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Mar 13. 2022

오늘 시험 떨어졌다. 질문 안 받는다.

나의 불합격 수기

한 달 반가량 글쓰기를 쉬었다. 지난 글의 끝마무리에서 느꼈던 조급함을 동력 삼아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때가 바로 자격증 시험이 한 달 반 남은 시점이었고, 그 시험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결과는 불합격.


모든 도전에는 서사가 있고, 그것이 실패일수록 하고 싶은 말은 길어지는 법. 아 그러니까 내가 왜 떨어졌냐면~ 아니 아니, 내가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싶어서 인지, 아니면 한참 글을 안 쓰고 그저 머리에 많은 것을 욱여넣기만 해서인지,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를 배우고 외우고 시험을 치는 과정은 실로 외로운 과정이었다. 이번엔 단기간(약 4개월)이었지만 이런 텐션으로 몇 년을 준비했다면 외로워서 마음에 병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밀도가 높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할 때면, 우주에 문제집과 나 둘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공부는 분명 투자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일인데, 혹시 내 머리가 문제인가? 노력보다 능력 탓을 할 때면 훨씬 더 외롭다.


이주 정도는 아침마다 코피를 쏟았다. 처음 코피가 났을 때는 '올- 나 코피 날 정도로 공부함?' 하고 뿌듯했는데 2주간 흘려보니 큰 병이 있나 의심까지 되기 시작한다. 사실 고통스러운 건 입안이 허는 게 더하지만, 코가 헐어서 피가 나는 건 시각적으로 임팩트가 강해서 아무래도 멘탈에 더 안 좋은 것 같다. 그럴 땐 홍삼이 도움이 된다. 꿀에 재어놓은 홍삼 한 숟갈.


공부를 시작하며 내가 세운 원칙은 생산적인 일은 모두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에도 N잡러는 나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 시험 보기 한 달 전에는 일이 줄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이 줄까봐 장난으로도 '일하기 싫다'라고 말하지 못했던 프리랜서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제 일이 줄어들 땐 "나? 할거 되게 많은 사람이야! 공부해야 돼!" 하고, 일이 많을 땐 "역시 사람은 돈을 벌어야지!" 하고 상황에 맞게 유능해질 수 있어서 좋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어느 날 어떤 과목을 25점 맞았던 날이 있었다. 일주일 내내 그 과목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시간을 갈아 넣고, 그 전날에도 8시간 그 과목 공부를 했는데도 그랬다. 회계새끼... 이것은 문과생의 숙명인가? 쌀집 계산기에 어색한 손놀림으로 버튼을 눌러본다. 이것은 흡사 손자에게 문자 보내는 할머니 손가락 모드-


진짜 열심히 했나? 결과는 불합격. 평균 5 차이로 말이다. 사실은  너무 슬프다. 어쩌면 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4개월 중에 3개월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난주에는 매일 하루 12시간 공부했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시험을 너무 만만히 봤다는  명확하다. 주말엔 일이 많아서 공부를 못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을 변명으로   있었다. 변명으로 시험에 붙을  없는데도 그랬다.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남들의 위로에 쉽게 녹아내렸다. 그래서 '일한 '   쉬고  공부했다.


오늘 아침 수많은(약 2500명) 나의 동료이자 경쟁자들이 시험장에 모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성하는 긴장된 공간이었다. 누군가 마음이 나태해져서 다시 열심히 살고 싶다면 국가자격증 시험장에 찾아가는 게 어떨까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더 열심히 살고 싶어 진 이유는 비단 내가 불합격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결국 나는 합격하지 않을까? 어쩔 때 나는 내 능력보다 나를 너무 믿어버린다. 믿어서 내 능력을 올리고, 능력을 올려서 다시 나를 믿는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속없이 또 믿어본다. 나를.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의 이별과 두 번의 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