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연봉 1억원 직원이 되기로 했다

4,400만 원짜리 외주가 터졌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by 함윤선

며칠 전, 외주 대행사로부터 날 선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잔여 과업은 4,400만 원 규모. 그들은 그중 약 1,000만 원어치의 업무만 마무리하고 나머지는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자세한 내막은 이전 글 참고: https://brunch.co.kr/@cheetah/14)


해지 통보 메일을 확인한 (우리회사) 대표님은 그날 밤 8시, 내게 직접 전화를 주셨다. 이례적인 상황에 사안의 전말을 궁금해하셨고, 다음 날 점심까지 사주시며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라고 당부하셨다. 이사님 역시 "최대한 좋게 마무리하자"는 말을 남기셨다.


도대체 비즈니스 현장에서 '슬기로운 대처'란 무엇일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두고 대행사와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리소스를 낭비해야 할까? 아니면 적당히 타협해서 마음에 차지 않는 결과물이라도 챙겨오는 것이 최선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의 결론은 한 지점에 다다랐다.


'이미 벌어진 일, 진흙탕 싸움에 힘 빼지 말자.차라리 그들의 잔여 과업을 내가 직접 물려받아 상반기 안에 완수하는거다. 내가 연봉 1억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1인 사업자라 생각하고 말이다.'


회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본질은 매출을 견인할 '결과물'이지, 서로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언쟁이 아니다. 줄 건 주고 끝내는 '줄건줘' 마인드로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가장 '슬기로운' 답이었다.



'리소스 낭비'와 '비즈니스 표준' 사이

사실 나도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100%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협상이야 각자에게 유리한 카드를 꺼내기 마련이지만, 이번 건은 그 방식에서 큰 가치관의 차이를 느꼈다. 가장 아쉬웠던 지점은 '마무리'를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대행사가 그동안 겪었을 고충을 알기에, 프로젝트는 멈추더라도 그들의 공수가 정당하게 정산되길 바랐다. 그래서 폐기될 뻔한 기획 비용을 공식 인정하고 상계(차감) 처리하자는 제안을 내가 먼저 건넸다. 나중에 생길 수 있는 정산 갈등을 최대한 방지하고, 나 역시 내부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보고를 매듭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안이 사내에서 통과되려면, 노션이 낯선 분들도 쉽게 접근하고 응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자료'가 필요해보였다. 그래서 노션 링크가 아닌 PDF나 PPT 형태의 정리를 요청했다.


나의 요청: "저희는 노션 자체가 낯선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링크 형태로는 기획의 깊이를 온전히 전달하고 제대로 된 값어치의 협의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상계 견적 희망 시 기획안들을 PDF나 PPT 등의 파일 형태로 정리하여 송부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프로젝트를 원만하게 매듭짓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절차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대행사 대표는 카톡으로 짧은 답변을 보내옴과 동시에, 거의 실시간으로 '계약 해지 통보 메일'을 발송했다.


대행사의 답변: "말씀하신 PPT 재작업 등 추가 리소스가 드는 일은 지양하겠습니다., 대신 그간의 과정을 한눈에 보실 수 있는 '업무 히스토리 요약본'과 최종 정산 견적서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문서 정제는 '지양해야 할 번거로운 일'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그들은 자신들이 제안했던 기획안의 가치를 수천만 원 규모로 산정해 둔 상태였다. 수천만 원의 가치를 자부하면서도, 정작 수령할 고객의 환경에 맞춰 문서를 내보내는 공수는 아까웠던 것일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워크스페이스에 담긴 노션 링크 하나를 해지 통보 메일에 하이퍼링크로 툭, 일방적으로 전송해 왔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워크스페이스에 계정을 초대받은 적이 없었던 대표님과 이사님은 해당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또한 내 눈에 수천만 원의 예산이 오가는 협의를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웹 페이지 링크 하나로 갈음하는 것은 비즈니스 상식에 맞지 않아보였다.


