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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03. 2022

두바이, 잠깐 왔다가도 환영입니다.

13시간 두바이 경유 기록

새벽 네시, 현지 기온 35도라는 기장의 안내가 들려온다. 최신 기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황금 변기를 사용한다는 국왕의 나라에 착륙했다. 두바이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몹시 덥고 몹시 부유한 나라라는 것. (황금 변기에 대해서는 엄마가 알려주었다.) 두바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탕수육을 시키면 같이 오는 군만두, 신년 다이어리에 끼워주는 새해 달력, 잡지에 딸려오는 각종 사은품처럼 두바이는 그저 덤이었다.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는 중동을 넘어 헝가리에 도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열된 덤들과 두바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덤을 받아가야만 더 싸다는 것이었다. 부다페스트행 직항은 어찌나 비싸던지..


경유지 두바이에서의 환승 시간은 13시간이었다. 검색해보니 우리처럼 두바이 여행을 덤으로 얻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대부분이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가는 부부들이었다. 그들의 리뷰를 보면 두바이는 꽤나 괜찮은 경유지였다. 까다로운 입국 절차도 없었고, 바이러스의 부재를 증명하는 서류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매하게 세네시간이 아니라 13시간이라는 환승시간은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것이었다. 단 30분이면 공항에서 두바이 시내에 갈 수 있다고 구글맵이 알려주었다.


우선 새벽 4시에 착륙한 우리는 일출을 기다려야 했다. 미리 구매한 이용권을 들고 공항 라운지를 찾아들어갔다. 솔직히 그곳은 좀 실망이었다. '럭셔리한 산유국의 허브 공항'이라는 이미지 덕에 라운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곳이 가격 낮은 라운지라서 그랬던지도.. 술꾼답게 여행 전부터 무제한 맥주 소비를 계획했지만, 피로 탓인지 잘 먹히지 않았다. (젠장, 두바이 새벽 4시면 한국에선 한창 술 마실 시간이라고!) 라운지 음식들 중에 두바이산 대추야자 두 개와 후무스를 곁들여 맥주 한 캔을 겨우 마셨다. 누울 수 있는 의자는 몇 개 없는 데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차지해서 우리는 소파 두 개를 이어 붙여 쪽잠을 자야 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공항 창문 밖이 환했다.(젠장, 지금도 한국은 2차 갔을 시간인데!) 샤워실은 검색한 것과 달리 유료였고, 예상되는 상쾌함보다는 지나치게 과한 금액이라 세수만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두바이 마하바 라운지 음식

시내에서 공항으로 다시 돌아와 안 사실이지만, 라운지보다 탑승구 앞에 누울 수 있는 의자들이 훨씬 더 많아서 편해 보였다. 그리고 두바이 공항의 레스토랑들은 모두 24시간 활기차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구찌 매장도 24시간이었다. 식당들은 푸드코트나 간이식당이 아니라 버젓이 훌륭한 식당들이었고, 시내의 식당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 벽면에 보딩 타임을 알리는 전광판이 쉴 새 없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인천공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10시를 넘은 인천공항에는 스타벅스 달랑 하나만 운영 중이었다.)


입국절차는 생각보다 더 쉽고 간단했다. 공항 직원들은 모두 친절하게 두바이 시내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며 두 시간 전에는 꼭 공항에 돌아와야 한다며 앞날을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신선하고 놀라운 것은 또 있었는데, 이민국에서는 입국도장과 함께 무려 1GB짜리 무료 인터넷 유심칩을 나눠주었다. 부자나라는 다르구나, 나라에서 인터넷 유심칩을 무료로 주다니.. 물론 두바이몰에서 시간을 보냈던 우리는 유심칩을 사용할 기회 없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와이파이를 잘 사용했다.

1.이민국에서 받은 유심칩, 2.두바이 메트로 티켓

해가 뜬 지 수시간이 지나자 두바이의 기온은 이제 40도를 넘어섰다. 하지만 공항에서 메트로를 타고 두바이몰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그 열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건물들은 모두 에어컨이 설치된 지상 터널로 빈틈없이 연결되어있었다. 1km는 족히 될만한 끝없이 이어진 터널 속 무빙워크를 걸으며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나무 위키에서 읽은 것처럼 아벤타도르 경찰차는 발견하지 못했고, 두바이에도 배민처럼 보이는 오토바이들이 쨍한 색감의 유니폼을 입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1.두바이 지하철에 있는 여성&어린이 전용칸,  2.두바이의 거리

두바이몰은 너어얿었다. 매장들만 봐서는 여의도 더현대나 하남 스타필드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서 여기가 두바이라는 것을 자꾸만 상기시켜줬다. 샤넬과 구찌 따위의 (나에게는 없지만)어딜 가나 있는 명품 매장을 지나서 분수대를 향해 걸어갔다. 파란 분수는 잠잠했다. 춤을 추는 걸 보기엔 이른시간이었다. 우리는 한시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꺾어 부르즈 칼리파의 꼭대기를 봤다. 너무 높아서 함께 찍은 사진마다 그 꼭대기는 모두 잘려있었다.


간식으로 누텔라 한통을  넣은  같은 피스타치오 크레페를  먹었다. 아랍어로 '두바이'  이름을 새긴 커스텀 티셔츠를 나이키에서 주문했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친절한 직원이 30 만에 그것을 완성해주었다. 드디어 한시가 되자 한낮의 40 열기를 느끼며 야외에서 10  분수쇼를 보았고, 기념품 가게에서 알록달록한 두바이 마그넷을 하나 샀다. 그쯤 되니 너무 넓어서 길을 잃을  같던 그곳에서 분수대쯤은 강남역 11 출구만큼 쉽게 을 수 있었. 분수대 찾아갈  알면 두바이몰 마스터한  아닐까..?

다시 또 긴 터널을 지나 공항으로 돌아왔다. 걷는 동안 몇 번의 고비를 느꼈지만 코피를 쏟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우리의 여행을 시작도 안 했다는 흥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짜가 온다. 여기는 덤이었다구!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긴 소파 위에서 얼마간 잠을 잤다. 먼 나라를 여행할 때 경유지에서 이렇게 피곤하게 구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는 시차를 모르고 깊은 잠에 들었다.


앞으로도 유럽을 간다면 되도록 두바이를 덤으로 꼭 넣고 싶다. 잠깐 만나도 친절하고 즐거운 도시. 덤 말고 본품으로는 어떻냐고? 글쎄.. 럭셔리한 산유국에서 지갑이 털리는 건 좀 무서운데.. 13시간이 딱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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