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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걱정 많은 아저씨 Mar 04. 2024

꿈속에 꿈이로다

천하인의 영광과 가문을 코무덤으로 바꾸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노니, 오사카의 영광이여 꿈속의 꿈이로다.’


  전국시대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맨손으로 시작해 세상의 중심에 섰던, ‘그 생의 정상'에서 ‘호코지’의 건립을 시작하지만, 이는 동시에 '추락의 시작'이기도 했다.

 노년에 얻은 첫 아들이 몇 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슬픔속에 일으킨 임진왜란은 그 ‘멸망’의 곤두박질을 돌이킬 수 없게 짓누르는 마지막 '발광'이었으리라.

 전국통일 직후부터 대륙진출이라는 야욕으로 소중한 가신들을 전장에 내몰고 지치게 하였으며, 도요토미가 내부의 균열을 자초했다.   

 매제를 할복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여동생을 보내 정략혼인을 맺고, 그토록 아꼈던 어머니까지 인질로 보내 화친한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관동으로 강제 이주시켜 세력 약화를 꾀했지만, 오히려 히데요시 본인이, 장기화 된 전쟁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곤궁해지고, 관동안정의 기회를 갖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천하인'이라는 관직을 받고, '나는 신이 아닐까?..라는 자문까지 하던 히데요시는 정유재란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이 무자비한 침략전쟁의 전리품으로 거의 유일하게 얻어낸 것이 바로, 초라하고도 끔찍한, 그네들조차도 이름을 바꾸어 불렀던, '코무덤'일 것이다.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도요쿠니 신사의 정면에 그 코무덤을 배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조선인들의 원망을 더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음이요, 히데요시 본인에게도 인생 최악의 실패를 사백 년 넘게 마주 보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 후손들이 그들의 영웅을 저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끝없이 질주하던 생의 마지막에 최악의 실패로 삶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뒤늦게 다시 얻은 두 번째 아들, 히데요리를 위해, 승려였던 조카를 환속까지 시켜 책봉해 놓았던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츠구'를 할복시키고 그 일가족까지 몰살시켰건만.. 그렇게 후계자가 된 히데요리는 이제 겨우 5살밖에 안되었다.

 자신의 주군,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했을 때,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고자,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당시 3세밖에 되지 않았던, 산보시(오다 히데노부)를 추대했던 히데요시, 그렇게 권력을 가로챘던 장본인이 5살밖에 안된 후계자를 '음흉한 너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맡겨두고 죽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인과응보도 이런 인과응보가 없다.


 평생 그 총명함과 실력으로 삶을 일궈온 히데요시가, 그와 그 아들에게 들이닥칠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았기 때문일까? 이런 마지막 순간에 그가 남긴 절명시는 이렇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노니, 오사카의 영광이여 꿈속의 꿈이로다.’


 그 삶에 대한 허망함이 잘 표현된 명문이다.


 하지만, 나의 건방진 망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허무하고 공허했던 생을 다 흘려보내고 이제는 깨어나고자 했던 '꿈속의 꿈'이건만, 그 후손들이 신사를 지어 그 곳에 묶어놓고, 인생 최후의 실책, 조선침략의 유일한 전리품, '코무덤'을 사백 년이 넘게 지켜보게 하면서,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만든 것 같다.

 

 히데요시 사후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에 오르고, 조선과의 관계개선을 요청하는 도쿠가와막부와의 대일교섭을 위해, '송운(사명) 대사_유정'이 일본에 파견되어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면한다.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통화를 바란다는 뜻의 말을 하는데, 송운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통화의 여부는 오로지 일본이 성실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자면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1615년 오사카 전투로 인하여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한다. 이 오사카 전투는 현재 그가 신으로 모셔져 있는 도요쿠니 신사와 맞닿아 있는 '호코지의 재건',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후계자인 히데요리가 만든 '호코지 범종의 문구'가 빌미가 되었다.

 호코지는 도요토미 가문 멸망의 원인이요 귀무덤으로 상징되는 임진왜란은 그 자신의 죽음을 초래한 최악의 실패인데, 히데요시의 후손들은 그를 위한다며, 그를 '인생 최악의 실패'와 '가문 멸망의 원인' 사이에 지금까지도 가두어 놓고 있다.

 이게 과연 그가 바라는 것일까?

 히데요시가 마지막으로 남긴 절명시의 구절대로, 그 후손들은 이제 그만 그가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게 놓아 주기를.. 조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성실하지 못한 추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를.. 조선의 후예로서, 그리고 그전에 한 인간으로서 바래본다.





참고자료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하치(원작) & 요코야마 미츠테루(그림) & 이길진(번역), AK커뮤니케이션즈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8B%A4_%ED%9E%88%EB%8D%B0%EB%85%B8%EB%B6%80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8B%A4_%EB%85%B8%EB%B6%80%EB%82%98%EA%B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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