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매너라는게...
며칠 전에 전남친을 만났다. 어이없게도 그는 아직 나와 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을 (다시) 꺼내야 하지? 나는 상당히 난감하고 곤란했다. 분명히 우린 헤어졌었는데?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라고 생각이 들 때쯤 잠에서 깼다. 다 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또 그와의 마지막날에 대한 꿈을 꾼 것이다. 요즘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씩 꾸는 학교에 지각하는 꿈이나, 남자들이 가끔씩 꾼다고 하는 군대 두 번가는 꿈과도 같은 것이다. 몹시 난감하고 괴로웠던 기억은 뇌리에 박혀서, 심사가 복잡한 날이면 때때로 꿈속에 그대로 재생이 되곤 한다. 그와는 6년을 만났고 헤어진 것도 벌써 6년 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반감기가 지나지 않은 듯했다.
괴로웠던 그 마지막 날도 5월이었다. 사실 유예기간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다. 이별은 그 해에 했던 유일한 새해결심이었다. 결심은 좀처럼 이루기가 힘들었는데, 너무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다 성격 탓이었을 것이다. 나의 일부라고 의심 없이 살아오다가 한순간에 없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격정적으로 슬펐다. 그래서 이별하는 것을 포기하고 유예기간을 갖기로 했었다. 너무 슬프고 힘들면 새해 결심은 없던 것으로 하면 되는 거니까. 눈 오는 새벽에 나는 그에게 전화해서 한 달의 유예기간을 갖기로 했다. 그도 슬픔이 힘겨웠는지 얼른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가 한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좀 위안이 됐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헤어지기 전에는 시간을 갖자고 하는 것일까? 클리셰 같은 그 문장을 내가 사용하기 될 줄은 몰랐었다. 그리고 눈이 녹고 아랫지방은 꽃도 핀다는 소식이 들릴 때쯤에 그를 다시 만났다. 우리가 설마 헤어지겠어?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싫은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연락을 줄여가며 두 달의 시간을 더 끌었다. 그렇게 5월이 된 것이다.
마지막 유예기간을 끝내고 만난 그는 멋쩍게 웃으며 나에게 ‘우리 손잡을까?’라고 물었었다. 우리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은지 6개월은 더 된 것 같았다. 나는 이제 그를 잡고 싶지도, 잡히고 싶지도 않았다. 지리멸렬한 결심이었지만, 그날은 결국 이별해야겠다고 무척 확고하게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자고? 상황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나와 달리 그는 그간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됐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설마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다시 끄집어낸 이별얘기에 그는 약간 놀랐고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으나, 이내 수긍했다. 나는 그와 거리를 두고 앉아서 눈물을 찍어냈다. 예의 있고 안전한 이별을 위해서 우리는 천천히 헤어짐을 향해가고, 결국 마지막에 얼굴을 마주 보며 헤어졌다. 서로 슬퍼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래 끌어온 이별을 마무리하는 날은 그때부터 이따금 꿈에 나타났다.
그러나 매번 내 이별이 우유부단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더 굳게 결심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땐 아주 단칼에 헤어짐을 당하기도 했다. 사실 그 오랜 연인과 헤어진 이후로는 내가 주로 차였고 그렇게 거하게 헤어져본 적이 없었다. 드물게는 전화상으로 얘기하거나 대부분은 카톡으로 이별했다. 그것이 예의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얼굴을 보고 이별하려 했다면 오히려 나중에 떠올리며 오버스럽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들 그럴만한 사이들이었다. 짧은 시기를 함께 보냈고 시간을 들이는 이별과정은 불필요했다.
어떤 때는 전화로 이별통보를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단호했던 그와는 4개월 남짓 사귀었었다. 그간 우리는 잘 싸우지도 않았다. 싸움이 없던 것도 문제가 되었을까? 헤어지던 날은 그가 테니스 모임에 갔던 날이었다. 운동이 끝나고 술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겠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그에게서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정말 한번 싸워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몰랐다. 마침내 통화가 되었을 때 나는 오후와 저녁 내내 연락이 안 된 것에 대해 그를 다그쳐 물었다. 몇 마디가 오고 가기도 전에 그는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다지 술에 취한 목소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른 여자 생겼니?'라고 묻는 내 말에 그는 절대 아니라고 대답을 했지만,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그 통화가 정말 끝이었다. 단박에 맥없이 차인 것이다.
전화이별 이후로 2주 동안은 많이 울었다. 그를 못 본다는 슬픔보다는 억울함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울다가 한 번은 그에게 전화를 한 적도 있었는데 역시 전혀 받지 않았다. 받기를 바라며 걸었지만, 2주가 지난 뒤로는 그가 끝까지 나를 만나주지 않은 것에 크게 고마웠다. 통화가 됐다면, 얼굴을 또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단호한 그의 마지막 문장과 통화종료를 알리는 핸드폰 화면에서 일말의 여지도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때부터 이별은 나 혼자의 문제가 된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는 일보다 늘 비교적 수월했다. 얼굴을 보고 이별했다면 나는 또 눈물을 질질 짜냈을 것이고, 구차한 말들로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겠지. 그리고 승산 없이 돌아와서 후폭풍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어떤 이별을 하든 매한가지로 괴로웠지만, 만남의 기간과 깊이에 따라 이별의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원래 행복한 연애는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이별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무엇이 더 좋은 이별이라고 따지는 것은 무용할지도 모른다. 이별이라는게 원래 좋을리 가 없는 것이다. 이따금 꿈에 나올 정도로 괴로운 것일수는 있어도. 그러니까 예의를 차린 이별은 그것대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못난 이별일수록 정을 빨리 뗄수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