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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Oct 06. 2022

헝가리인에게 받은 뜬금없는 사랑고백

네, 제가 바로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Are you Koreans?"

아주 작고 귀여운 금발 소녀였다. 그 소녀는 젤라또를 먹고 있는 우리 일행의 테이블에 발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예쁜 미소를 지어서 발그레한 볼살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이며,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수줍게 물었다. 쑥스러워 잔뜩 올라간 어깨 뒤에는 소녀의 엄마가 소녀의 손을 지긋이 잡고 서있었다. 그 엄마 역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곳 시오포크는 헝가리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내륙국 헝가리의 바다'라고 불리는 거대한 발라톤 호수를 곁에 두었지만, 앙증맞은 타워 하나가 가장 큰 볼거리인 그런 시시한 마을이었다. 관광객들은 호수 주변의 다른 큰 관광지들로 더 많이 몰려갔을 테니, 시오포크의 소녀에겐 한국인을 보는 게 신기한 일이었을까?


환하게 웃으며 우리는 시원하게 'YES~!!'라고 말해주었다. '두유 노우 김치?'라든지, '두유 노우 비티에스?‘따위의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 그 대답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 소녀는 앞에 멈춰 서서 돌아가지 않았다. 5초라는 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생면부지의 금발 소녀가 다리를 베베 꼬며 눈앞에 서있는 것은 꽤 의아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시에 음??? 하고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뒤에 물러나 있던 소녀의 엄마가 정막을 깨고 지원을 나섰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쪽을 향해 몸을 기울였고, 순간 뜻밖의 문장을 들어버렸다.

"사랑해."  

한국인들을 향한 갑작스러운 헝가리인의 고백이었다. 흔히 듣게 되는 '알러뷰'나 '쮸뗌므'처럼, 소녀는 좋아하는 외국어로 (아마 좋아하는 연예인에게서) 사랑고백을 배우고 외웠을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인을 만나서 반가웠을 테고, 사랑해를 써먹고 싶은데 막상 쑥스러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나는 까르르 웃으며 아~ 사랑해, 사랑해, 맞장구를 쳐줬다. 5초 만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것이 국뽕인가. 한류는 내가 헝가리의 작은 마을을 여행하는 기분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사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이 작은 마을뿐만이 아니다. 부다페스트의 중심 바치 거리에서 헝가리 청소년들은 K-POP에 춤을 추고 영상을 찍었다. 분명 나보다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알고, 가사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헝가리에 사는 내 친구는 '코가 작아서 예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이게 다 한류 덕분이라고 했다. 한류 드라마가 서양 코쟁이들의 미의 기준까지 바꿔놓고 있는 게 아니겠냐고. 과연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5년 만에 유럽에 돌아와 봤는데 이때만큼 유럽이 나에게 친절했던 적이 없었다. 동양 여자라서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던 이탈리아에서는 2회 정도 눈물을 짜냈고,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도 못하는 영어로 사람 취급 못 받을까 봐 은근히 긴장을 했더랬다. 그런데 헝가리에서의 경험은 어땠는가. 남녀노소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지나가다가 갑자기 기차역 직원이(여자분이...) 내 원피스를 칭찬하질 않나... 그러다 갑자기 사랑고백까지... 그저 헝가리가 친절한 나라인 것일까? 아니 아니, 헝가리 5년 차인 내 친구 말로는 정말로 이게 다 한류 열풍 덕이라는 것이다.


BTS에게 감사한다. 블랙핑크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에게 감사한다. 그전까지는 이런식으로 감사함을 느낄 줄은 정말 몰랐지만 말이다. 내 여행을 더 편안하게, 안전하게, 사랑스럽게 만들어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부디 한류는 끝이 없고 국가 이미지는 언제나 상승기류이기를 바란다. 아 물론 나도 잘해야겠지? 나라 욕 안 먹게?


귀여운 시오포크 워터타워가 보이는 풍경
젊은이들이 K-pop에 춤추던 부다페스트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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