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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선 Sep 21. 2024

03화 : 운명이 부른 우연 (1/2)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따돌림은 작은 존의 가슴 깊이에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 흉이 되었다. 흉 위에 또다시 생긴 상처는 어느새 나무껍질처럼 단단해져 버렸다. 그 흉살은 상처 남은 가슴뿐만 아니라 그를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그는 더 이상 눈을 크게 뜨려 노력하지 않았고, 눈을 꼬집지도 않았다. 톰과 세라는 일찍이부터 존이 올바른 방법으로 스스로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주었고, 그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사춘기 조나단에게 바쁨은 현실의 아픔을 망각할 유일한 통로였다.


“Let’s take a little break, chef.”

(셰프님, 잠깐 쉬었다 가시죠.)


“Sounds great. Whoo I got nervous so bad”

(좋아요. 너무 긴장해서 혼났네요.)


연말이다 보니 12월 호 잡지뿐만 아니라 처리해해야 하는 일이 많아 팀 내 직원들을 다 데려오기에는 너무 인력 낭비였다. 카메라 잡아줄 사람 정도가 필요했고 당시 뉴욕 대학교 학생이자 내 팀에서 인턴쉽을 하던 한국인 유학생 주원 씨를 데려왔었다.


“어때, 할만한가? 스트레칭도 좀 하고 물도 좀 마셔.”


“팀장님, 저 이번 인터뷰 일정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더 고맙지 외부 일정 따라다니는 것도 일인데.”


“저는 정말 제 인생이 제일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저 정말 유학 생활 하면서 성공하겠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몸도 마음도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저기 셰프님 인터뷰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그냥 제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 힘든 인생이 어디 있겠나. 주원 씨도 잘하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까지의 인터뷰를 통해 느낀 건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눈빛이 나이에 비해 성숙해. 대단하고 기특하고… 사람이 참 강해.”


“그러게요. 진짜 보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다시 촬영 시작할까요?


“Chef, you ready? 3,2,1 Action.”


I dropped out of college.
나는 대학을 자퇴했습니다.

고등학생 존은 공부와 돈 말고는 자신이 사회에 나왔을 때 무시받지 않을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고, 당시 뉴욕에서 공대로 가장 유명했던 명문대 입학을 받아 내었다. 대학교라는 곳은 한 동네에서만 줄곳 자란 조나단에게 상상 그 이상이었다. 뉴욕 시티에 위치한 곳은 아니었지만 워낙 유명한 대학이다 보니 미국 전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인 학교였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그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눈이 작고, 코가 낮고, 피부색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상처받던 어린 시절, 그 지독한 놀림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와 일만으로 스스로를 가둬버린 그의 청소년기는 우물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보기 시작한 청년을 방황하게 했다.


대학생이 되고 첫여름 방학, 존은 휴가 대신 다음 학기 학비에 보탤 돈을 벌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뉴욕은 예나 지금이나 초과 수당 퍼센트가 꽤 쏠쏠하기에 3개월이라도 마음만 먹고 열심히 일하면 학비의 절반 조금 안 되는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제 막 대학교 1학년 봄 학기를 끝낸 존에게 전공과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렇게 경력을 따로 요구하지 않는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에 다니던 학교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도네시안 고급 레스토랑의 직원 채용 공고을 보게 되고 조나단은 주저 없이 지원했다.



“어 반갑네. 앉게.”


존이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를 맞이했던 사람은 꽤나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동양인 할아버지셨다. 빗자루가 손에 있는 것을 보니 청소하시는 분 같았고 얼떨결에 존은 그 할아버지와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자네 소개 좀 해보게.”


“제 이름은 조나단이고, 대학에서 컴퓨터 나노 사이언스 공부를 하고 있어요. 여름 방학 동안 짧게 일하고 싶은데, 제가 이제 막 1학년 1학기를 끝내서 제 공부 수준으로는 마땅히 일 할 곳이….”


“일 할 곳이 없어서 지원했다… 설거지 말고 다른 일거리는 줄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하겠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게 자네 스케줄이네.”


일주일은 순식간이었다. 징그럽기만 하던 방학 전 마지막 과제와 기말고사가 끝나자 면접 날짜로부터 정확히 일주일이 딱 지났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면접 때 만났던 노인이 레스토랑 바닥을 쓸고 있었다.


