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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Jan 27. 2024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거짓말

모두가 아는 것처럼 토끼는 달리기 경주에서 거북이에게 졌다. 토끼는 자신보다 훨씬 느린 거북이를 애초부터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거북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실컷 낮잠을 즐겼을 테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토끼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 거북이로 보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성실했으며, 결국에는 이겼다. 거북이는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토끼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므로, 교훈을 주는 우화라면 긍정적인 인물이 마땅히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말 그런가? 속도가 가장 중요한 달리기 경주에서 느린 속도가 가장 큰 약점인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다니, 그럴듯한 설정일까? 단지 차가운 현실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 희망 회로를 돌리게 해주는 식상한 판타지일 뿐일까? 


사실 토끼는 억울하다. 스토리텔링의 속성상 주인공 거북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조연이 필요했고 그래서 거북이와는 정반대로 기민하고 재빠른 토끼가 이야기에 캐스팅되었을 뿐이다. 국어 대사전을 찾아보면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을 토끼잠이라고 부를 정도인데 토끼가 낮잠을 푹 즐기다가 경주에 졌다니? 부자연스러운 설정이다. 


거북이가 결국에는 토끼를 이겼다는 사건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진짜 교훈을 가리기도 한다. '경쟁'과 '승리'라는 주제가 부각될수록 이 위대한 이야기의 미덕은 심하게 왜곡되고 만다. 요행히 한 번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거의 99.99%의 확률로 거북이는 토끼를 이길 수 없다. 경주를 반복해 봐야 토끼가 이긴다는 실증적 법칙을 굳건하게 만들 뿐이다. 


이야기가 진짜 의도하는 주제를 말하고자 할 때 토끼는 부차적인 존재다. 거북이 자체에 오롯이 초점이 맞추어져야 이야기의 가치가 드러난다.  거북이는 토끼가 자기보다 훨씬 빠르건 말건, 자신을 무시하고 낮잠을 자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쉼 없이 걸어갔을 뿐이다. 거북이의 이런 속성은 빠른 속도만큼이나 축복받은 재능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 등 주변에 부러운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그런 것들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북이와 같은 꾸준함을 타고 난 사람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좋은 결과물은 꾸준함이 만든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서 그렇다.  


인생의 여러 가지 법칙들이 물리적인 법칙과 너무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이 무엇이든(시간, 노력, 돈 등의 모든 것) 일정한 양이 투입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물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무엇을 이뤄 낼 수 있는가는 명백하게 꾸준함에 달려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는 것은 선의의 거짓말이다. 하지만 거북이에게 토끼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 거북이는 남들보다 빠르지 않다는 자괴감을 극복하고 나태해지고 싶은 스스로를 이겼을 뿐이다. 그것이 거북이에게서 본받아야 할 가장 위대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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