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갈때 가고싶은 심정
몇 달 전 네이버 뉴스에는 봄을 알리는 벚꽃개화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하나 올라왔다. “40대 신부가 20대 초반 신부보다 많다…” 기사에 따르면 20대 결혼율은 지난 25년간 90% 넘게 감소했고, 40대 결혼율은 그 반대로 50%가 상승했다고 한다. 20대는 아득히 멀어져 가고, 정면으로 오는 40대를 몇 년 앞둔 대한민국 미혼여성으로서 기쁘고 환영할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소식을 접한 그다음 주에는 친한 언니가 41살의 나이에 버진로드를 걸었다. 모바일 청첩장에는 스튜디오가 아닌 다양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찍은 신혼부부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많았다. 특히 노란 한복을 입은 사진이 예쁘다고 칭찬을 하자, 언니는 “차라리 한복을 입어야 할까 봐 ㅠㅠ 나 아직도 본식 드레스 못 정한 거 있지?” 라며 우는 소리를 했다. 이것저것 정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 골치가 아프겠다고 공감을 했지만, 그것은 큰 행복에 어쩔 수 없이 딸려오는 티끌 같은 고민들이었을 것이다. 결국 언니는 뽀얀 어깨와 쇄골을 드러내고 가슴과 허리를 감싸는 레이스에 화려한 비즈가 잔뜩 달린 A라인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예식장을 걸어 들어왔다. ‘결국 어디서 구한 거지?’ 출처가 궁금한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신랑은 언니보다 한 살 많은 오빠였는데, 체격이 좋고 단정하며 스마트한 이미지의 훈남이었다. 언니처럼 어느 대학 교수님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으나, 국회에서 일하는 정치계 인물이었다. ‘결국 어디서 구한 거지?’ 부러운 결혼식에 초대받으면 늘 비슷한 의문이 든다. 둘은 무척 행복해 보이는 한쌍이었다.
나 20대 초반에는 ‘역시 웨딩드레스는 20대에 입어야 예쁘다’는 말이 통설처럼 돌았다. 어느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에는 ‘서른이 가기 전에 결혼은 할는지~’라는 어이없는 가사가 들어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뀐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들 몇몇이 통설을 따라 어리고 귀엽고 예쁘고 다하는 20대 때 결혼에 골인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보며 나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터뜨릴만한 일이지만, 서른이 되던 해 어느 날 밤에는 '내가 이대로 미혼으로 늙어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도 있다.(그날 이후로 고카페인은 피하고 있다.) 미혼 선배님들이 누누이 말했던 것처럼 결혼에 대한 불안과 내려놓음은 플로우가 있어서, 밤잠을 못 이루던 그 시기가 지나자 오히려 평온한 시기가 이어졌다. 이제 막 이십 대를 지나왔을 뿐인데. 서른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서른셋, 연애 시장에서 방황하던 시기에 미혼이 아닌 친구들과는 잘 만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서, 딱 올해 남자를 만나서 적당히 연애하고 서른 다섯 전에 결혼하면 되겠다는 그럴듯한 계획표를 그렸다. 그 반쪽짜리 계획표를 들고서 나는 연애 시장에서 몇 년을 더 헤맸다. 그리고 여러 번의 이별을 경험한 뒤로, 소개팅이 있던 주말이 끝나면 어이없고 우울한 일기를 썼다. 사실 급한 건 결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애였다는 것을 절감하며... 선행조건이 글러먹었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 나는 이별을 할때마다 믿음이 필요했다. 실신한 믿음. 나는 다시 일기장을 펴고 믿음, 소망, 사랑 중에 믿음이 우선이라고 적어두었다. ‘곧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믿습니다!!’ 이별의 슬픔을 침잠시키는 노하우는 내가 아직 한참 젊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 다시 설레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는 믿음이었다. ‘어떻게 이별을 극복하셨나요?’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망한 연애를 글로 쓰다 보면 꽤 자주 받는 질문이었다.) 종교 없는 나는 늘 믿음을 설파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겐 꽤 먹히는 이야기였다. 그 계기로 망한 연애 스토리를 책으로 써볼까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고작 서른셋에 결혼 못한 노처녀인 척하는 것이 오버스럽다고 생각해서 그만두었다. 요즘 서른셋은 옛날이랑 완전 딴판이라니까. 나는 아직 내가 어리다고 생각했다.
서른여섯에는 더 이상 오버스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더 이상 믿음을 설파할 수도 없었다. 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남자분 때문이었다. 마흔을 넘겼고, 연애는 하고 있지 않으며, 매번 소개팅이 잘되지 않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에게, 나는 평소처럼 믿음을 얘기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회의적인 표정으로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자신은 점점 그들에게 덜 매력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제가 작년에 만났던 분은 저보다 어리고 예쁘고 똑똑했고 직업도 좋았죠. 제가 그분보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도? 믿음? 그런 마법 같은 주문을 걸기엔 내가 너무 멀리 왔어요.” 객관적 사실들에 얻어터진 나의 믿음은 빛을 잃었다.(유치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를 비관적이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무턱대고 희망적이기만 한 생각은 때때로 자신을 흉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연애를 한다고 독서모임에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마 예전 만남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났을지도? 그의 말대로 객관적 사실들에 의거한다면 믿음이 좀 부족하지만.
서른일곱의 봄이 지나가고 있다. 믿음과 소망대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결혼은 먼 얘기다. 얼마전에는 네살어린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내 나이를 언급하며 빨리 애를 낳아야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셨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내 나이에 애가 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부모님 세대가 충분히 물어볼 만한 것이었다. 더구나 남자친구의 큰 누나가 나와 동갑인데 벌써 애가 둘이었다. 그래도 언제나 내 나이에 관해서라면 그 숫자에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나는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것인가? 노산이 걱정되어서 결혼을 서둘러야하는? 불안하지만 외면하고 싶다. 뉴스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신체적으로 출산적기인 20대보다 명백히 노산이라는 40대 결혼율이 더 높다고. 나에게 그저 전처럼 얼마간 불안한 시기가 찾아왔을뿐이다. 나는 아직 어리..지는 않지만!!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하다! (의학도 점점 더 발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