“왔는가? 옷부터 갈아입고 우리 레스토랑, 그리고 양 옆 가게들 입구 근처에도 달라붙은 껌부터 좀 떼어주게나. 담배꽁초도 주워 버리게”


조나단은 길바닥에 온갖 세균과 함께 딱딱하게 굳어 검게 변한 껌부터 떼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입구부터 주변 가게까지 길바닥에 붙어 있는 껌이란 껌은 다 떼어냈다. 담배꽁초도 죄다 찾아 버렸다. 그리고는 빗자루로 있는 힘을 다해 레스토랑 입구부터 주변까지 여러 번을 쓸었고 양동이에 물을 한 바가지 받아 물청소까지 깨끗하게 했다.


“저… 밖에 청소 다 했어요.”


노인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자네는 레스토랑 밖을 청소하는데만 두 시간 반을 쓴 거 알고 있나? 나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쓰는 사람만을 필요로 해. 일단 오늘은 집에 가고 내일 아침에 보세”


초과 수당은 무슨, 세 시간도 안 돼서 끝나버린 존은 그저 억울했다. 알 리가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왜 본인이 일하는 레스토랑 주변 레스토랑들의 거리까지 청소하면서 시간을 쪼개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게 다음날, 그다음 날도 존은 노인에게 첫날과 똑같은 말과 함께 세 시간도 안 돼서 쫓겨났다.


‘그만둘까…’


기숙사로 가는 길 존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만 100번을 넘게 던졌다. 하루 3시간 업무로 번 돈으로는 기숙사비조차도 낼 수 없던 상황이었다.


다음날 그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또다시 세 시간 만에 집에 가야 한다면 그만둬버리겠다는 작정이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존은 어제와 다른 것이라곤 하나 없는 청소 도구를 집어 들었다. 껌, 담배꽁초, 쓰레기, 빗자루질 그리고 물청소. 존은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청소하나 못해 일을 그만둔다는 이유가 너무나 형편없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어제 보다 30분 빨리 도착한 그는 어제보다 두 배 더 열심히 했다.


“저 다 했어요. 오늘도 집에 가야 하나요?”


노인은 그날도 어김없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자네 시간 봤나?”


“아니요.”


“지금 몇 신줄 아는가?”


“저 핸드폰을 사물함에 넣어둬서 시간 확인을...”


“10시 45분이네.”


“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게.”




아르바이트 시작한 지 4일째가 되던 날, 존은 처음으로 설거지 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정말인지 본인이 자랑스러워 어이가 없었다.


“Yo, what’s up man? Melvin, you?”

(“안녕, 내 이름은 멜빈이야. 넌?”)


도미니칸 공화국에서 온 키가 작고 마른 40대 아저씨였다.


“조나단이에요.”


“청소 빨리 끝내라고 저 노인네가 난리도 아니었지?”


“아니에요.”


떨떠름한 웃음과 함께 존은 대답했다.


“저 노인네는 여기 레스토랑 오너 셰프야. 이름이 요노. 지독한데 사람 하나는 참 좋아. 내가 저 양반 밑에서 일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 지겨워 지겨워.”


멜빈은 마요네즈가 듬뿍 들어간 정체 모를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더니 다시 말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사람들을 비웃지. 왜냐? 못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남이 먹고 버린 거 청소하는 하찮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니깐.”


“네? 아니에요.”


“그거 아나? 맞는 말이야! 나 겁나 못 배웠어. 중졸이야 중졸.”


멜빈은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배를 잡고 깔깔댔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무시해도 매우 당당해. 왠 줄 아나? “


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멜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청소와 설거지는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하거든. 레스토랑을 건물로 따지면 나는 그 건물의 철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나 해야 할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비유로 존은 당황해 눈이 커졌다.


“잘 생각해 보게. 요노 저 노인네가 정말 맛있는 요리를 한 거야. VIP손님을 위해서 말이지. 그런데 완성된 요리를 올릴 접시를 꺼내 들었는데 금이 가있는 거야. 그래서 다른 접시를 꺼내 들었는데 기름기가 덜 닦여 있는 거지. 또다시 다른 접시를 꺼내 들고 또 꺼내 들고 VIP손님을 위한 요리라 완벽하게 깨끗하고 흠 없는 접시만을 찾아 꺼내 들다 보니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거야.”


