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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Feb 23. 2024

디즈니랜드에 놀러 온 사람처럼

직장 생활 초반에 몇 년간 테마파크와 관련된 일을 했다. 에버랜드를 포함해 한국의 거의 모든 테마파크를 둘러보았고, 미국과 일본의 유명한 테마파크도 수차례 방문했다. 처음 일을 하면서 궁금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화끈한 놀이기구 없이 밋밋하기만 한 디즈니랜드가 여타 세계 각지의 테파마크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을까?... 나는 이 직업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인생에 관한 작은 교훈을 얻었다.  




사람들은 평생 모순적인 감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사랑에 빠지면 아주 높은 확률로 무척 괴로워질 수 있지만(평탄한 연애는 없다), 그래도 사랑하고 싶어 하거나, 무서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벌어진 틈을 통해 공포 영화를 즐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전하고 평온함을 추구하지만 끊임없이 위험한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일은 이런 모순적인 감정 사이에 놓이는 일이다. 목표나 꿈을 달성하는 과정은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험난한 여정이다. 성공은 나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성공이란 유한한 것이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를 두고 격렬한 다툼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나의 성공을 폄훼하고 망가트리려고 하거나, 나의 노력을 방해한다. 단순한 방해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나를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성공을 위해 앞으로 더 빠르고 세게 나아갈수록 이에 저항하는 맞바람은 더 강해진다. 세상사가 대개 그렇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거나 선천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으려고 한다. 얌전히 그냥 있기만 하면 아무도 나를 해코지하지 않고, 덕분에 나는 안전함과 평화로움을 얻는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점차 패배감으로 변해 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세상은 변하는데 나는 그대로 있다는 의미고 그건 정지 상태가 아니라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일조차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으면 뭔가 행동할 수 있을까? 대부분 그렇지 않다. 패배감이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지금에야 말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만 곧 불어 닥치는 맞바람에 화들짝 놀라 이내 포기해 버린다. 두려움과 불안함이란 혼자서 마음을 고쳐 먹는다고 쉽게 물러서는 놈이 아니다.  


디즈니랜드는 왜 인기가 많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디즈니랜드는 세상의 복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엔 삶에서 겪는 위험과 공포가 있고 쾌락과 행복도 있다. 사람들은 귀신의 집 입구에서, 아니면 롤러코스트 대기 줄 앞에서 짜릿한 흥분과 공포를 느끼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 위험에 몸을 맡긴다. 왜냐하면 디즈니랜드에서 일어날 위험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나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길 일이 없고, 위험 아닌 가상의 위험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안전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테마파크는 유치하고 싱거운 놀이일 수 있다. 하지만 디즈니랜드는 그런 사람들조차도 진지하게 가상의 세계에서 위험과 스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모든 물리적, 정서적 환경을 근사하게 구축해 놓았다. 그것이 디즈니랜드의 비결이고 디즈니랜드를 어뮤즈먼트(Amusement) 파크가 아니라 테마(Theme) 파크라고 부르는 이유다.


디즈니랜드로 들어가는 입구는 과장된 원근법을 이용해 현실에서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경험을 선사하도록 설계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세상도 디즈니랜드와 다를 바가 없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대부분 한계치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공포스럽지만 막상 발생하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성공을 위해 내달리다가 누군가와 격렬한 갈등이 생기거나,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사거나, 노력한 결과물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더라도,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와 미래의 가능성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물론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전쟁이 나기도 하고,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저항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항상 나는, 의기소침해 있는 스스로에게도, 두려움에 빠진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디즈니랜드에 놀러 온 사람처럼 해. 아무도 널 해치지 않으니까 기꺼이 위험에 몸을 맡겨봐. 짧은 고통의 순간이 끝나면 넌 적어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있을 거야.


그런데 정말 세상은 그럴까?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평범한 일상은 디즈니랜드와 큰 차이가 없다. 밤이 되면 디즈니랜드는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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