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시야: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
며칠 전 둘째 이모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얘기를 엄마한테 전해 들었다.
“승현 오빠가 핸드폰 잃어버렸다면서 당장 큰돈 벌 기회가 있는데 놓칠 수가 없어서 당장 백오십만 원을 송금해 달라고 했데”
사기꾼은 송금이 아니라 편의점 구글 플레이 기프트카드를 이용한 사기를 쳤다. 지금 당장 거래할 건이 있는데 수익성이 대단하다면서 이모에게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구글 기프트 카드를 150만 원어치 구입하고 카드번호를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친척오빠를 가장한 그 사기꾼의 다그침에 이모는 정신없이 편의점 두 군데에서 여러 장의 카드를 구입하고 사진을 찍어서 카톡을 보냈다. 세 번째 편의점에 방문해서 구글 카드를 집었을 때, 물건을 사러 왔던 다른 아주머니가 ‘보이스피싱일 수 있으니 조심해라’라는 말을 했고 이모는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우셨다고 했다.
이모는 어떻게 그게 오빠가 맞는지 확인해볼 생각을 안 했을까? 번호를 눌러서 전화통화만 했어도, 아니 오빠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한번 물어봤다면 분명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왜 몰랐어!!’라고 하기에는 나 역시 누가 보아도 비합리적인 상황을 전혀 판단하지 못했던 일이 있다.
2년 전 나는 언니와 함께 오피스텔을 분양권을 샀다. 이미 다른 지역에 두 채의 오피스텔 분양권을 산 이후였다. 건물 하나가 다 지어져서 등기를 치기도 전에 또 다른 건물의 오피스텔에 투자를 한 것이다. 두 번째 건물의 오피스텔은 복층이었고 주변시세보다 많이 비쌌고 지하철역과도 가깝지 않았다.
부동산 투자가들이 말하는 잘못된 투자의 사례를 우리가 직접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 망한 투자를 어찌어찌 해결하느라 2년간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한 언니가 고생을 했다.
우리는 어떻게 그게 옳은 투자인지 깊은 생각 없이 실천에 옮겼을까? 부모님이나 부동산을 잘 아는 이모에게 전화만 한번 했어도 그런 사고를 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다 결핍 때문이다.
승현 오빠는 코로나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이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아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만 집중해서 터널시야에 빠진 것이다. 터널시야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느라 나머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것은 주로 시간과 돈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간과 돈이 부족할 때 우리는 옳은 판단을 하기 어렵다.
우리가 잘못된 투자를 했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언니와 나는 본업과 더불어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새로운 사업은 경제난과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우리의 예측과는 정반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빨리 이 실패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텐데... 우리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이것은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보이스피싱에 더 잘 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궁지에 몰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궁지에 몰리기 전에 밖에서 문을 열어줄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쌓아두어야 한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곳까지 시야를 넓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타인에 의해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것이 좋다. 나는 독서토론모임이나 다른 소셜클럽 모임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나의 닫힌 생각이 밖에서부터 열리는 경험을 꽤 자주 한다. 그러한 경험은 나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삶을 바꾸는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또한 나는 실패 경험을 통해 시간과 돈이 부족할 때 좋은 투자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는 언젠가 또 올 것이라 생각하고 단념하는 마음을 배웠다. 내가 결핍이 있을 때 다가오는 좋은 기회는 절대 ‘좋은’ 기회가 아니다.
그래도 역시 '나는 절대 함정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시건방진 낙관이 가장 위험하다.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은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