여담이지만, 나 역시 부업으로 로고디자인을 하면서 시안을 노션으로 전달해 본 적이 몇 번 있다. 그때 클라이언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요청은 "내부 보고용으로 PDF 파일 하나만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였다. 처음엔 나도 '링크로 보면 편한데 왜 굳이?'라며 번거롭게 느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요청을 겪으며 깨달은 실무적 진실이 있다. 내 작업물이 고객사 내부에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려면, 그들의 의사결정권자들이 가장 보기 편한 형식을 갖춰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내 디자인이 빠르게 통과되어야 나도 제때 성과(돈..)를 정산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사무적 표준인 PDF는 물론, 최근에는 AI 모델을 생성해 로고가 업종 현장에 안착된 시뮬레이션 이미지까지 함께 제공한다. 이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담당 실무자가 상사를 설득할 때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를 건네는 일이다. 내 작업물의 가치는 결국 현장에서 '통과'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AI 모델을 생성하여 로고가 실제 업종 현장에 적용된 시각화 자료를 함께 드린다. 담당자가 내부 보고 시 '이런 느낌입니다'라고 직관적으로 설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결국 정제된 문서는 '나'라는 작업자를 전문가로 돋보이게 만드는 확실한 도구인 동시에, 내 결과물이 현장에서 제값을 인정받도록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결과물이 고객의 환경에서 어떻게 읽힐지 고민하는 수고를 '리소스 낭비'로 치부하는 파트너십은 적어도 내가 일하는 방식과는 결이 맞지 않았다. 대행사가 챙긴 '효율'이 클라이언트의 '이중 노동'으로 돌아오는 소통 방식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했다. 굳이 힘들게 협상해서 결과물을 얻어낸들 결코 윈윈(Win-Win)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자, 비로소 내가 해야할 일이 선명해졌다




진흙탕 싸움 대신 선택한 '줄건줘' 마인드


소모적인 논쟁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비즈니스의 실질적인 이득을 우선하기로 했다. 회사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은 대행사의 작업물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그것이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었는가'라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그들이 해지 통보 메일에 명시한 정산 조건을 최대한 수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표님과 이사님께는, 그 비용 이상의 가치로 남은 과업을 내가 직접 완수해 내겠다고 말씀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협상력이 부족하다거나 실무자로서 무능한 게 아니냐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지부진한 논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보다, 상황을 신속히 매듭짓고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즉시 움직이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 소모적인 싸움으로 얻어낼 승리보다, 내 손으로 직접 증명해 보일 결과물이 훨씬 더 확실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1. 과업 소유권의 명확한 이전: 대행사로부터 지금까지의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을 확실히 넘겨받는 일.

(다 그들의 노션 워크스페이스로 되어있다...노션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2. 잔여 과업물에 대한 최종 협의: 그들이 진행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은 끝까지 책임지고 수령하는 일.


3. 상반기 내재화 로드맵: 내가 어떻게 그들의 과업을 이어받아 상반기 내에 성과를 낼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Plan).


4. 1인 사업자로서의 마인드셋: 이 일을 단순히 본업에 더해진 '잡무'라 보지 않는 것.나는 지금 회사로부터 대행사가 맡았던 과업 전체를 직접 수임한 1인 전문 사업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6년의 나는 스스로에게 4,400만 원의 추가 연봉을 준 셈이다. 소위 '억대 연봉자'라면 주말과 평일의 경계 없이 이 정도 책임감은 기꺼이 짊어지지 않겠는가. 나 역시 이번 주말을 이 플랜을 짜는 데 쓰기로 했다.



나의 '김밥천국美'로 증명할 실질적인 가치


"전문 업체도 손을 뗀 일을 개인이 할 수 있겠어?"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생존 전략인 '김밥천국미(美)'가 있다. 김밥천국에는 화려한 파인다이닝 메뉴는 없어도 모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메뉴가 있고, 누구나 집에서 조리할 수 있는 메뉴임에도 사람들이 기꺼이 사 먹는 확실한 수요가 존재한다.


나의 목표는 전문가의 역량 100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회사를 4년 넘게 다닌 내부자로서 '82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당장 현장에서 작동하는 '적당히 양질의 결과물' 을 신속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전공자였음에도 로고 디자인 부업으로 성과를 냈던 경험, 그리고 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AI 군단과 수많은 유튜브,책 속의 선생님들이 내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나는 이번 주말, 대행사로부터 이전받아야 할 과업 리스트와 이를 내재화하기 위한 실행 방안을 담은 PDF 제안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이 플랜을 이사님께 먼저 보고드려 내부 승인을 받은 뒤, 과업을 회수해오는 절차를 밟고자 한다. 내가 구상한 상반기 과업은 크게 네 가지다.


