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이 할까봐 걱정하던 막내딸 올림
3년 전 택시를 하겠다고 아빠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 '아빠가 잘할 수 있을까?'하고 복잡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식탁에서도 장황하게 이어지는 아빠의 말이 손님을 태운 좁은 차 안에서도 이어지면 어쩌나... 가족은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아니 어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서로를 단속하기에 바쁘다. 내 나이대 친구들이 피곤하게 생각하는 '말 많은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면, 나는 선뜻 아빠 편을 들어주지 못할 것이다.
택시운전을 하며 아빠는 처음 며칠간 네비 작동이 서툴러서 곤혹스러워했다. 초년생이 아닌 나이에 어떤 일의 초입에 서있다는 기분은 아마 곤혹을 넘어 곤욕스러운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아빠의 서툰 하루를 구체적으로 듣는 것도 두려워했다. 다행히 아빠는 차차 일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일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때였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아침부터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는 어두운 새벽에 회기역에서 젊은 남자 손님 세명을 태웠다고 했다. 마지막 목적지 구로의 한 아파트로 가는 동안 술에 취해 늘어져 자던 두 명이 차례로 내리고, 머리가 샛노란 남자애 한 명만 뒷자리에 남아있었다. 아빠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남자애를 깨웠다. 그러자 그 남자애는 가방을 다급하게 챙겨서 뒷문을 열고 도주했다. 아빠는 그 남자애를 잡으려고 뒤쫓아갔고, 금세 잡힌 그 남자애는 아빠를 주먹으로 때렸다고 했다. 37000원, 그가 내지 않고 도주한 택시비 금액이었다.
치과에 다녀온 아빠의 앞니에는 빈 공간이 두 자리 나 나있었다. 그 사건을 생각하면 즉시 끓어오르는 분노와는 달리 사건 처리과정은 단계적이고 느린 것이었다. 아빠의 진술을 뒷받침해줄 블랙박스 영상을 경찰서에 제출해야 했기에 나는 컴퓨터에 앉아서 그날의 영상을 재생해보았다. 영상 속의 상황은 아빠가 말한 대로였지만 아빠가 그 젊은 놈에게 얻어맞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배 위에 올라타서 주먹으로 아빠의 얼굴을 때렸던 주차장 바닥은 카메라가 닿지 않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대신 그 후 차에 다시 올라탄 아빠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아빠가 백미러를 향해 입술을 들어 보이자 새빨간 피가 입속 가득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새벽 손님이 아빠는 좀 무섭다고 했다.
오공년생인 아빠는 북에 아버지를 두고 온 전쟁둥이였다. 화공과를 전공했고 젊어서는 대한민국 초고도성장시대를 선두에서 이끄는 역할을 했다. 사업의 짧은 호황과 긴 불황을 관통하며 일이 지긋지긋해질 만도 한데, 아빠는 늘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 했다. 십 년 전에는 연탄공장의 공장장을 구한다는 말에 연고도 없는 카자흐스탄에 가서 고생을 하며 몇 년을 지냈다. 큰 꿈을 가지기에는 늦은 나이가 아닐까 싶은 때에도 '돈 많이 벌면 막내딸 새 차 사줄게'라는 말을 해서 나를 새삼 놀라게 했다. 이제는 '막내딸 새 차'를 사주는 야무진 꿈은 '막내딸 치킨'으로 소박하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빠는 일을 하고 싶다.
요즘은 새벽마다 영어공부에 열중이다. 이번 목표는 인터내셔널 택시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그러게 그때 왜 일산에 집을 샀어, 잠실에 투자를 했어야지) 그래도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아빠를 보면 안쓰럽기보다는 자랑스럽다. 짠하기보다는 멋지다. 어쩌면 이런 게 진짜 응원이 아닐까? 아빠한테 일할 땐 말 좀 많이 하지 말라고 이제 그만 핀잔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