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의 일이다. 7년간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다. 일본 생활을 위해 휴대폰이 필요했고, 뭔가 외국인에게 가장 장벽이 낮아 보였던 소프트뱅크 대리점을 방문했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애플 아이폰을 일본에 먼저 들여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는데, 내가 대리점을 찾았을 때도 점원은 아이폰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지금에야 스마트폰은 물이나 공기 같은 물건이지만 당시만 해도 전면 터치 스크린은 쉽게 깨질 것 같았고 더 많은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앱이라는 것을 설치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자니 뭔가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폰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 고민 없이 기존 방식의 피처폰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입학하고 보니 거의 모든 동료들이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 자연스레 친구들 옆에서 아이폰이 어떤 것인지 보고 있자니 이건 정말 엄청난 기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2년 약정에 매인 몸이라 옆에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 잠깐씩 볼일이 있어 방문하면 의외로 아이폰에 대한 인식이 나빠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이폰은 2009년 11월 25일에야 한국에 도입되었다.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은 아이폰이 한국에 도입되지도 않았고 그래서 사용해 본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아이폰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팽배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아이폰은 한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뿐 아니라 열광적인 지지자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한순간에 여론이 바뀌는 것이 놀라웠고, 도대체 그때의 부정적인 여론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의문이었다. 삼성이 갤럭시를 만들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여론을 움직였다는 음모론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본인도 잘 모르면서 떠도는 여론이나 소문을 믿는 사람이 참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평생 동안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은 이 세상의 정말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그 작고 좁은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아마 나도 그 시절 아이폰을 직접 보고 체험하지 않았다면 잘못된 인식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갤럭시와 경쟁하는 요즘 아이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새로운 폰이었던 당시의 아이폰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폰은 하나의 예일뿐이다. 한국에 있으면 주변 국가들에 대한 수많은 나쁜 뉴스를 접한다. 일본인이 어떻고, 중국인이 어떻고. 마찬가지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상대 국가를 향한 해괴한 소문으로 넘쳐 난다. 한국인이 공자를 한국 사람이라고 우긴다는 소문은 중국에 퍼져 있는 유명한 헛소문이다. 특히 유튜브가 콘텐츠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면서부터 이런 현상은 정말 심각할 수준에 이르렀다.
그때의 경험에서 나는 한 가지 큰 교훈을 얻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어떤 사실, 지식, 물건이 세상 저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지금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큰 미덕이지만, 그 믿음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두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이 언젠가는 나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