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Nov 02. 2022

사과마을 청송, 주왕산 단풍여행

합격과 당첨의 여행

주왕산의 단풍이 절경이라고 했다. 청송은 제천과 영주, 안동보다도 아랫지방에 있었다. 나로선 어디 붙어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곳이었는데, 거길 가야겠다고 정한 것은 언니였다. 3년째 매년 가을, 언니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고 왔다. 작년에도 배움이 덜했는지 올해도 같은 시험을 준비하느라 하반기가 분주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가족여행을 떠나야겠노라고 가족들에게 발표하고는 숙소를 예약했다. 날짜를 다 정해놓고서 나에게 휴가를 내라고 닦달을 했다. 엄마 아빠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일 년에 한두 번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날부터 우리는 언니 시험이 끝나기만을 고대했다.

청송 소노벨 리조트. 지하3층에 솔샘온천은 필수로 방문해야 한다. 1층에서 파는 사과 닭강정과 사과 피자가 별미 (특히 사과 피자는 강추)

언니는 그곳이 저녁 8시 반이면 맥주 살 곳도 없는 깡시골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숙소 주변엔 온통 사과밭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주로 사과를 팔거나, 카페를 하며 사과를 팔거나, 식당을 하며 사과를 팔았다.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린 오너먼트를 연상시켰다. ‘나무 하나만 있으면 며칠을 먹을까?’하고 아빠가 물었고, 나는 ‘왼쪽보다 오른쪽 나무가 더 많이 매달고 있나’ 하고 나무들을 견주어 봤다. 엄마는 홍로는 다 수확해서 없고 매달린 건 다 부사라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했는데, 대화의 의미가 있건 없건 사과나무 구경은 재미가 있었다.

10월말 11월초 절정인 단풍과 잘 익은 사과나무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언니의 시험 전날, 엄마 꿈에 나온 건 사과가 아니라 커다란 감나무라고 했다. (종종 예지몽을 꾼다고 엄마는 주장한다.) 시험이 끝나고 느낌이 좋지 않다며 눈물의 이모티콘을 보내온 언니의 메시지랑은 좀 다른 얘기였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화분이 하나 있었고, 그 뒤로 하나가 더 들어왔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작년에 이미 붙은 1차와 올해 붙게 될 2차가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과락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언니의 예상과 달리 엄마 말대로 언니는 고득점 합격을 했다. (무려 70점..!) 이번에도 떨어지면 수치스러울 뻔했다며 가족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떨어졌다면 가족여행 분위기 어쩔뻔했어...


청송에서 우리가 목표한 곳은 단 두 곳이었다. 주산지와 주왕산. 둘 다 같은 방향에 있는데, 주왕산을 가는 길목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금세 주산지 입구가 나왔다. 거대한 호수가 거울처럼 붉게 물든 산을 비춰보였다. 그 속에는 단풍을 뛰노는 거대한 잉어가 있었다. 잉어가 물 위로 입을 벌려서 관광객들이 던지는 군밤 부스러기를 받아먹었다. 주왕산 입구에는 ‘대전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거대한 바위산을 등진 사찰을 보며,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저마다 대전사의 풍수지리를 칭찬했다. 코스가 잔잔해서 두세 시간이면 용추계곡을 보고 올 수 있었다.

주산지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가벼운 산책 수준
주왕산 주차장에서 대전사 입구 사이에는 청송 사과 뿐만아니라, 사과막걸리, 다양한 사과디저트와 송화버섯 등등을 만날 수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 입장료 성인 기준 3천5백원, 주차료는 성수기 기준 5천원

청송에 2박 머무는 동안, 저녁에는 연이어 특별 이벤트가 있었다. 언니가 긁는 복권을 스무장이나 사온 것이다. 우리는 돌아가며 당첨금으로 무엇을 할지 발표를 했다. 각자 오억원과 이천만원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천원짜리 복권 한장이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이유를 알 수도 있다. 해외여행은 이제 힘들어서 못간다고 여러번 손사레치던 엄마는 당첨금으로 제일 먼저 그랜드캐년을 보러가겠다고 했다. 물론 가족들과 모두 함께. 아빠는 어차피 엄마한테 뺏길거라며 엄마 소원이 본인 소원이라고 했고, 언니와 내 소원도 결국 엄마 소원이 됐다. 복권은 이만원어치 중에 여섯장이 당첨되서 도합 6천원이었지만, 솔직한 엄마 소원을 들은 값어치를 했다. 내 생각과 달리 인생이 짧다고 엄포를 놓아서 엄마를 비행기에 오르게 하는건 어렵고, 복권 당첨은 더 어렵다.

다음 여행이 그랜드캐년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조금은 높을까? 잘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은 꽤나 완벽했다. 합격부터 당첨까지 행운의 청송 여행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