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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Sep 17. 2020

우리는 매달 휴가비가 나오는 방이 있다.

에어비앤비로 벌고 리조트에 쓴다.

우리 가족은 매달 휴가비가 나오는 방이 있다. 임대사업자로서 매달 노동 없이 통장에 돈이 꽂히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3년 넘게 집 근처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고, 그 수익은 매년 우리 가족여행 경비로 쓰인다는 말이다. 정확히는 언니와 내가 에어비앤비 공동 호스트이고 엄마가 빨래를 도와주고 있다.



내가 처음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던 것은 방콕을 방문했을 때였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친구가 알려준 낯선 어플로 숙소를 검색했다. 요즘 유행하는 로컬 숙소 앱이라고 했다. 앱에서 보이는 사진들이 대체로 훌륭했다. 사진에서 침대와 화장실의 수를 확인하고 내부구조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예약했던 숙소의 호스트는 영어와 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나는 열심히 영작을 해가며 숙소를 예약했고 방콕에 도착하기 전에 입실 방법을 안내받았다.


입실 방법은 상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방콕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라서 호스트에게 직접 키를 받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곳은 방콕 시내의 고급 아파트였고 일층에는 경비원들이 있어서 문을 열어주었지만, 그들이 에어비앤비 게스트의 입실을 도와주는 일까지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에 아파트 입구 앞에 자전거가 있었고 자전거 바구니에 번호키가 달린 주머니가 있었다. 나는 아파트에 도착하기 이전에  호스트에게 비밀번호를 받았고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그 자전거 주머니를 오픈했다. 그곳에 아파트로 들어가는 열쇠가 있었다.

방콕의 아파트

내가 두 번째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던 것은 특이하게도 바르셀로나에서 요트를 빌렸을 때였다. 내가 요트조종면허가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둥둥 떠있는 요트를 빌려서 거기서 이틀을 잤던 것이다. 예전에 암스테르담에 있는 보트하우스를 보고 나서 나는 줄곳 배에서 자는 낭만을 꿈꿔오고 있었다. 그런데 바르셀로네타에 정박된 요트들 중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요트가 에어비앤비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보트하우스와 요트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인지 몰랐다. 정말 세상 불편해서 다시는 배에서 잔다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나중에 큰돈을 내고 호텔 같은 신식 보트를 빌린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르셀로네타의 보트하우스


그래도 이렇게 불평을 하기에는 내가 떠나는 날 요트 키 두 개 중 하나를 잃어버려서 할 말이 없다. 호스트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호주인이었는데 체크인과 체크아웃 때 두 번 다 가방을 들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가 키를 하나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 그는 아마 ‘아.. 이제 키 분실에 대한 페널티를 적어놔야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가 더 발전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오사카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을 때는 호스트가 한국인이었다. 그도 방콕의 호스트처럼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곳 역시 번호키가 달린 우편함에서 방키를 찾아서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한국어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니 편하기도 했고 어쩐지 마음도 놓였다. 사실 주변 숙소 시세보다 무척 싸서 아주 약간 의심이 들었는데 (강하게 의심이 들어도 하는 수 없이 거기서 잤겠지만) 실제로 가보니 꽤 편안했다. 아마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우리가 첫 손님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주 친절했고 마지막에는 후기를 반드시 꼭 남기시라고 강조의 강조를 했다.

오사카의 아파트

타국의 에어비앤비를 사용해본 후로 나는 한국에서 호스트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결정적으로 우리 언니의 지인이 실제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어서 운영 사정을 간단히 전해들으며 어느정도 마음을 정했다. 자세한 조언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언니와 함께 대충 손익분기점을 생각하며 최소 팔아야 하는 숙박일 수를 계산해봤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되면 그때 접을 요량으로 부동산 계약부터 했다. 역 앞에 있는 아담한 원룸이었다.


입주 날부터 우리는 퇴근 후에 원룸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이틀간 벽면에 붙어서 페인트칠을 했다. 부엌 벽면의 촌스러운 꽃무늬 타일 스티커를 떼고 북유럽 느낌의 입체 타일 스티커를 붙였다. 입체무늬를 정확하게 맞추느라 비싼 스티커 세장을 버렸다. 그리고 이케아로 가서 원룸을 채울 가구와 집기들을 샀다. 하루빨리 오픈해야 장사를 할 수 있기에, 나는 언니랑 시간이 안 맞으면 커다란 가구를 혼자 어깨로 받쳐가며 조립을 해나갔다. 소파베드를 혼자 조립할 때도 설명서에는 사람이 두 명 등장했다. 그리하여 나는 조립가구 전문가가 되었다. 이케아 직원으로 채용되어도 마땅한 수준이었다. (사실 에어비앤비를 3년 이상 운영하며 이케아 가구 몇 개는 다른 가구로 교체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내구성이 좋지 않은 제품들이 꽤나 많다.)

인테리어와 청소까지 열흘이 걸렸다. 그리고 첫 한 달 중에 25일 이상 예약이 찼다.


맨땅에 헤딩했는데 다행히 쿠션 바닥이었구나, 나는 생각했다. 일 년간 장사가 잘되어서 우리 에어비앤비는 좀 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했다. 또 한 번의 인테리어와 청소를 했고, 두 번째 에어비앤비를 오픈할 때 또다시 한번 인테리어와 청소를 했다. 두 번째부터는 속도가 붙어서 일주일 만에 오픈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에어비앤비를 처음 오픈했을 때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열명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중에 한 명도 실제로 오픈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마 에어비앤비가 본업이기에는 수익성이 낮고 부업으로 하기에는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체크아웃 시간(11시)과 체크인 시간(3시) 사이에 완벽하게 청소를 해야만 한다.


다행히 언니와 나는 돌아가면서 시간 맞춰 청소일을 잘했고, 가끔 엄마가 도와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부터 큰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이 없었다. 크지 않은 그 돈은 차곡차곡 모여서 매년 우리 가족여행 경비로 쓰였다. 에어비앤비 빨래가 힘든 엄마를 위해 건조기를 샀고 우리 집 화장실 공사에 보탬이 되었다.


우리가 에어비앤비를 운영한 수익으로 떠났던 첫 여행지는 베트남 다낭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서도, 해산물 뷔페의 크랩과 새우를 먹다가도, 누워서 마사지를 받았다가도, 나는 생각했다. 더 열심히 청소해야지. 더 열심히 남에 여행을 도와줘야지. 그후로도 우리가족은 열심히 남에 여행을 도우며 우리 여행을 다녔다.

베트남 다낭 올라라니 리조트

현재는 코로나의 여파로 에어비앤비 두 개 중 하나만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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