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원 Mar 04. 2024

코브라 그래프를 아세요?

글쓰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지만 나를 먹여 살려 주는 일은 데이터 분석이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도 일단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데이터를 만질 때 사용하는 머리와 글을 쓸 때 작동하는 머리가 약간 다르다고 느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이 늘 아쉽다.  


그런데 최근에 데이터를 소재로 하는 한 편의 글감이 생각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데이터라기보다는 그래프다. 그래프를 만들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니까 그게 그 말이긴 하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분석 작업의 종착점은 분석 결과를 압축한 그래프를 만드는 일이다. 여러 가지 데이터를 다루다 보니 그리는 그래프의 모양도 다양하다. 데이터라는 것은 이 세상의 흔적이다.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있다면 그것들이 현재를 거쳐간 뒤 부스러기처럼 흔적을 남긴다. 일상적인 예를 들자면 프로야구 선수의 타율 기록은 그 선수가 섰던 매 타석의 흔적이고 카드 청구서는 우리가 어떻게 한 달을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다. 


그래프의 모양은 다양하지만 그려보면 결국 몇 가지 큰 유형으로 분류된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 것 같아도 16가지 MBTI 유형으로 묶을 수 있듯이 데이터도 결국 이 세상을 반영하는 그림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담고 있고 결국은 몇 가지 유형으로 수렴된다. 많고 많은 그래프 중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모양의 그래프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나는 이런 형태를 "코브라" 그래프라고 부른다. 왼쪽은 꼬리와 몸통이고 오른쪽은 기세 좋게 머리를 치켜든 코브라 뱀 같은 모양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많은 사건과 현상들이 코브라 그래프 형태를 띤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지식과 데이터, 부(富)의 증가 형태가 그렇고 테슬라와 비트코인 가격 상승 패턴이 그랬고, 대형 유투버 구독자 수나 블로거 방문자 수가 그렇다. 모든 것이 바닥에서 한참을 기다가 어느새 순식간에 불꽃을 터트린다. 냄비에 물을 붓고 끓여 봐도 그렇다. 본격적으로 기포가 생기고 수증기를 내기 전에는 한 참 동안 고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그래프는 대략 이렇다. 기울기는 차이가 있어도 정비례하는 그래프를 처음 만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은연중에 이런 모습이 정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모양이 아니면 어딘가 잘못됐거나 아니면 예외적이거나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면 깨닫는다. 거의 모든 현상과 결과들의 진행 패턴은 코브라 그래프다.     

   

일을 하다가 코브라를 그래프를 마주칠 테면 현재 나의 위치는 그래프의 꼬리와 몸통 어디쯤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인생 전체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진행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지금의 위치를 생각해 본다. 

그런 행동이 언젠가 해 뜰 날을 기다리며 지금의 어려움을 견딘다는 의미는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나의 행동과 생각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끝이 정해진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는 지각을 얻기 위함이다. 생각해 보라. 창문 없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있다면 얼마나 지겹고 무기력해질까?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면 코브라 그래프를 생각해 보자.    



작가의 이전글 디즈니랜드에 놀러 온 사람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