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아직이었다.

친구는 둘째를 낳았고 나는 아직 둘째

by 미쓰한

아직 안 폈을걸? 하는 엄마의 말에 꽃봉오리라도 보련다 말하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양재천에는 벚꽃이 흐드러졌다는데, 일산 호수공원은 엄마의 예상대로 아직이었다. 물론 먼저 핀 산수유와 매화가 봄의 색감에 제 몫을 다하고 있었지만, 봄꽃으로는 벚꽃나무 수가 월등하고 전국이 벚꽃 개화를 날짜까지 세며 고대하고 있으니 나도 그럴 수밖에.


하지만 아침부터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운전까지 해서 호수공원에 온 것은 벚꽃 때문만은 아니었다. 벚꽃의 꽃말을 아는가? 그것은 바로 중간고사. 4월 말에 몰려있는 중간고사를 대비해서 주말에 10시간씩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왼쪽 골반이 삐걱대고 제 위치를 벗어난 것만 같았다. 평소에 몸이 아프면 병원보다는 공원으로 달려가는 편인데, 동네 공원을 벗어나 호수공원에 갔다는 건 나름 큰 병원을 방문한 격이었다.


시험과 별개로 이번 달에는 유난히 혼이 쏙 빠지는 수업을 맡기도 했다. 무려 초등학교 1학년 영어수업인데, 심적으로는 고3 수능 대비 수업보다 피로감이 더 높다. 수년간 기피해오던 초등 수업을 다른 선생님의 부탁으로 시작하게 된 지 벌써 3주가 되었다. 첫 수업에는 영어보다 팔씨름과 구구단을 더 많이 했고, 두 번째 수업은 쳐다보면 절대 문제를 안 풀겠다고 해서 눈감고 100을 세야 했다. (실눈을 떴다가 샤프심으로 찌른다는 협박도 들었다.) 미리 육아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그 귀여운 악당에 대해 말했더니, '일주일에 한 번이면 체험판 수월하네^^^^^^'라는 답변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내 친구의 첫째가 딱 그 나이였다.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못하던,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던 그 조그만 아이는 이제 8살을 먹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전 친구 인스타에는 그 아이가 언니랍시고 둘째 동생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 밑에 '너네 집 첫째는 벌써 둘째를 보는구나? 나는 아직도 그냥 우리 집 둘짼데' 하고 댓글을 남겼다.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버진로드를 걸어 들어가고 남편과 다정히 사진을 찍을 때에도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결혼은 그저 연애의 연장선상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친구들 카톡 프로필에 점점 세 식구의 사진이 업로드될 때, 그 안에는 내가 가늠하기 힘든 행복이 들어있는 것만 같아서 자꾸 조바심이 났다. 나는 엄마 아빠 아래 변함없이 막내딸로 머물러있는데, 그들은 진짜 가족을 이뤄내고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들의 결실은 그들을 진짜 어른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육아는 현실이네 지옥이네 죽는소리를 해도 책임져야 할 존재가 생기면서 분명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다른 차원의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내 인생에 흔한 벚꽃 말고 다른 꽃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확고한 비혼주의자라던지 요즘 점점 늘어난다는 딩크족들처럼 말이다. 나는 그렇게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아마 그 부러움은 내가 여전히 내 결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을 계속 바라고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나는 내뜻대로는 피지 않는 벚꽃길을 열심히 달릴 뿐이다. 부디 내 왼쪽 골반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이번 주에는 우리 초딩 수업 때 색연필로 꽃그림을 같이 그려보면 어떨까. 음. 봄에는 역시 벚꽃이니까 벚꽃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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