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면 또다시
여행이 끝나면 연극이 끝나고 난 것처럼 추슬러야 할 감정이 생긴다. 다시 돌아와 잘살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었다 해도, 온전히 모든 정신이 여행지에서부터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쉽지가 않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휴가가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방금 휴가가 끝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내일부터 다시 주말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은 일요일 밤에 가장 간절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휴가의 끝, 여행의 끝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수반한다. 주말은 기다리면 오지만 휴가는 계획해야만 오니까 아쉬움의 고통은 더 절절하기도 하다. 그것이 이른바 여행 후유증이다.
여행 짐 정리
나의 경우는 여행 후유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재빠른 짐 정리를 1순위로 놓는다. 놔둘수록 귀찮고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짐 정리이다. 마음속에 여행이 훑고 간 자리를 잘 정리하는 것은 후유증 극복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나 여행의 피로가 묻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깨끗하게 빨아두는 것은 일상으로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리는 의식과도 같다.
기념품
내 일상 속에 여행지에서 얻은 전리품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여행 엽서는 지난 여행지에서 사 온 다른 엽서들과 함께 서랍에 들어가고 마그넷은 고심 끝에 배열을 맞춰 냉장고 문에 부착된다. 나는 기념품으로 컵을 자주 사는데 그것은 유용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운반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기념품을 고를 때도 나는 기능성을 상당히 따진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면 그만큼 그 여행이 자주 기억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유용함을 따지지 않고 단지 예뻐서 산 것들도 많다. 순전히 기념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념품이 되니까 말이다. 스위스 여행을 하며 만났던 어떤 커플은 기념품으로 스노볼을 모은다고 했다. 그들은 두 달간 유럽 일주를 하고 있었고 사 모은 스노볼만 2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묵직한 기념품을 수집하느라 그들은 여행 중에 미국에 있는 본가로 짐을 두 차례나 붙여야 했다고 말했다. 내가 기념품 수집으로 엽서를 택했던 것을 그들과의 만남 이후부터였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기념품으로 여행지에 도착한 날에 발행된 신문을 산다고 한다. 그날의 역사가 적혀있는 신문. 나는 정말 그것이 기막힌 기념품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는 신문에 담긴 중요한 기사거리와 본인의 여행시기를 연결시켜서 여행을 추억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OOO 홈런 세계 신기록’이라는 기사를 보면, 나중에 그 소식을 따로 들어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추억이 떠올라, 물론 좋은 이슈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 속의 이야기는 역사가 될 텐데 그렇다면 나의 여행도 그런 중요한 역사 속에 남게 되는 기분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여행지에서 신문을 기념으로 가져오던 그분은 지금 연합뉴스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여행지에서 유명한 술을 사모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지도 모르지만, 집에 돌아와 여행지에서 공수해온 술을 한잔하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현지에서가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술일수록 맛있게 음미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에 털어 넣는다.
지인들을 위한 기념품이라면 요새는 점점 사 오지 않는 것이 추세인듯하다. 여행지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선물을 고르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의무적으로 기념품을 돌리는 것은 20세기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실용성이 전혀 없는 선물은 단지 ‘나 여기 놀러 갔다 왔다’하는 자랑처럼 보여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되도록이면 그런 것들은 사지 않으려고 한다. 내 지인들도 모두 ‘도대체 뭘 사줘야 하지?’하는 고민 없이 내 선물은 뛰어넘고 여행을 잘 즐기고 오기를 바랄 뿐이다.
여행사진 정리
여행이 끝나면 추슬러야 할 감정뿐만 아니라 정리해야 할 사진도 한 트럭이 된다.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남는 건 사진이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얼마나 즐거웠는지 인터넷상에 자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여행사진은 한층 더 중요해졌다. 심지어 내가 20대 초반에 분기마다 함께 여행을 했던 모임의 이름은 ‘프로필 사진을 교체하기 위한 여행 모임(줄여서 프사모)’이었다.
스마트폰이 사진기를 대체하면서 여행사진을 관리하는 법은 한편으로는 쉽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워졌다. 우리는 사진을 쉽게 찍고 쉽게 저장한다. 아주 미세한 차이만을 가진 비슷한 사진들이 공간이 무한한 온라인 데이터 저장소에 기한을 모른 체 저장되기도 한다. 4차 산업이 발달해서 저장공간이 넉넉해질수록 좋은 사진을 골라내는 일은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추세와는 반대로 여행사진을 정리하는데 다소 집착적이다. 여행 중에도 숙소에 돌아오면 함께 찍은 사진을 동행자에게 빠르게 공유하는 편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블로그에 사진을 정리한다. 그리고 인화할 사진을 추려서 인터넷 인화 업체에 전송하고 앨범을 만들어서 책장에 꽂아둔다.
사진을 인화할 때 꿀팁
첫째,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진들도 모두 출력하자. 어째서인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진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꽤나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우스꽝스러운 사진들 역시 볼 때마다 웃을 수 있어서 좋다. 나이가 들면서 하루라도 더 어릴 때가 그리워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둘째, 앨범은 비싸 봤자 소용없다. 인화 업체에서 앨범을 만들어주는 것은 멋지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진이 들어가기 어렵고 사진 배열을 정하는 것도 골치 아프다. 무조건 기본 인화를 해서 다이소에서 파는 3천 원짜리 앨범에 꽂아두는 것이 제일이다.
나는 특히 가족여행은 앨범으로 꼭 만들어두는 편이다. 다들 바빠서 식탁에 다 함께 앉기는 드문일인데, 그래도 그 드문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여행사진을 펼쳐보며 똑같은 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이때 몇 살이었지?”, “여기 진짜 좋았지.” “맞아 이거 진짜 맛있었어” 그것은 행복과 불행이 공평하게 일어나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행복해질 것임을 확신하는 우리만의 방법이다.
여행이 끝나면 또다시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그렇다.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는 법은 언제나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을 설렘으로 교체하고 다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금방 다시 떠날 수 없다 해도 막연한 ‘다음에..’라고 해도 여행을 생각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