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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Nov 01. 2024

5천마일 밖의 슬픔

「월간에세이」 11월 호에 기고한 글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팔월의 늦더위가 침실 안까지 찾아 들어와 맹위를 떨치던 아침이었다. 세 식구 중에서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이는 온도 변화에 민감한 남편이었다. 비몽사몽 간에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던 나는,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다섯 살 배기 아들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발치에 서 있는 남편을 향해 “몇 시쯤 됐어?” 하고, 잠긴 목으로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그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라고, 슬픔을 읊조리듯 말했다. 그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손에 들린 전화기 속 모바일 부고장에 머물렀다. 아무개씨가 몇 월 며칠 선종하셨다고. 부산 기장 모처에 있는 어느 장례식장 5번 분향소로 오라고. 검은 글씨들이 할머니의 부재를 알렸다. 고인의 아들과 자부, 딸과 사위로 이어지는 여덟 줄의 상주 명단 맨 끄트머리에는 외손자인 남편의 이름 석 자도 있었다.


이런 순간에는 무슨 말을 나눠야 할까. 아니 그보다, 무슨 말인들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잠시 말을 아꼈다. 바깥은 불볕인데 방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서늘하게 들어찼다. 4년 전,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해외살이를 시작할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현실로 벌어진 것이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단 삼일. 발인 전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온 식구가 다 같이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하는 수 없이 남편이 대표로 움직이기로 했다. 모든 일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우선 회사 측에 사정을 알려 양해를 구하고, 당일 항공편을 검색해 마지막 남은 이코노미석 한 자리를 결제하고, 검은색 양복과 구두, 속옷과 양말 몇 켤레로 여행가방을 꾸렸다. 그렇게 채비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정오 무렵이 되었다. 탑승 시간은 오후 6시 50분이었지만, 문제는 공항까지의 거리였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곳은 오스트라바,라는 소도시이고 집에서 프라하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차로 네댓 시간은 달려야 하기에 남편도 나도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서로 애도의 마음을 주고받을 새도 없이 현관에서 황급히 남편을 배웅했고, 그 후로 아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빠의 행방을 몇 번이고 재차 물어왔다.

여느 때처럼 평온할 거라 기대한 주말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날 저녁, 그는 살면서 가장 슬픈 비행을 시작했고, 그를 실은 항공기는 장장 11시간에 걸쳐 5천 마일을 날았다. 그리고 이튿날 늦은 저녁. 마침내 남편은 영정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오래전 그 시절로 돌아가, 할머니 품에 안겨 어리광부리던 어린 손자의 마음으로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그날의 감정을 전하는 남편의 음성은 슬픈데,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어떤 대목에서는 오히려 기쁘게 들리기도 했다. 만약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부채감을 안고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미련을 남기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어서. 도리를 다할 수 있어서. 슬프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그 일이 있고 한동안 내 머릿속에는 죽음에 관한 물음들로 가득 찼다. 생과 사.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 영면과 영혼 그리고 생명의 존엄에 대하여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달까. 그러한 정서가 다녀간 후에는, 가라앉기보다 도리어 충만해지고 선명해졌다. 남은 인생에서 내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사는 동안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일상에 흔들려 흐려지고 퇴색돼 있던 내 삶의 기준들이 바로 서는 기분도 들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떠나는 길에 주시고 간 선물은 아니었을까. 남편의 외할머니는 백 년을 살다 가셨다. 모두들 쉽게 백세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만큼 살다 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고인처럼 일세기를 채우고픈 욕심은 없지만 다른 기대는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게도 그날이 온다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는 오롯이 ‘사랑’의 감정만 가져갈 수 있기를. 미움도 원망도 후회도 미련도 없이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 살포시 안고 잠들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한다.







안녕하세요. 글 짓는 조수필입니다. 오랜만에 수필을 한 편 올리며 인사차 안부를 전합니다. 지난 여름,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원고 청탁 제의를 받았습니다. 월간에세이라는 잡지사로부터 자유 소재로 글을 지어달라는 청이었는데요. 그 제안을 수락하고 얼마 후, 남편의 외할머니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는 부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의 심경을 글로 녹여 많은 분들이 보시는 잡지에 싣게 되었네요. 이 글이 하늘에 계신 할머님께도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도 글을 쓰며 지내는데요. 지난 2023년 12월 25일에 두 번째 책이자 저의 첫 소설인 [마민카 식당에 눈이 내리면]을 펴내고 후속을 써달라는 독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마민카의 속편을 쓰고 있습니다. 자연인의 나와 소설가인 나. 두 개의 삶이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절충과 타협을 모색하며 어떻게든 써나가고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는 세 번째 책으로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하고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잘 될지, 그런 시간이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틈틈이 수필도 적어 올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늘 마음만 분주합니다.


최근에 영화 [작은 아씨들]을 다시 보았는데요. 극 중에 조 마치와 에이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새로운 감정이 일었습니다.

“중요할 것도 없는 얘기를 누가 읽겠어. / 그런 글들을 안 쓰니까 안 중요해 보이는 거지. / 글은 중요성을 반영하지 부여하진 않아. / 내 생각은 달라,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글을 쓴다는 건 캄캄한 밤길을 더듬어 걷는 것과 같지만, 그러다가도 한번씩 빛이 새어 들 때가 있어요. 그 희미한 빛줄기를 따라 오늘도 문장을 짓습니다.  


어느덧 11월 1일이 왔네요.

요란하지 않아도 별 거 없이 따뜻한, 오롯이 내 것 같은 나날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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