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문자를 받자마자 나는 상사에게 12월호 설렙 잡지 표지 모델의 주인공을 찾은 것 같다고, 빠른 시일 내로 기획안 제출 하겠다는 메일을 먼저 보냈다. 그리고 조나단에게 답장을 했다.
안녕하세요 셰프님,
연락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N사 셀럽 잡지 매니저 에디터 박민우입니다.
저희가 현재 12월 호 셀럽 잡지 표지 모델을 스카우트 중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셰프님의 스토리를 저희 잡지 12월 호 표지 모델로써 담아드리고 싶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너무나 운이 좋게도 조나단으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고 그는 나의 제안에 응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후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당시 일했던 월간 셀럽 잡지의 경우 출간 이래로 특히나 연예인이나 유명 인플루언서 그리고 운동선수 말고는 표지 모델로 쓰지 않아 왔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컨펌을 해줄 거란 확신은 없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Are you ready?”
(셰프님 준비되셨나요?)
“Yes I am”
(네, 준비 됐습니다)
“3,2,1, Action.”
(3,2,1, 액션.)
Hello, I'm Jonathan Culbert.
My Korean name is Min Ho Jeong,
and
I'm a stranger.
안녕하세요.
나는 조나단 컬버트이고, 한국어 이름은 민호 정입니다.
나는 이방인입니다.
“존, 학교 갈 준비 다 했니?.”
세라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학교 가방을 멘 존은 어느 때처럼 거울 앞에 섰다. 눈에 바짝 힘을 주고 크게 떠보기도 하고 눈두덩이를 꼬집어도 봤다.
“짜증 나....”
뉴욕양키스 캡을 푹 눌러 얼굴을 가린 존은 세라에게 말했다.
“엄마, 저 학교 가기 싫어요....”
세라는 그저 다그칠 뿐이었고 존은 그런 세라를 보며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신발을 신었다.
어떤 나라의 어느 초등학교를 가도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학생들을 한 명씩 세워 누구를 위해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은 전 세계가 만든 규칙인 것일까. 존의 담임 선생님 레베카도 아이들에게 친해질 시간을 갖자는 이유와 함께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시키는 별 다름없는 뻔한 선생 중 한 명이었다. 20명 남짓 안 되는 작은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소개를 끝낼 때마다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안녕, 나는 조나단 컬버트라고 해. 반가워….”
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 대신 정적이 흘렀다.
“야, 너는 눈이 왜 그렇게 작고 피부색은 왜 또 노란 거냐?”
롭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너 진짜 이름이 조나단 컬버트 맞아? 너처럼 생긴 사람들 성씨 보면 다 칭챙총이던데.”
당시 존의 담임 선생님이셨던 레베카는 반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존을 향한 그들의 놀림은 그날로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차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16살 여름, 누군가 유성펜으로 존의 교과서뿐만 아니라 축구화, 그리고 운동복에 까지 협박 문자를 써 놓은 사건이 있었다.
-너네 나라에 가서 죽어버려-
선생님들과 부모님에게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존, 별거 아니잖아."
"무시해."
"왜 그렇게까지 예민한 거니?"
같은 국적, 같은 동네, 같은 언어, 같은 문화 속에서 다른 피부색, 다른 눈동자의 색, 다른 머리카락의 색은 그의 존재 자체를 틀림으로 가스라이팅 했다. 그의 상처에 새 살이 차오를 수 있도록 소독해 주고 연고를 발라줄 어른, 싸우는 방법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어른은 그의 옆에 없었다. 도심 밖의 뉴욕이란 한 없이 작은 세상은 작고 웃음 맑았던 어린아이를 가여운 남자로 조련했다. 숨었고 참아야 했다.
존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동네는 오래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곳이다. 맨해튼에서 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은 더 된 옛날이기도 했고, 또 뉴욕 도심 지역이 아니다 보니 당시 그 동네에서 존은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존이 6살이 되던 해, 톰은 존에게 6년 동안 필름 카메라로 담은 아들의 추억을 인화해 앨범을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존이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세라에게 처음으로 안긴 사진부터 뒤집기 하던 시절, 기어 다니다 커피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혀 울던 시절, 그리고 존의 유년시절을 쭉 함께 한 리트리버 에이미와의 추억까지 사랑스러운 아들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사진첩이었다.
“아빠, 저는 왜 엄마랑 아빠랑 달라요?”
아이의 질문에는 그 어떤 악의도 없었다. 부정적인 감정도 없었다. 순수한 6살 존의 질문에 톰은 잠시 머뭇거렸다. 예상보다 더 빨리 아이에게 고백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고, 부부는 존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아이의 질문에 찾아온 톰과 세라의 정적은 차갑지 않았다. 따뜻했다. 톰은 목을 한번 가다듬더니 존을 차고로 데려갔다. 그들은 차고의 문을 활짝 열고 밤하늘을 향해 바닥에 누웠다. 선선하게 불어 감싸던 그날의 가을바람은 존을 아빠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게 해 주었고 따뜻했던 톰의 가슴 깊은 곳에는 조금의 긴장감을 주었다.
“존, 저기 달 보이지? 저 달 안에 델루나라는 호텔이 있어. 그 호텔은 아기천사들이 지구로 내려와 가족이 되기 전에 머무는 곳이란다. 아기천사들은 호텔에서 지내며 엄마 아빠를 선택하고, 때가 되면 지구로 내려와 가족을 만나. 그런데 아주 가끔 존 너처럼 개구쟁이인 아기천사들이 지구로 오다 실수로 길을 잃어버려 다른 가족의 품에 도착하기도 해. 가족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아기천사가 다른 곳에 도착하더라도 그 보이지 않는 그 끈 때문에 돌고 돌아 꼭 가족의 연으로 만나게 되어있단다. 이 세상 모든 엄마와 아빠는 델루나에서 그들을 선택해 줬던 아기천사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어. 우리 존이 개구쟁이라 엄마 아빠를 만나는데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엄마 아빠는 단번에 너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거야. 나와 세라를 엄마 아빠로 선택해 줬던 그 예쁜 아기천사였다는 것을.”
“제가 아기천사일 때 실수로 길을 잃어버려 만났던 엄마 아빠는 나를 버린 건가요?”
“아니, 그들은 조나단 네가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동안 매일매일 사랑해 줬는 걸. 이건 네가 조금 더 크면 엄마가 이야기해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