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Oct 27. 2022

소개팅 어플엔 이상한 사람 많지 않나요?

추천할까?말까?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 탓인지도 모르겠다. 벌써 주변에 세 명이나 내게 소개팅 어플에 대해서 물었다. 셋 다 서른을 넘겼고 여자였다. 예전에도 틴더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면 연이어 받는 질문이었다. ‘그걸로’ 사람을 만나도 괜찮은지 어쩐지 말이다. 아마 그곳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예상에서 나온 질문일 것이다. 물론 내 대답은 줄곧 'Why not?이었다. 하지만 내 말에 영향력이 있을 성싶으면, 성의 있는 추천을 위해 질문하는 상대를 잘 살펴봐야 한다. 혹시 어디서 비를 맞고 헤매다 온 것은 아닌지, 많이 지쳤는지, 아니면 시작이 두려운 건 아닌지.


어느 날은 동창 A가 소개팅 어플들을 다 정리했다고 연락이 왔다. 나에게도 그 거지 같은 어플을 그만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보라고 조언했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 거지 같다는 어플들로 사람을 만났다. 학위와 직업을 인증하는 절차가 있는 어플은 비교적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귀여운 외모에 키가 훤칠한 그 남자가 서초동에 아버지 명의의 빌딩이 있다고 꽤나 기대를 하고 있었다. A가 그를 만나러 강남과 교대, 이태원을 싸돌아다니는 기간에 비례해서 그녀의 마음은 차곡차곡 커져갔다. 그러나 썸 타는 사이는 길어질수록 애매한 사이가 되고, 남녀 사이는 애매할수록 확실한 고통을 준다. 그래서 그녀가 어떻게 됐더라? 나는 그 끝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단지 그녀가 소개팅 어플에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결말을 짐작할 뿐이었다. A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지쳤다며 어플을 떠났다. 나는 그녀가 운 좋게 어딘가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서 어플에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만큼 나도 그리 운이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틴더에서 만난 수십 명 중에 1번부터 10번까지는 최악이라고 해도 좋다. 최악 중에서도 가장 거지 같았던 경우를 말하자면, 7번쯤 되는 남자였을 것이다. 그는 딱 봐도 여자들이 좋아할 모양새였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 속에 눈빛은 매서웠지만 웃는 표정은 또 서글서글해서 인상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그는 첫 대화에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합정에 있는 일식 선술집을 예약했다고 당일 날 짧게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에는 내가 먼저 도착을 했고, 합정역 8번 출구를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그를 발견했다.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다. 키는 적당하고 몸이 단단해 보였다. 평일에 헬스와 골프레슨을 병행한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신나는 경험을 하러 나온 사람 같았고 어플 속에서 튀어나온 나를 신기해했다.


그도 나처럼 술을 좋아했다. 2차로 갔던 작은 술집은 다양한 위스키를 베이스로 하이볼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소주를 위장에 잔뜩 붓고 와서 또 하이볼을 들이켜며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밌게 나눴던 걸까. 그가 캠핑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캠핑을 같이 가자고 했던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와 나는 그 술집 계단에서 키스를 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고 있는 우리 언니 방 문을 열고 오늘 만난 남자와 키스를 했다고 자랑을 해댔다. 연애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나는 붕 떠있었던 것이다.


그와의 만남이 몇 주간 이어졌다. 매번 술을 마셨고, 매번 더 그가 좋아졌다. 그게 나는 참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또 술을 마시고 냅다 사귀자고 질러봤는데, 그는 연애 말고 가벼운 사이를 원한다고 고민도 없이 말했다. 충격이었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일말의 고민은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좋아하고, 설레고, 기대하고, 혼자 다한 나는 결국 좌절까지 혼자 했다. 완벽하게 차였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심했다. 빠져나와 생각해보니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개자식이었다. 이제까지 FWB(Friends with benefit, 섹스만 하는 가벼운 사이)를 잘 걸러왔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속아버렸다. 이것이 바로 가장 거지 같은 경우다. 노골적으로 섹스를 원하는 경우는 차라리 고마울 지경이다. (프로필에 FWB라고 적어둔 사람들 모두 매너남...) 만나기 전에, 아니 만나고 나서라도 진득한 연애보다는 섹스를 원한다고 일찍 힌트를 준다면 감사하다.


나는 그 최악의 감정 널뛰기를 하고서도 틴더를 지우지 않았다. 지치지 않았고, 더 만나보기로 했고, 결국 좋은 사람들을 여럿 만나고 또 헤어졌다. 사실은 그 최악의 7번도 나에게는 무척 필요했던 경험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없었다면 무엇이 나를 해하는 것인지 정말 알지 못했을 것이다. 최악의 경험일수록 나는 더 많이 배웠다. 그렇다면 소개팅 어플에 저주를 퍼부었던 A보다는 훨씬 운이 좋았던 게 틀림없다. 잘못된 것은 플랫폼 탓이 아니었다. 어떤 통로를 통해 만났던지 간에, 새로운 만남의 기대와 설렘은 높은 확률로 실망이 되고 어쩔 땐 고통이 되는 것뿐이다. 특히나 소개팅 어플이라는 곳은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기대와 실망과 고통의 사이클이 압축되어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것이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고 금세 현타가 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따라서 소개팅 어플에 진입하기 전에 나의 상태 체크가 우선이다. 감정 널뛰기를 할 자신이 있는지, 개자식을 만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털어버릴 용기가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좋은 사람을 단박에 알아볼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내가 너무 무식하고 용감하고 긍정적이었나? 오히려 어쩔 땐 틴더가 나의 유일한 위로이기도 했다. 기대와 실망과 고통의 사이클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어김없이 '나 또 어디서 누굴 만나지?'라는 익숙한 고민 앞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쥐고 다시 믿음을 굳건히 한다. 알잖아? 또 금세 누군가 나타나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걸. 그러니까 이번엔 잘 좀 하자? 하고 에너지를 다시 채워보는 것이다. 내가 힘을 내서 잘하면 된다. 이거 원래 이렇게 힘든 일이거든. 소개팅 어플은 거들뿐!


*해당 글은 네이버 포스트 연애결혼에서 ‘연애의 기쁨과 슬픔’으로 연재중인 글 입니다.

https://naver.me/xyjQ1Zto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반대편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