멜빈은 금이 가고 기름이 잔뜩 낀 접시들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더니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흠잡을 것 없는 예쁜 접시를 찾아 그 위에 툭 올리며 말했다.


“그 사이에 요리는 차가워졌고 수분이 다 날아가서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우리가 봐도 형편없게 말라버린 거지. 그렇게 VIP를 위한 접시를 찾다가 다른 손님들 주문이 싹 다 밀려서 결국엔 그날 장사는 저기 저 골로 가는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남은 샌드위치를 한입에 욱여넣고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청소도 마찬가지야. 너 왜 다른 레스토랑 입구까지 가서 껌 떼 주고 청소해 주고 이해 절대 못했겠지. 사실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아닌가?”


“네. 이해가 안 되긴 했어요.”


“더러우면 오기 싫거든. 돈 쓰러 와서까지 더러운 꼴 보면 성질나는 거지. 생각해 봐. 네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명품으로 차려입고 눈 귀 입 호강 하러 우리 레스토랑에 왔어. 차를 타고 왔던 걸어서 왔던 어찌 됐건 우리 레스토랑에 입구로 들어가려면 걸어야 해. 그런데 주변이 더러워봐. 주변에 장사 안 되는 음식점에 길거리까지.”


“밥 맛 떨어질 것 같긴 해요.”


“맞아. 또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생각하게 되어있어. 이 주변 식당들은 다 더럽다.”


존은 멜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릴 적 엄마와 피자를 먹으러 갔던 그날이 생각났다. 세라는 가게 입구를 포함한 주변이 너무 지저분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며 온갖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던 날이었다. 그리고는 집에 손님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들에게 절대 가지 말아야 할 피자집이라며 단정 지었었다. 존과 세라는 그날 그 피자집에 들어가 보지도, 그 집 피자를 사 먹지도 않았다. 사실은 멜빈이 말한 ‘단 한 명’이란 숫자는 절대 남 일만도 아니고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10년 전 저 노인네가 이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만 해도 이 길거리는 정말 한심했어. 쥐도 많았고. 10년 전부터 저양반은 나와 다른 설거지 청소 팀원들과 함께 매일 아침 우리 레스토랑이 있는 길거리 전체를 청소했어. 매일 아침 껌을 떼고, 매일 아침 쓰레기를 줍고, 쓸고 닦았지.”


“네? 셰프님도 같이요?”


“그렇다니까. 한 달 정도 지났나. 우리 레스토랑과 같은 길목에 있는 식당 직원들이 청소를 하는 거야. 일주일에 한두 번 마감 후에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사람들이 매일 나와 청소를 하더라니깐? 쥐들이 먹을 게 없어서 도망갔는지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


살면서 그가 설거지와 청소하는 직업이 레스토랑 운영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존은 그저 설거지 10년 차 멜빈이 신기했다.


설거지라는 일이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만은 않았다. 10분에 한 번씩 꼭 모든 스테이션을 돌아다니며 설거지 거리를 가져와 손수 1차 설거지를 하고 기계에 넣어 최종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된 깨끗한 그릇은 물기를 잘 닦은 후 곧바로 채워 놓아야 했다. 각 스테이션 별로 사용하는 접시들은 종류뿐만 아니라 유지해야 하는 온도가 각각 달랐다. 가드망제 스테이션은 익히지 않은 날 생선과 소고기 그리고 야채 등 차가운 재료를 주로 사용하기에 접시가 따뜻하면 안 됐고, 페스 스테이션에서는 갓 구워 나온 스테이크나 생선을 플레이팅 해야 했기 때문에 접시가 차가우면 안 됐다. 멜빈의 말이 맞았다. 레스토랑에서 설거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존은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30분 일찍 출근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했지만 새로운 오늘은 지나간 어제 보다 더 열심히 했다. 설거지 업무를 하면서 날카로운 주방도구들에 베이고, 뜨거운 펜에 데고, 어떤 날엔 셰프들에게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을 욕도 먹었지만 그 옆에는 항상 멜빈이 있었다. 멜빈은 항상 존의 편이었다. 괜찮아. 잘했어. 조심해야지. 존이 기가 죽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항상 옆에서 편이 되어주었다.

No one can hurt you, bro.
(그 누구도 너를 다치게 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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