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합격 수기
한 달 반가량 글쓰기를 쉬었다. 지난 글의 끝마무리에서 느꼈던 조급함을 동력 삼아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때가 바로 자격증 시험이 한 달 반 남은 시점이었고, 그 시험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결과는 불합격.
모든 도전에는 서사가 있고, 그것이 실패일수록 하고 싶은 말은 길어지는 법. 아 그러니까 내가 왜 떨어졌냐면~ 아니 아니, 내가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싶어서 인지, 아니면 한참 글을 안 쓰고 그저 머리에 많은 것을 욱여넣기만 해서인지,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를 배우고 외우고 시험을 치는 과정은 실로 외로운 과정이었다. 이번엔 단기간(약 4개월)이었지만 이런 텐션으로 몇 년을 준비했다면 외로워서 마음에 병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밀도가 높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때면, 우주에 문제집과 나 둘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공부는 분명 투자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일인데, 혹시 내 머리가 문제인가? 노력보다 능력 탓을 할 때면 훨씬 더 외롭다.
이주 정도는 아침마다 코피를 쏟았다. 처음 코피가 났을 때는 '올- 나 코피 날 정도로 공부함?' 하고 뿌듯했는데 2주간 흘려보니 큰 병이 있나 의심까지 되기 시작한다. 사실 고통스러운 건 입안이 허는 게 더하지만, 코가 헐어서 피가 나는 건 시각적으로 임팩트가 강해서 아무래도 멘탈에 더 안 좋은 것 같다. 그럴 땐 홍삼이 도움이 된다. 꿀에 재어놓은 홍삼 한 숟갈.
공부를 시작하며 내가 세운 원칙은 생산적인 일은 모두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에도 N잡러는 나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 시험 보기 한 달 전에는 일이 줄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이 줄까봐 장난으로도 '일하기 싫다'라고 말하지 못했던 프리랜서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제 일이 줄어들 땐 "나? 할거 되게 많은 사람이야! 공부해야 돼!" 하고, 일이 많을 땐 "역시 사람은 돈을 벌어야지!" 하고 상황에 맞게 유능해질 수 있어서 좋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어떤 과목을 25점 맞았던 날이 있었다. 일주일 내내 그 과목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시간을 갈아 넣고, 그 전날에도 8시간 그 과목 공부를 했는데도 그랬다. 회계새끼... 이것은 문과생의 숙명인가? 쌀집 계산기에 어색한 손놀림으로 버튼을 눌러본다. 이것은 흡사 손자에게 문자 보내는 할머니 손가락 모드-
진짜 열심히 했나? 결과는 불합격. 평균 5점 차이로 말이다. 사실은 나 너무 슬프다. 어쩌면 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4개월 중에 3개월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난주에는 매일 하루 12시간 공부했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시험을 너무 만만히 봤다는 게 명확하다. 주말엔 일이 많아서 공부를 못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을 변명으로 쉴 수 있었다. 변명으로 시험에 붙을 수 없는데도 그랬다. 스스로에게 덜 냉정하고, 남들의 위로에 쉽게 녹아내렸다. 그래서 '일한 나'는 좀 더 쉬고 덜 공부했다.
오늘 아침 수많은(약 2500명) 나의 동료이자 경쟁자들이 시험장에 모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성하는 긴장된 공간이었다. 누군가 마음이 나태해져서 다시 열심히 살고 싶다면 국가자격증 시험장에 찾아가는 게 어떨까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더 열심히 살고 싶어 진 이유는 비단 내가 불합격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결국 나는 합격하지 않을까? 어쩔 때 나는 내 능력보다 나를 너무 믿어버린다. 믿어서 내 능력을 올리고, 능력을 올려서 다시 나를 믿는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속없이 또 믿어본다.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