1) 온보딩 가이드 영상: 비용 '0원'의 신속한 제작

지난달 사내 솔루션 중 하나를 짧게 영상으로 제작해 본 경험이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결과물도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 퀄리티만 유지해도 충분하다. 내 인건비를 제외하면 추가 비용은 '0원'이다. 비용 투입 없이 고객 사용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다.


2) 프레이머(Framer) 웹사이트 개편: 우리만의 색깔을 입히다

몇 달 전, 사내에서 템플릿을 활용해 간단한 랜딩페이지를 직접 제작해 본 적이 있다. 조잡하게 템플릿을 짜집기한거지만, 당시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아 자신감도 붙었다. 사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언젠가 퇴사 후 프레이머로 해외 외주를 받아보겠다는 당찬 포부로 개인적인 밤 시간을 쪼개 공부해 둔 기술이기도 하다.(이때 왕복 4시간이었다..통근시간)

순전히 내 실력은 아니고.. 강의보면서 실습한거다

3) 데이터 대시보드 구축: 화려한 활주로보다 중요한 '조종사'의 존재

솔직히 말해, 이번 솔루션 웹사이트를 개편하며 루커 스튜디오(Looker Studio) 같은 전문 대시보드를 구축할 역량은 내게 없다. 나는 마케터가 아닐뿐더러, 앞으로 그 길을 전문적으로 걸을 계획도 없기에 굳이 낯선 툴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리소스 낭비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비행기 활주로를 멋지게 닦아놔도 정작 비행기를 조종할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과 같은 이치다.

나조차 다루기 버거운 툴을 억지로 가져와서 '아무도 조종할 수 없는 최신형 전투기' 같은 대시보드를 만드는 건 회사에도 나에게도 아무런 실익이 없다. 그래서 나는 툴의 명성보다는 당장의 '작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웹사이트 제작 툴인 프레이머(Framer) 내부 기능을 활용하거나, 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도구를 써서 우리 팀원 누구나 즉시 숫자를 읽을 수 있는 확인 창구를 만들 계획이다. 화려한 활주로를 만드는 법을 공부할 시간에, 당장 목적지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실용적인 길을 하나라도 더 찾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직한 성과라고 믿는다.


4) 블로그 콘텐츠(SEO/GEO): "이봐, 해봤어?"의 정신으로

사실 이 영역은 대행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전문 분야였다. 반면 나는 이런 목적형 글쓰기가 아예 처음이라, 이번 과업 중 가장 높은 산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것을 업(業)으로 삼아 매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디테일을 내가 당장 따라잡을 수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검색 엔진 최적화(SEO)나 생성형 AI 검색 최적화(GEO)라는 생소한 개념들을 실전에 곧바로 녹여낼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우리 회사에서 이 핸들을 잡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주말 동안 Udemy 강의와 해외 유튜버들의 최신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한 뒤, 바로 실전에 투입해 볼 생각이다. 정주영 회장은 생전에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수많은 불가능을 돌파했다. 나 역시 일단 부딪혀 보려 한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안 되면 될 때까지 수정하며 나만의 길을 찾아내면 그만이다.


"짱구 돌리지 말고 걍 하렴 ^^"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에필로그: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법


사실 주말과 평일 밤까지 반납하며 공부하고 일하고 싶은 직장인은 드물 것이다. 나 역시 이 상황이 두렵기보다는 귀찮고 지치는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일은 일일 뿐... 나와 동일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국 이 프로젝트의 최종 책임자는 나다.


떠나가는 대행사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긴 마찰이었을 뿐이다. 내부 기획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해결책만 바랐던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싼 수업료였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앞으로도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 행복한 마케팅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노션,슬랙 등 최신협업툴이 잘 맞는 회사들도 많고 그저 우리랑 안맞았던 것 뿐이다


비즈니스에서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지만, 성과로 증명하는 마무리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내가 맡은 일은 내가 매듭짓는다'는 이 투박한 책임감이 결국 나의 가장 선명한 실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자, 주말에도 일이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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