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이걸 두고 가네?
프라다 가방이 생겼다. ‘이거 너 해‘하고 내 손에 쥐어진 그 가방은 언니가 전남친에게 받은 전리품이었다. 중앙에 프라다 로고를 반짝이는 그것은 쓸만하다 못해 부드러운 가죽에 작은 생채기 하나 없고 네모난 모양새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간 조심스럽게 들고 다니다가 한동안 옷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음이 틀림없었다. 언니는 그 가방에 대해 ‘애정이 다했다’라는 표현을 했다. 사물에는 사연과 감정이 들어가기 십상이라 아주 쓸만하더라도 어떨 때는 내팽개쳐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영영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옆에 우연히 서있기를 추천한다.) 물론 나의 경우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이 고귀한 명품백을 이겨본 적이 없다. 고가의 물건이라면 그런 감정을 털어내고 신나게 들고 다니는 게 맞지 않겠나?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한강에 퐁당 버려지는 반지들도 마찬가지다. 그걸 왜 버려? 요즘 금이 얼만데, 팔아먹어야지. 어쨌든 언니에게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남자친구들에게 명품백을 받아본 적이 없다. 수년 전에 핑크색 백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가 세 번 바뀌도록 매다가 명을 다했다. 국내 브랜드의 네이비색 천가방은 선물 받았을 때 꽤 유용했는데, 세월에 해지고 초라해지자 옷장에서 더 이상 나오지 못했다. 비단 가방뿐만이 아니다. 떠나간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은 그저 소소하다. 나와 만났던 대부분의 남자들은 미련도, 여지도, 별로 많은 것을 남기지 않고 떠났다. ‘그 가방 내가 사준 거잖아. 그거 돌려줘’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서였던가? 미련 없이 떠나는 상대방을 보는 것은 처음엔 슬펐다가 나중엔 점점 불쾌해진다. 늦은 밤 숙면을 묻는 전남친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나.. 그들에게 그 어떤 여운도 남기지 못한 건가...?
말차 크림이 가득 찬 크로와상을 먹으러 갔던 카페에서 뜻밖에 연애의 마지막을 맞이했던 적이 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됐는지 그날 당일에도 나는 잘 설명해내지 못했다. 내 기분 나쁜 표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서로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고 불평을 해댔지만, 그런 건 어찌 됐든 상관이 없었다. 만나는 내내 극명하게 안 맞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불만이었을 테니까. 나는 반복되는 언쟁의 패턴이 답답했다. 내 잘못을 나열하는 그의 말을 끊어버리고 카페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나는 멀리 가지도 못했다. 근처 골목길을 서성이며 상황을 곱씹으며 이렇게 이별하게 되는 것일까 두려워 했다. 삼일후면 함께 거제도에 가기로 했었는데, 비행기도 예약하고 맛집도 찾아두었는데. 이대로 헤어지는 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헤어지기 더 싫은 사람이 접고 들어가는 수 밖에는 없었다. 나는 집에 가지 못하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며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시 잘 봉합해 볼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답 없는 질문을 하며 언니와 술을 마셨다.
삼 일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여행 전에는 틀림없이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비행기 티켓 따위에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만큼 나를 사랑한 건 아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거제에 가기로 한날, 그의 sns에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청명한 하늘 아래 보석처럼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사진이었다. 사진 귀퉁이에는 광안리라는 글자도 쓰여있었다. 혼자 부산에 가서, 그 와중에 보란 듯이 사진을 올리다니. 나는 슬펐다. 결국 또 미련을 떨기 위해 다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그러나 그의 대답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너무 피곤하다. 다시는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고 싶지 않다. “ 세 계절을 함께 보낸 연인에게 이럴 수가 있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그에게서 어떠한 여지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카페가 우리의 마지막 장소였던 것이다. 다시는 봉합할 수 없는 관계가 하나 더 늘어났음을, 또 한 번 영영 이별했음을 그날 명확하게 인지하게 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영영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여지없는 개새끼였다.
다시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별마다 여지없이 미련 없이 마침표를 명확하게 찍었던 것 말이다. 나는 태생이 미련둥이라서 한번 정이 들어버리면 헤어짐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서로 맞춰보는 것이 이별보다는 덜 힘들 것 같았고, 그래서 떠나는 사람마다 마지막에는 있는 힘껏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잡혀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 그때부터는 정말 정을 떼는데 온 힘을 다 쓸 수 있었다. 감정에 질질 끌려서 한참 더 미련을 떨었다면 얼마나 시간 낭비와 에너지 낭비를 했겠냐 말이다. 운이라고 했지만, 사실 필연적인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끌렸던 사람들이 전부 이별에 관하여 같은 태도를 가진 것이니까 말이다. ‘한번 돌아서면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그들은 남겼다. 고가의 명품백도, 구질구질한 미련도, 기대를 품게 하는 여지도 남기지 않았지만, 거칠고 묵직한 것들을 내 안에 남기고 떠났다. 나는 그것을 물건처럼 버리지도 못하고 한동안 묻어두다가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뒤로 하나둘 꺼내보았는데, 정성으로 다듬어낸 그것들이 나에겐 진짜 값진 것들이 되어버렸다. 연락두절이 되어 부산으로 떠난 그 남자도 내 연애표류기에 네 편의 글로 남아있다. 그 거친 것을(그 여지없는 개새끼를) 머릿속에 이리저리 굴려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동안 나는 자유롭다고 느꼈다. 풀리지 않는 감정들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명품백보다 몇 배나 값진 것을 남기게 된 셈이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고난이 성장을 주고 좋은 글을 남긴다고 해서 언제고 팔 벌려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내 연애에 이별이 영영 없기를, 이별할 거면 레이디백이나 샤넬 투투백이라도 남기고 떠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