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입니다.”
“네,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저.. 미국에서 온 우편이라 개인 서명이 필요해서요.”
“미국이요? 잠시만요.”
뉴욕에서 온 작은 우편물이었다.
보내는 이 : Jonathan Culbert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날,
믿음으로 함께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저희 약속의 자리에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귀한 걸음으로 저희의 앞날을
함께 축복해 주시면
그 마음 평생 잊지 않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예쁘게 잘 살겠습니다.
5년 전 내가 뉴욕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만났던 셰프 존은 당시 맨해튼 요식업계의 떠오르는 신예였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고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레드오션 그 이상으로 치열했던 뉴욕 시티의 레스토랑 경쟁은 당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레스토랑들을 적자와 실패로 몰아세웠다. 그런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뿐만 아니라 경영적인 부분까지 상승선만을 꾸준히 그리던 셰프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조나단이다. 내가 그를 취재했던 당시 존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바빴던 레스토랑 'BON'의 총괄 셰프였고,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JC food story 그룹의 창업자이다.
여느 해와 다르게 두꺼운 외투를 빨리 꺼냈던 10월이었다. 나는 당시 12월 호 셀럽 잡지의 메인 표지에 실을 만한 인물을 찾고 있었다. 연중 마지막 달 잡지인 만큼 유명한 연예인이나 인플루엔서 보다 스토리가 있는 셀럽을 표지 모델로 계약해 달라는 회사의 엄격한 이메일에 나뿐만 아니라 에디터 팀 내 모두가 시뻘건 눈으로 일에 치여 살던 기억이 5년이 지난 오늘에서도 생생하다.
“박 팀장님, 저희 11월 호 상여금으로 어디 비싼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 가는 것 어떻습니까?”
“So good idea! 팀장님 12월 호 발행 끝내면 한국으로 돌아가시잖아요. 저희 이번엔 좀 근사한데 가요!”
“I have a friend who is working at ‘BON’ as a manager. It is around wall st”
(제 친구가 ‘본’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해요. 월가 근처에 있어요.)
“그래 예약해 봐. 이번주 금요일 퇴근하고 8시 정도면 적당할 것 같지?”
“Absolutely! 무조건 좋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있는 11월, 그 해 회사에서는 특정하게 원했던 그 달의 표지 모델이 있었다. 당시 북미 전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말 만으로는 그녀의 인기를 실감하기 부족할 정도로 그녀는 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했던 톱스타였다. 다섯 번이라는 거절의 집요함 끝에 우린 그녀의 소속사와 계약을 겨우 따낼 수 있었다. 팀 내 모두가 기대했던 대로 회사에서는 다른 계약건들과는 다르게 꽤나 큰 상여금을 주었다.
주로 우리 팀은 상여금을 회식비로 쓰곤 했었는데 그때 받았던 액수는 평소 받던 금액의 3배 정도가 되었던지라 팀원들에게 머릿수로 나눠 줘야 하는지 회식비로 써야 하는지 혼자 고민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고맙게도 직원들이 먼저 아이디어를 제시해 준 데다 시니어 에디터 로라의 지인이 당시 맨해튼에서 예약조차 어려울 정도로 유명했던 레스토랑 ‘BON’의 매니저라 예약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금요일만을 바라보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 보다 더 파인 다이닝에 크게 감동을 받지 않는 편의 사람이었다. 당시 뉴욕 시티의 흔한 요리사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를 껴 부푼 꿈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했고 파인 다이닝이라 자칭했다. 거리마다 로컬 식당들은 하나둘씩 사라졌고 그 길목에 어울리지 않는 레스토랑들이 자리 메꿈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픈한 지 1년도 안된 절반 이상의 다이닝들이 문을 닫았다. 궁금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곳은 셰프의 요리와 레스토랑 경영이 각자 따로 놀다 망하지 않고 꼿꼿하게 하나가 되어 명성을 지키는지.
“Welcome, such a pleasure to have you guys with us. Please follow me!”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저녁식사를 저희 ‘본'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우리는 호스트의 안내로 자리에 앉았고 테이스팅 메뉴와 함께 곁들 와인 두병을 주문했다.
“Table 1, Hamachi, eel, and wagyu medium rare. Table 12, tree nuts allergy, beef tartare, salmon well done, and wagyu medium rare”
“Oui chef!”
("테이블1, 하마치, 장어, 와규 미디윰 레어. 테이블 12, 견과류 알러지, 비프 타르타르, 연어 웰던, 와규 미디윰 레어."
"네, 솊!")
오픈 키친 레스토랑이다 보니 주방이 훤히 다 보였다. 모두가 총괄 셰프의 지휘에 맞춰 대답하고 움직였다. 난 단번에 누가 총괄 셰프인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레스토랑 ‘BON’의 총괄 셰프님 이름을 ‘Jonathan Culbert’로 알고 왔는데, 내 두 눈으로 본 총괄 셰프는 동양인이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절반 이상의 확률로 한국인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가 꼭 한국인일 것만 같았다.
“Who is this restaurant’s executive chef?”
(누가 총괄셰프인가요?)
“That Asian man is the executive chef of ‘BON’.”
(저기 동양인 남자분이 저희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님입니다.)
“His name is Jonathan Culbert?”
(혹시 저분 이름이 조나단 컬버트인가요?)
“Yes, sir.”
(네 맞습니다.)
충격적이었다. 성씨도 컬버트이고, 다국적인이 사는 뉴욕 시티이다 보니 그가 한국인이 아닐 확률이 훨씬 컸지만 나도 모르게 그가 한국인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요리사들 중에는 동양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 그가 궁금했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저 이유 없는 끌림이 자꾸만 그를 쳐다보게 했다. 정말 오랜만에 파인 다이닝에서의 식사가 설레었다.
“Hi guys, how’s everything?”
(식사는 어떠세요?)
“Oh my god! Yoon! How are you?”
(어머, 지윤! 잘 지냈어?)
“Great! Good to see you again. Thanks for coming with your team.”
(당연하지! 이렇게 봐서 좋다. 오늘 너네 회사 팀이랑 식사하러 와줘서 너무 고마워.)
“This is my manager Mr.Park! And Mr Park, this is my friend Ji yoon”
(아 지윤아, 이분이 박팀장님이셔! 그리고 팀장님, 얘가 제 친구 지윤이에요.)
‘BON’에서 만난 지윤 씨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 NYU에서 호텔경영 전공으로 졸업하고 이제 막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 일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이었다. 그녀가 갖고 있던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열정 가득하고 똘망똘망했던 눈빛과 자세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뭘 해도 성공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여서였을까.
“혹시 총괄 셰프님이 한국인 맞나요?”
“어떻게 딱 알아보셨네요! 한국인이세요. 그런데 한국말은 할 줄 모르시고요.”
“저 혹시 제 명함 좀 전해주실 수 있나요? 기회가 되면 꼭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당연하죠. 전해드릴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BON’에서의 식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모든 메뉴가 예술 작품 같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 까. 아름다웠고 향기로웠고 맛있었다. 어느 하나 과하다는 느낌 없이 모든 식재료들이 조화로웠고 재미있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감각 뿐 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생길 수 있음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BON’에서 식사한 날로부터 1주일 정도 지났었던 어느 날 문자 한 통을 받았다.
Hi, Mr. Park.
This is Jon.
I got your contact from Yoon. Everything all right?
Please let me know if you have any questions for me!
Thank you.
(안녕하세요 박팀장님, 저 존입니다. 지윤에게 박팀장님의 연락처를 받았어요.
식사는 어떠셨나요? 궁금하신 게 있다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