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띄지 마라
그 사람이 불행하면 마음 아프고, 행복하면 배 아프다. 연인이었다가 돌아섰던 사람들에 대해 내가 늘 하는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문장의 뒷부분에만 주목해서 '저는 그 사람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는데요?'라고 말한다. 그럼 나만 쓰레기야?라고 말하진 못하고, 행복하더라도 나보다는 아니기를 바라는 게 인간이지 않겠냐고 변명한다. 그러나 저 문장의 의미는 그저 그들이 불행하든 행복하든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내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아프지 않고. 나도 아프지 않고.
지난달에는 안국에 있는 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전남친을 봤다. 노트북에 열중하는 옆모습을 보고 약간 놀라서, 뒤돌아 유리문을 열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카페 취향이 겹친다는 건 그때는 좋고 지금은 불편하다. 나에게 작업을(?) 걸 때도 그는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대형 식물원 카페에 찾아왔었다. 혼자서 이런 곳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며. 사실 그의 생활 반경이나 우리의 겹치는 취향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한번 마주칠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가 데려갔던 몇몇 좋은 카페들을 여태 나의 데이트에서 아주 잘 활용하고 있으니까.
아마 그에 관해서라면, 내가 마음 아플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불행해도 좋을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별로 불행할 것 같지 않아 걱정이 필요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는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진주 같은 야경과 없으면 허전할 반짝이는 남산타워, 금세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시원한 라거, 배경으로 흐르는 재즈힙합 따위의 것들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보나 마나 그날도 야경을 이따금씩 올려다보며 그날 읽은 책의 내용을 노트북에 꼼꼼히 정리하고 있었겠지. 늘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행복에 배가 좀 아플 것 같냐고? 글쎄, 어찌 됐건 그날 그의 뒷모습은 혼자였고, 카페를 돌아서는 우리는 두 사람이었거든.
반면에 지긋지긋하게 헤어지는 순간에도 행복하길 두 손 모아 바랐던 사람도 있다. 아직도 이태원 소방서 뒤편을 어쩌다 걷게 되면, 저 멀리 걸어오는 사람들 한 둘 쯤은 그 사람이 되었다가 만다. 더 이상 그는 그곳에 살지 않고, 우연히 만나기엔 카페 취향도 밥집 취향도 한참 어긋나 있는데도, 그런 상상은 참 쉽다. 기대나 예상이라기보다는, 그저 만나게 된다면 심정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 혹은 그땐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예방 차원의 상상. 물론 앞서 말했듯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이다.
그의 행복을 바라는 이유도 역시 비슷하다. 그는 행복이라는 것과 지독히도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제발 잘됐으면, 승승장구해서 막 티비에도 나왔으면, 이제 항우울제 없이 밥도 잘 먹고 이명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잘 잤으면, 하고 그의 행복을 바란다. 그럼에도 그는 자꾸 불행할 것 같아서 내 바람은 더욱더 진심이 된다. 막상 그 사람이 너무 잘돼서 보란 듯이 나타나면? 나 너무 배 아프지 않겠냐고? 아냐 진짜ㅠ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니까ㅠㅠㅠ
신기하게 지난 연인들 중에 SNS로 사는 모양새를 드러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운 좋게도 그들의 행복한 해쉬태그를 볼일도 없고, 아직 부고 같은 것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사실 이렇게 길게 썼지만 그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이제 와서?) 지금의 그들은 나에게 얼마나 무가치한가. 나의 관심은 오직 그들을 지나쳐온 지금의 나에게 있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남자 주인공은 교체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