라고 있잖아. 우리는 그냥 잠시 아르바이트하는 건데, 매니저 일까지 하는 건 너무 부당한 거 아니야?'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나를 위로해주고 함께 화내 줄 거라는 내 기대와는 아주 정반대였다.
"그냥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데 매니저일까지 해낸다면 네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는 것 아닐까? 비록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매니저 단계까지 올라갈 기회로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는 게 어떠니?"
머나먼 타국에서 들었던 엄마의 조언. 어쩌면 진부한 말일 수도 있는 그 조언은 지금까지 15년간 내가 뜻밖의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떠올리는 조언이 되었다. 내가 하지 못한다고 한정 짓지 않아야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거니까. 알을 깨고 나가는 것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감수하는 것이니까.
물론 엄마 말이 맞다고 느낀 건, 사실 그 상황이 그렇게 부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잘은 몰라도 사장님 역시 매니저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의 조언에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여전히 감을 잡지 못했고, 결국 우리 청소업체는 나폴레옹에서 물러나야 했다. (어쩌면 가장 곤란한 것은 사장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수년 후 다시 투숙객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일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작은 에어비앤비를 직접 운영하게 되면서!! 그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왠지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시드니의 비즈니스호텔에서 보냈던 시간에서 온 것이라 믿는다. 뜻밖의 사건들이 이어져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생인 걸까? 돈벌이를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프리랜서로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이다. 하지만 엄마의 조언대로 세상에 하찮은 경험은 없고 이 또한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이라 믿으면 언젠가 찾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북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