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원 Feb 16. 2024

포기는 기회를 잡기 위한 예비 동작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말은 대략 2000년대에 탄생한 말로 알고 있는데, 그런 단어가 없었다 뿐이지 수학이 어려워서 고민하는 학생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수학은 실제 세계에서는 없지만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논리 체계를 표현하는 도구다. 


예를 들어 원은 수학적으로 중앙의 한 점에서 이르는 거리가 동일한 점의 집합으로 정의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런 형태를 갖는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전은 원을 닮았지만 완벽하게 한 점에서 이르는 거리가 동일하지 않다. 지름이 어딘가에서 단 0.01mm가 틀려도 틀린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수학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사람이 현상을 수학적 개념으로 전환해서 생각하고 논리를 확장시켜 가는 능력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뒤늦게 계발되었다.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발달된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학적 재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타고난 능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족한 능력에 대해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대다수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수학을 예로 들었다. 수학적 재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능력이다. 사람은 스스로 재능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가수가 꿈이라도 노래를 잘 부르는 능력이 없다면 그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듣기에는 좋아도, 그 말을 듣고 미련하게 집착하다 낭비하는 시간을 어느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재능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는 표준적인 삶의 방식과 인생 경로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해서 자신의 재능을 파악하고 발굴할 기회 자체가 적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가 정해 놓거나, 선호하는 재능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를테면 전 국민이 국영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하다가 소수의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 학생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어릴 때부터 깊은 패배감에 젖어든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채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어떤 일이 재미있고 즐거운지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 일을 잘 못하더라도 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질문 자체는 꽤 깊은 고민을 담고 있긴 하지만 과연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이런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가령 노래를 너무 잘하지만 가수가 되기 싫다거나 축구를 너무 잘하지만 축구 선수가 되기 싫은 경우 말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 곧, 잘하는 일이다. 단지 어느 정도 잘하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우리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잘한다고 해서 그 수준이 전 세계 상위 몇 %에 안에 들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우리의 꿈이 너무 거대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만 잘하는 일로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다. 게다가 좋아해서 열심히 계속하다 보면 점점 그 일을 잘하게 되는 선순환 관계에 돌입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다. 


이런 논리를 이어가다 보면 더 이전 단계의 질문이 등장할 수 있다. 즉,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너무 간단하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본능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얼마나 지속하느냐의 문제는 있다.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을 직접 체험해 보면 모든 문제는 풀린다. 내가 그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진짜 좋아한다면 곧 그 일을 잘하게 될 것이고, 전 세계에서 상위 몇 % 안에 들지는 않더라도 어디 가서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 있고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확률은 낮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포기를 하려면 먼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포기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스스로 과감한 판단을 내릴 준비가 되어있다면, 포기는 의지가 박약해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이 아니라 꽤 자주, 다음 기회를 잡기 위한 예비 동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폰을 모르던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