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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27. 2022

우리는 반대편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3호선 충무로역

우리는 반대편에서 왔다. 서로 사는 곳을 말할 때도 나는 그의 위치가 놀랍지 않았다. 50km. 틴더에서 내가 설정해둔 거리는 일산에서 정반대인 분당과 과천을 포함하고 있었다. 서울 메트로 오렌지라인은 내가 사는 화정을 출발해 정확히 수도 중앙을 관통하고 결국 오금역에 가닿는다. 매주 오금행 열차를 타지만, 난감할 만큼 깊게 잠드는 게 아니고서야 가 볼일이 없는 동네, 오금. 그곳에 그가 살았다. 덕분에 만나기로 결정하기만 한다면, 어디서 만날지 정하는 것은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3호선의 중앙이자 우리의 중간지점이었던 충무로역은 자연히 첫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역에서 내려 그가 있다는 카페까지 네다섯 개의 카페를 지나쳤다. 커피맛에 조예가 깊은 걸까. 남산 방향으로 은근히 언덕진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그가 노트북을 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알은체를 하더니 다 녹은 얼음잔을 옆에 치워두고 커피를 하나 더 시켰다. 카페 주인이 바리스타상을 받았다고 했던가? 에스프레소 맛이 깊다고 했던가? 어쨌든 나는 딸기 라테를 시켰다. 빨대로 라테를 다 마셔버리고 금세 공기를 빨아대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의 커피는 느긋하게 절반이 남아있었다.


저녁은 뭘 먹을까요? 어서 맥주나 한잔 들이켜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그가 물었다. 그리고 주변에 미슐랭 스타를 받은 냉면집이 있고, 파스타 집도 하나 있다고 제법 대책이 있는 것처럼 설명을 했다. 냉면에 맥주는 근본 없는 것인데..라고 생각하며, 그럼 냉면을 먹으러 가죠,라고 말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냉면과 그냥 파스타라는 설명에 내가 뭘 대답해야 됐겠는가 말이다. 육수 맛에 조예가 깊은 걸까. 다행히 미슐랭 냉면집은 가깝고 오르막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맥주를 팔았다.


그는 물냉, 나는 비냉 그리고 같이 먹을 물만두를 주문했다. 맛을 평가하며 먹기엔 서로 좀 어색했지만 그가 만두피가 독특하네요, 해서, 나도 그러게요 수제비 같아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만두에 맥주는 제법 괜찮았으므로 또 맥주 생각이 났다. (냉면에도 맥주를 마실 기세였지만) 맥주 한잔 할까요? 내가 말하자 그는 좋다고 했다. 내가 유리컵에 따라준 맥주 한 잔을 다 마시고는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졌다. 술을 잘 못한다고 했다. 맥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입맛을 다시며 망설였지만, 결국 술을 더 시키지는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그가 계산대로 가 계산을 했다. 나는 어색하게 뒤에 서서 맥주를 더 시키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냉면집을 나와 우리는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하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세 잔 정도 마시고, 한번 들어서는 도통 알 수 없는 공학계 연구를 하며, 쉬는 날엔 기타 연주를 하는 그는 오금으로. 어떤 음식에도 알콜 페어링을 생각하고, 문송하게도 사학과를 졸업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쉬는 날엔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나는 일산으로. 어찌 보면 대척점 같은 각자의 반대편으로 막 돌아갈 참이었다. 집에 가기엔 좀 이른 주말 저녁이라고 (술을 덜 마셨다고) 마음을 고쳐먹기 전까지는.


대화가 공명하는 체험은 서로가 반대일수록 더 신기한 것이었다. 나는 발 구르며 웃지도, 설레어 떨지도 않고 편안하게 공명하는 우리의 대화를 따라갔다. 나와는 다른 그가 생각을 변주하는 것을 즐기면서. 나는 그를 불러 세워 콜라를 대접했다. 그의 반대편에 앉아 나 혼자 맥주를 마셨지만, 우리 사이에는 제법 포실포실하게 잘 구워진 먹태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핵심적인 무언가가 일치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서로 좋아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음표를 그리며 지하철을 타고 그의 반대편으로 돌아왔다. 나의 반대편으로 돌아간 그도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금세 메시지를 보내온다.


다음 주에 같이 수제버거 먹으러 갈래요?

좋아요.

답장을 보낸다. 좋다. 수제버거에는 맥주도 콜라도 잘 어울리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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