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Apr 25. 2023

피자 한 조각에도 부부싸움은 시작된다

사소한 것에 폭발하는 '사랑하는' 사이

몇 달 전 대학선배에게서 뜬금없는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아내가 생긴 남사친과의 관계가 늘 그렇듯, 선배가 결혼한 뒤로 친하던 우리는 연락을 뜸하게 했고 서로 생일만 적당히 축하하는 사이로 지내던 중이었다. "이거 읽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봐, 기분 나쁜 상황인지." 동문들 사이에서 연애의 우여곡절이 유난히 깊던 선배였는데, 결혼 후 보내온 첫 메시지가 심판을 봐달라는 내용이라니. 선배는 행여나 나의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칠까 봐 남녀라는 표현도 없이, 'A와 B'의 스토리를 줄줄이 적어 보내왔다. 사실 잘잘못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은 귀찮기보다는 판사가 될 생각에 오히려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어디 보자.. 순간 나는 마음속에 두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을 세워본다. 자,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라. 선배가 보내준 스토리는 이러했다.


A는 평소에 본인이 소식가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A와 B는 저녁식사로 피자를 한판 시켰고, 한 판은 8조각이었다. A는 3조각, B는 4조각을 먹었고 피자는 한 조각이 남아있었다. 암묵적으로 둘 다 남은 피자는 A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B : 남은 한 조각 나눠 먹을까?

A : 배고파? 그럼 피자 한판 더 시킬까?

B :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A : 근데 왜 나눠먹자고 했어?

B : 남을까 봐 물어본 거지.


짜게 식은 피자 한 조각을 앞에 두고 냉랭한 문장들이 오고 가며, 그 스토리의 뒷부분은 싸움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기분 나빠. 왜? 이게 왜 기분 나빠? 남들한테 물어봐. 이게 기분 나쁜 상황인지, 등의 문장들이 오가지 않았을까? 만약 다정하게 서로의 위장 상황을 걱정하는 대화였다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내 안의 정의의 여신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사실 정의의 여신까지 운운했지만, 나는 선배일 것으로 추정되는 B의 입장에 적당히 공감하며, 피자 남겨서 다음날 데워먹어도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의 연애에 객관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가. 나이를 먹을수록 판단은 빨라질지 몰라도 의견 표현은 점점 흐릿해진다. 남의 사랑싸움에는 역시 적당히 공감하고 화해를 응원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나는 당사자를 따돌리고 혼자 생각을 해본다. 당당하게 A의 피자를 나눠먹으려 했던 B의 잘못일까? 선배가 B일 것이라고 추측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피자라고 예민을 떤 A가 왠지 더 잘못한 거 같다는 기분이 든다. 굳이 배고프냐고 물을 건 또 뭐냔 말이다. 이미 피자 4조각을 먹었는데, 배가 고프겠니? 그냥 먹고 싶을 수도 있지. 물론 먼저 기분 나쁜 표정과 말투로 받아친 사람이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이런 건 남들과 함께 누가 더 잘못했나 따져보는 것이 재미가 있다. 마치 깻잎논쟁이나 밸런스게임처럼. 그나저나, 그 선배는 왜 이렇게 시시하고 별것 아닌 것에 싸움박질을 하는 것인가? 훗, 하고 돌아서자 문득 낯 뜨거운 나의 싸움박질이 떠올라버렸다. 아주 시시하고 아주 별것 아닌 것에 불같이 싸우는 연애시절, 그것은 심지어 나이 어린 시절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우리 집 부엌에서 요리를 해 먹기로 했던 날이었다. 새벽배송이 되는 인터넷 마켓에서 전날 재료를 엄선해서 주문을 했고, 당일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잘 만났다. 우리는 다정한 커플이었다. 묵사발을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말 그대로 우리의 저녁메뉴에는 묵사발이 있었다. 감칠맛 나는 국물에 물결무늬의 도토리묵이 들어가고 그 위에 김고명과 깨가 뿌려지면 완성되는 묵사발 키트. 포장지에는 '3분'과 '쉬움'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나는 불이 필요한 다른 요리를 먼저 시작했는데, 요리가 어색한 남자친구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묵사발을 만들어보라고 그에게 쉬운 일거리를 줬다. 근데 그가 대충 대답만 하고 여전히 프라이팬을 보고 서있는 게 아닌가? "아 빨리 묵사발 만들라니까?" "알겠어. 조금 있다가 하면 되잖아." "왜? 지금 하라는데 왜 조금 있다가 하는데?" 묵사발 싸움의 시작이었다.


나는 묵사발을 만들라고 말하며 점점 더 언성을 높였는데, 스스로 기분이 상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가 없는데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묵사발은 시원해야 더 맛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냉장고에 두려고 했다고 고성이 몇 번 오간 후에야 설명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먼저 말했어야지!" 그의 설명에도 나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대충 차려진 식탁에 묵사발을 가운데 두고 침묵했다. 아주 오랜 침묵이었다. 나는 내가 왜 언성을 높여야 했는지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왜 잔뜩 심술이 났을까. 묵사발을 만들라는 내 말을 당장 실천하지 않은 것으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낼 정도로 나는 형편없는 사람인가? 변명처럼 쏟아지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그리고 조금씩 뚜렷해지는 감정. 나는 평소에 남자친구의 느린 행동 덕분에 늘 내가 더 많이 몸을 움직인다고 억울해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설거지를 못 참고 해 버린다거나 나중에 해도 되는 쓰레기 정리도 먼저 해버리고는 내가 다 했다고 은근히 꽁해있었던 것이다.


묵사발을 만들어내라고 화를 내게된 내 감정에 대해 말하고나니, 남자친구도 이 느닷없는 싸움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는 듯 보였다. 대답부터 행동까지 느긋하다는 것을 그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나서 이런 사단이 나기전에 미리 차분히 의견을 말해주면 안되겠냐고 내게 물었다. 그러게, 진짜 나도 그게 되면 좋겠는데.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묵사발이 터지기 전까지 나는 내가 단단히 꽁해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어떤 감정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마음에 담아두다가, 때를 만나면 뚜렷하게 표출되기도 한다. 말로 표현하면 분란을 일으킬까 봐, 혹은 옹졸해 보일까 봐 숨겨두던 마음은, 상대방의 작은 실수에 거침없는 문장들이되어 입밖으로 꺼내진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지 못하면 싸움의 원인은 단지 묵사발이나 피자 한 조각에 매몰되고 만다. 묵사발을 빨리 만들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애인이 되거나, 피자 한조각도 나눠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용히 쌓여가는 감정을 경계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화를 내고 슬퍼한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잘 돌보는 사람이 가장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크라테스, 그는 연애박사였으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