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가면 날마다 폭식할 예정
나 체고. 먹으려고 살지만 편식과 잔반을 달고 사는, 지옥 가면 이승에서 남긴 음식으로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사람이다.
편식.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심하면 음식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혀가 뱉는다. 저걸(가지) 먹겠다는 의지라도 있어야 먹을 텐데 그건 남(보통 어머니)의 의지여서 나의 깊은 의지(저거 너무 싫음)를 꺾지 못한다. 예전엔 강요가 무서워서라도 먹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알지 않는가. 먹기 싫은 몇몇 음식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 편식이야. 어차피 나 건강하려고 여러 것들 먹는 거니까. 근데 문제는 잔반이다. 정확히는 이 잔반에 무감각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어릴 때부터 밥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입에 당기는 것이 없는데 밥그릇에 쌓인 밥을 해치워야 했다. 맛있는 반찬이 나와도 그것만으로 배를 채울 순 없고 꼭 밥을 없애야 했다. 그게 싫어서 난 지금도 한식을 싫어한다. 점점 눈치껏 수저를 밥상에 내려놨고, 밥솥에 밥 버릴 거 생각해서 건지를 없애며 먹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고3,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장 이기적이고자 했던 그 시절에 난 잔반에 대한 죄책감을 깡그리 버렸다. 죄책감과 버리는 음식의 양이 날마다 상당하였다. 지나가다 내 잔반을 본 선생님이 한 소리 했을 정도였다. 나도 알았다. 이게 심하다는 걸. 다만 신경 쓰기 싫었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 것이 많은데 살은 찌고, 음식 남는 걸 신경 쓰는 것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질책 어린 시선을 신경 쓰는 것도 싫어서 나만 생각하기로 한 결과였다. 다 깎여서 동그래진 양심만 남았지만 뭐, 속은 확실히 편했다. 그리고 양이 줄어서 먹고자 하는 것도 많이 못 먹는데(치킨을 3조각 밖에 못 먹었다. 있을 수 없는 일.) 그깟 눈총이 대수일까. 어쨌든 그 시절 이유로 난 여전히 음식을 남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다만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최대한의 노력을 해 왔다. 내가 양을 정할 수 있을 때는 정말로 먹을 수 있을 만큼 덜어 먹는다. 남으면 잘 보관했다가 다음 끼니에 먹는다. 입에 맞기만 하면 식은 것도 잘 먹고 하루 종일 그것만 먹을 수도 있다.
남들이 관여할 때가 문제다. 급식이나 식당, 다른 이의 집에서 먹는 밥은 대부분 내 양보다 넘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급식은 잘 먹을 일이 없으니까 너무 다행이지만 식당에선 남길 일이 많다. 손님의 입장으로 먹는 식사는 그래도 잘 먹었다는 의미에서 밥을 다 비워야 예의인 한국에 살고 있으니 최대한 잘 먹는다.
살다가 보면 지구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아무래도 자연을 이용하여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 입장이니 말이다. 사실 잔반에 불편해하는 것도 그런 환경을 생각하는 맥락에 있는 것들 중 사소한 하나이다. 지구에 발 붙이며 살고 있는 생물로서 환경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다른 동물도 먹이를 남기는 것과 사람이 음식을 남기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는 동등하나 영향력이 다르다. 그래서 환경, 윤리 등을 합쳐서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먹먹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뭘 몰라 이러는 것이겠지.' 하며 아직 배울 게 많은 사람은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아마 지구와의 화해는 평생 걸려도 못 하겠지만 나의 선택들이 차악을 향한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