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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an 27. 2022

두 번의 이별과 두 번의 포기

30대는 멀티가 가능해야 한다.

어제 처음 풀어본 기출문제에서 45점을 맞았다. 100점 만점에 45점. 겨우 과락을 면한 점수였다. 그 하찮은 점수에 좌절했냐면 그렇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드디어! 기출문제를 '풀어 본' 것이다!!


국가 전문자격증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4년 전의 일이었다. (아직 부끄러워서 어떤 시험인지 공개하기가 어렵다.) 친언니와 편의점을 섣불리 인수받아 운영을 하다가, 심하게 처맞고 미련 없이 관두었던 바로 그 해였다. 처맞는 와중에 느꼈던 것은 '역시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에서 살아남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뒤늦은 후회뿐이었다. 너도 나도 쉽게 들어오는 박터지고 피 터지는 업종을 선택했다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겠지만... 우리로서는 그 스파링이 카드게임 정도 하는 줄 알고 참가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장사해봤는데 안 되겠다. 포기다. 이제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직에 도전해봐야겠다.


인터넷 강의를 결제하자 며칠  도저히  손으로는 들기 어려운   권과 기출문제집  권이 집에 도착했다.  너댓 권을 붙여놓은  같은   표지에는 ' 권으로 끝내는'이라는 말이 뻔뻔하게 쓰여있었다. (심지어 1 시험을 끝내려면    권을 봐야 했고 2차까지 붙으려면?  권인지 보기 두렵다.) 세법이 주를 이루는 만큼 공부해야  내용은 대부분이 암기였다.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되는, 엉덩이로 하는 공부. 열심히 암기할 것이다. 그리고 합격할 것이다. 남은 인생은 불안한 프리랜서가 아니라 전문직으로 살아가야지. 시작은 야무졌고 가슴은 웅장했다.


그러나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공부에서 손을 완전히 떼버렸다. 왜냐 물으면, 이별은 그만큼 슬프고 아픈 일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살면서 가장 억울하고 슬픈 몇 주를 보냈고, '결국 이별의 아픔을 공부로 극복했어요!'라고 합격후기를 쓰면 좋았겠지만, 또 연애를 한답시고 여러 남자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기적이었다. 내 미래는 돈벌이, 사랑과 결혼, 그리고 건강까지(술을 하도 처먹어서) 뒤죽박죽 우선순위도 없이 모든 게 다 걱정과 불안이었다.


그때 언니가 말했다. 마흔까지만 합격해도 성공이라고. “30대에는 멀티가 돼야 해. 연애도 일도 다 중요하니까. 그리고 멀티가 가능하려면 포기해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아야 되는 거야” 나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30대는 멀티가 가능해야 하는 나이였다. 그래서 나는 데이트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또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고, 한 권으로 끝낼 수 없지만 한 권으로 끝내는 책 두 권과 최신 1개년이 추가된 기출문제집을 받았다. 2차 시도였다.


흠, 두 번째 포기에 대해서라면, 이별이라는 게 참 익숙해지지 않아서였다고 또 변명하고 싶다. 그래도 그때쯤엔(장하게도) 그 두꺼운 책의 절반은 학습했을 것이다. ‘내 공부와 성공을 빌어주던 그와 이별하면 나 또 공부 때려치울 것 같은데?!’ 헤어지는 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마음이 잔잔해져서 또 세 번째 인터넷 강의를 결제하기까지는 10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무려 3차 시도였다.


이번 시도는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리 낙관적인 점수를 내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마음은 낙관적이다. 공부만 하고 앉아있을수는 없는 일이고, 어차피 마흔까지만 합격해도 성공이니까 말이다. 올해 합격하겠다고 죽기 살기로 해도 붙을까 말까 하지 않냐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멀티가 가능해야 하는 30대이고 그렇게 살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오늘은 왠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 세어보니 마흔도 얼마 남지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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